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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밍키 Nov 17. 2024

예비신부 우울증

툭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세상이 슬픈 것 투성이다. 나의 요즘 상태는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엔 기복이 있더라도 호르몬을 탓하든지 잠깐 쓸고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자가 진단을 내렸었다면 이번 난기류는 심상찮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누가 볼까 창피하면서도 서러운 딸꾹질로 오래 끌며 마무리한다. 사람은 자기만 보는 일기에도 거짓을 쓴다고 한다. 그 즐거운 날의 기록이 다 기만이었나 싶게 행복에 겨운 최근 일기들. 그것을 쓰고 불과 몇 초 뒤에 눈이 시뻘게지게 울었는데 말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심리상담센터가 눈에 띈다. 집 코앞에 이런 게 있었구나. 가격을 찾아봤고 생각보다 비쌌다. 이러한 고민을 진지하게 한 것은 처음이다.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해 봤다. 초기 우울증이라는 답을 얻었다. 결혼을 앞둔 자의 '메리지블루'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땀구멍이 열린 것처럼 어디 눈구멍이라도 활짝 열려 있는 것일까. 우는 것도 습관일까. 아니면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그것조차 알 수 없어 아무 질문이나 한참 퍼붓는다. 전에 없던 요상한 감정의 흐름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증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스스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로 소개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다소 의아해한다. 정반대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람 좋아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봤다는 의견들은 하나같이 통했다. 사실 그들이 맞고 내가 틀릴 수도 있겠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인간을 혐오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을 믿고 싶었는지도. 실망을 했다가도 금세 망각하고 기대고 있었는지도. 나도 모르는 나의 어떤 행동이 시발점이 됐을까. 엉킨 것은 무엇이든 순서대로 푸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해 봐도 믿음을 저버린 쪽이 내가 먼저라는 단서가 안 떠오르는 관계들이 있었다.

나의 예비 신랑은 내가 토해내는 모든 것들을 받아준다. 이것까지 받는다고? 싶을 정도로 나의 멋진 송신기 역할을 한다.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럽고 뭐 그렇다. 나의 고민을 왜곡하지 않고 그지없이 현명한 해답을 주는 친구도 있고 인생책 장부 계산을 늘 손해 보는 쪽으로 하는 진정 사랑 많고 순수한 친구도 있다. 나를 철옹성처럼 지켜주는 사랑스러운 친구들 얼굴을 떠올리니 웃음이 난다. 안정된 생활을 놔두고 전혀 다른 일상을 맞이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점이 최근 무기력에 큰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까 봐 지레 또 겁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요즘 신접살림 구경하는 데 한눈이 잔뜩 팔렸었다. 세상에 이쁘고 잘 만들어진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참.

생각해 보니 맘껏 울고 표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오히려 내 감정에 솔직하고 건강하다는 증거인 것 같기도 하다. 혼란스럽다 나의 이 오락가락. 일단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마치 행복에 강박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무리는 늘 이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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