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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줜맘 Apr 08. 2024

홍어가 가는 길

그의 독서법

요즘 남편과 책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 남편은 나와 동갑으로 공대를 나와 졸업 전에 취업한 후 지금 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공백 없는 삶을 살아온 불혹의 남성이다. 그이는 책 읽는 취미에 대해 로망이 있었지만 독서방법을 몰라 그저 동경할 뿐 즐기지는 못했었다. 결혼 후 몇몇 번의 독서 도전이 있었지만 큰 보람 없이 마무리되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최근 나도 놀란 변화가 생겼다.


그가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코로나 시절 무렵이었다. 약 5년 전 금융에 대해 공부하겠다던 그는 환율, 경제, 금리 같은 경제와 관련된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돈에 관한 책을 여러 개 읽다 보니 자기 계발서에도 관심을 보였다. 코시국에는 자기 계발서 활황기였다. 그 연결고리를 타고 철학책에도 발을 담가 김신주 작가의 책들도 몇 권 사서 읽었었다. 그러기를 몇 년이다. 주제는 조금씩 확장되었고 크게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본인의 독서 능력에 맞게 꾸준히 읽어갔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인상적인 문구들과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고이 접어 두어 책들이 두툼해지곤 했다. 그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접하지 않아 소리 내어 읽는 정도의 속도로만 책을 읽을 수 있으며 문장을 곱씹는 습관 때문에 반드시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의 독서량이 엄청나진 않았지만 나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에게 책 읽기가 금융, 철학자, 자기 계발 같은 주제의 수수께끼를 푸는 흥미로운 일은 확실하겠구나.


내 직장은 세종, 남편 직장은 전주다. 우리는 작년 8월 전주에서 세종으로 이사했다. 우리 둘 중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자율주행차를 사용했었다. 이사 전 내가 출퇴근을 할 때에는 그 차를 사용하며 영어공부, 업무협의 등을 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지난 8월 이후 내가 자기 계발시간으로 활용하던 출퇴근 시간이 남편에게 주어졌다. 남편은 이 시간을 독서시간으로 활용했다. 앞서 말했듯이 남편의 읽기 속도는 소리 내어 읽는 정도. 남편은 내가 구독한 밀리를 함께 이용하며 오디오북을 듣는다고 했다. 하루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출퇴근 시간은 남편의 독서량을 늘리기 층 분했다. 이렇게 반년동안 독서에 취미를 붙인 남편이었다. 게다가 그간 그의 독서는 그저 흘려들은 오디오가 아니었다. 그의 독서는 기록과 함께였다.


그의 기록은 필사에서 시작됐다. 글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지난가을 노션에 독서기록을 시작한 그를 보며 작은 핸드폰으로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음력 1월이 생일인 그에게 생일선물(몇 달 앞당겨)로 노트북을 선물하며 그의 기록생활에 부스터를 달아주었다. 그는 노트북을 자신에게 꼭 맞도록 커스터마이징 했다. 합리적인 그의 성격에 알맞게 꼭 필요한 것들로 노트북에 설계했다. 저녁마다 내가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남편도 귀가한 후 잠들기 전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 기록을 이어갔다. 그런 그에게 기록은 새로운 독서법이었다.


얼마 전부터 그가 읽는다는 책은 ‘백범 일지’. 그가 김구선생님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가 말한 책 속의 구절은 어려운 말들이 아니었다. 벚꽃을 구경하러 나간 드라이브길에 그가 말했다. ‘김구 선생님은 동학에 잠시 발을 들이셨기에 서학을 배척했었는데 옥중에 서학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백범은 자신의 생각을 고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점을 갖고 있는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말이다. 보통 나이를 먹고 사람들이 따르는 위치가 되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백범은 자기 논리에 빠지지 않은 진짜 리더인 것 같았다.’고 백범의 진솔한 이야기에 감명받은 소감을 전했다.


내가 놀랐던 그의 변화는 이것이었다. 내가 느낀 그의 독서에는 의무감도 으스댐도 없었다. 일년에 몇 권을 읽겠다 정한 목표가 있었던 독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알려야 하는 인증을 위한 독서도 아니었다.(인증으로 겨우 책을 읽어가는 요즘의 나랑 좀 비교되네.) 그저 그는 책 속에 고무되고 감화되어 깨달은 사실을 더욱 알고 싶어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날 저녁과 오늘까지 백범에 대한 다큐를 찾아보고 또 다른 그의 기록들도 확인하면서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빈틈을 채워갔다.


오늘도 배운다. 내가 이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라니 가난하고 건조한 요즘날 나에게 촉촉한 단비 같다. 그의 지적 호기심이 순수하게 느껴져 보기 좋았다. 최근에 울적한 마음을 안고 보게 된 영화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홍어가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자미가 댕기는 길은 가자미가 안다.” 영화 ‘자산어보’에 창대라는 청년이 정약전(정약용의 형)에게 한 대사이다. 그 안에 메시지는 군자가 가는 길을 군자가 알고 쌍놈 가는 길은 쌍놈이 안다는 것. 그래서 재복이가 가는 길은 재복이가 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고 그 길은 또 어느 순간 내 길이 되겠지. 나는 참 복도 많지. 이 사람은 자신만의 하루하루를 살면서 나를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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