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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Oct 06. 2022

나를 위한 시간

정말로 소중한

체력이 바닥난 지는 꽤 됐다. 운동만 시작하면 어지럼증과 이명이 와서 운동도 포기했었다. 삶은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고 아이들과 부모님을 챙기느라 허덕였다. 언제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남 탓을 했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진 듯,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난 빠져나오길 포기했다. 오히려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많은 좋은 인연을 만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며 나는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일도 하게 되고 수영을 배운지도 두 달이 되었다. 체력도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 몸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다. 많지 않지만 돈을 벌어서인지, 마음을 바꿔먹어서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아이들 일이라면 내 일은 뒷전이었던 것을 조금씩 조절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우선으로 두었다. 종종 가는 한의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자기 몸이 점점 사그라지는 거 느껴지지 않아요? 이럴 몸이 아닌데 쓸데없는 데 신경을 너무 많이 쓰고 에너지가 없는데 너무 많이 쓰고 있어요.”

“네 느껴져요. 40대 되고 나서 몸이 훅 간 것 같아요.”

“몸이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이럴 때 조심해야 해.”

“어떻게 하면 에너지가 생길까요?”

“먹어야지.”

“요즘 수영도 하고 살도 빠져서 좀 나아진 것 같은데요.”

“이렇게 살 빠지면 몸에 진이 빠지는 거야. 지금 살 빼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젊은 나이엔 먹기만 해도 금방 채워져요. 그러니까 소고기도 먹고 많이 먹어요.”     


그날부터 난 정성 들여 먹기 시작했다. 사실 요즘 소화도 잘 안 되고 입맛도 조금 없었다. 내심 살이 조금 빠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이참에 살도 좀 빼야지 싶었다. 그런데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내 몸에 진액이 빠지는 거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고기를 챙겨 먹고 간식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 먹으니까 조금 살 것 같았다. 

오늘 갔더니 선생님이 또 이러신다.     


“요즘 일하느라 힘들었어요.”

“더 먹어요. 이대로는 안돼.”

“그래도 열심히 먹었어요. 근데 소화가 잘 안 돼요.”

“소화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소화할 힘이 없는 거야. 지금 침도 10분밖에 못 맞겠어.”

“침을 왜 10분밖에 못 맞아요?”

“이 침을 10분 정도밖에 못 버텨 몸이.”

“선생님, 저 오늘 수영하고 아무것도 안 먹고 바로 와서 더 힘든 거예요.”

“그래서 더 힘들구나. 있다 나가서 밥 잘 먹어요.”

“네 선생님”     


베드에 누워 뭘 먹을까 생각했다. 힘나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문득 장어덮밥이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가까운 곳에 맛있는 장어덮밥집이 있었다. 한의원에서 나와서 장어덮밥집으로 향했다. 혼자 있는 점심때 밖에서 밥 먹는 게 죄스러울 때가 많다.    

  

‘혼자 자꾸 뭘 사 먹어. 대충 집에 있는 거 먹으면 되는데.’     


오늘은 혼자서 35000원이나 하는 장어덮밥을 먹으러 갔다. 19000원짜리 미니 사이즈를 먹을까 싶다가 그냥 35000원짜리 한 마리 덮밥을 시켰다. 장어덮밥은 금방 나왔다. 핸드폰을 덮어두고 난 경건하게 계란찜을 먹었다. 뜨거운 계란찜을 호호 불면서 먹었더니 몸이 녹는 것 같았다. 얇은 일본식 나무젓가락으로 장어를 한 조각 집어 들고 입안에 넣었다. 와!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집에서 만드는 거랑 다른 맛이구나. 너무 맛있었다. 보통 나는 핸드폰을 보면서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탁 막히는 느낌이 오면서 더는 못 먹을 것 같았다. 오늘은 그러기 싫어서 꼭꼭 천천히 씹어먹었다. 몇입 먹었을까. 음악이 안 나오던 매장에서 잔나비 노래가 나왔다.     


음~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맛이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먹었다. 잔나비 노래까지, 완벽했다. 결국 핸드폰을 들고 카톡을 하고 말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이런 만족스러운 시간을 잃어버린 걸까. 아이를 낳고 나서 일까. 문득 생각이 난다. 대학생 때 학교 앞에 아주 작은 가게가 있었다. 프랑스에 온 것 같은 작은 가게에서 때론 빗물을 구경하고, 때론 사장님과 수다를 떨었던 때가 있었다. 매일같이 들러 따뜻한 수프와 빵을 먹었다. 호밀빵에 버터와 꿀을 발라 먹는 것도 그때 배웠다. 요즘 많이 못 먹는다 생각했는데 차곡차곡 채워 넣으니 그 많은 양을 거의 다 먹었다. 그 포만감이 저녁까지 이어진다.      


매일 장어덮밥을 먹을 순 없겠지만 이런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겁지겁 때우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나를 채우는 느낌. 그러다 보니 조금씩 먹는 양도 늘었다. 살짝 빠졌던 뱃살이 다시 돌아왔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내 남편이 괜찮다는데. 그리고 내가 괜찮은데 무슨 상관인가. 잘 먹고 채우고 운동하면서 건강해지고 나서 살을 빼도 늦지 않다.     




나를 채워야 아이들도 채워줄 수 있다. 나를 먼저 채워야 남편도 위할 수 있다. 나를 먼저 채우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 당연한 순서다. 내가 에너지가 있으면 아이들도 에너지가 생긴다. 엄마는 가정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기둥이 무너지면 우리 다 같이 무너진다. 나를 위하는 것이 가장 가족을 위하는 일임을 잊지 말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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