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작가 Dec 21. 2022

2022년과 함께 경단녀의 삶도 마무리한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나는 늘 일을 하고 싶었다. 돈도 벌고 싶었다. 세상은 마음 같지 않았고 아이는 엄마를 필요로 했다. 엄마도 딸을 필요로 했다. 나는 그 모든 요구에 응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마음은 늘 밖을 향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 이 근본적인 원인 때문에 모든 일이 엇나갔다.     


몸이 하나인데 아이도 잘 돌보고 싶고 엄마도 잘 케어하고 싶고 일도 하고 싶은데 이게 다 될 리가 없다. 그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잘 안 될 때마다 자책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내 바람일 뿐이었다. 안 그래도 예민하게 태어난 아이는 더 엄마를 붙잡았다. 아이가 6살이 되어서야 난 모든 걸 포기했다. 모든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던 내 욕심도 내려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했다. 아이가 원하는 시간만큼 내가 네 곁에 있어주노라 다짐한 후에야 아이는 안정을 찾았다. 아이러니하다. 

원하는 것을 놓아야 얻을 수 있는 이 아이러니함.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를 거의 가지 못 하면서 모든 것은 불투명해졌다. 그저 포기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는 오히려 나 같은 경단녀에게 기회를 주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던가. 페이는 적었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이력서를 쓰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난 집에 가만히 앉아있진 않았다. 일을 할 수 없을 때에는 뭘 그렇게도 배웠는지.. 한참을 배우다 다 쓸데없다며 배우기를 멈췄는데 그 모든 것이 쓸데가 있었다. 놀랍게도 하나하나 지난 시절 돈과 시간을 들여 배운 것이 다 쓰이게 되었다.      



2022년엔 일을 한 가지 더 하게 되었다. 체력이 부족해서 일을 해내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고, 아이들을 잘 케어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주어진 기회에 도전해 봤다. 40대에 다시 시작한 직장에서 난 찌질하고 바보 같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20년이 넘게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구상하는 친구도, 모든 친구들이 날 응원해 줬다. 힘겹게 이어온 회사 생활의 꿀팁을 아낌없이 줬다. 내 주위에 정말 좋은 사람이 많구나를 느끼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생각해보니 난 대학교 때 배운 내용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디자인의 생태계가 얼마나 많이 변했을 텐데. 일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점이 있다. 나는 대단히 뛰어난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꾸준히 끊임없이, 조금은 과하게 일에 몰두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결국 좋은 디자인이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잘 나타내는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일의 8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느낌. 무엇인지 표현하기 어려운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해내는 것. 그게 디자이너의 일이다. 빠르게 캐치하기 어려울 때가 많고, 조금은 투박한 결과물을 낼 때도 있지만 한발 한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힘. 그게 내가 가진 능력이다.     


40대가 되어 다시 시작하는 디자인 일이 매 순간 어렵지만 이런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니 이 나이가 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보니 내가 회사를 다니는 건 어려울 것 같았던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다. 정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침침해지는 눈과 시큰거리는 손목만 버텨준다면 세상에 할 일이 참 많다. 게다가 아이들은 조금 커서 엄마 일한다고 배려도 해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이제야 나는 일하는 '엄마'가 아닌 일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아이가 크는 10년 남짓의 일하는 ‘엄마’를 세상이 조금만 배려해준다면 더 능력치가 쌓인 일하는 ‘사람’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치열하고, 눈앞의 성과에 급급하다. 세상을 탓할 마음은 없다. 그들이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어려운 일인지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일일테니. 그건 그들이 나의 육아생활이 얼마나 고된지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경력을 오래 쌓아오지 않은 덕에 난 적은 월급을 받고 신입의 일을 이 나이에 하고 있으니 되었다. 다만 내 커리어는 지금부터라는 느낌이 든다. 백세시대에 40대는 아주 젊디 젊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와 멀어지기에도 딱 좋다. 10살이 되면서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했고, 중학교에 들어가려는 이 시점 아이는 조금씩 자아를 찾아가고 있다. 지금 내가 아이와 가까워지려는 것은 집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이는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인이 되기 전에 안전한 가정에서 좌충우돌을 겪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춘기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안전한 매트리스 위에서 자꾸 넘어져봐야 세상에서 덜 아프게 넘어질 테니까.      


또 한 가지 장점이 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경쟁하는 세상에 들어가는 아이는 늘 잘 안 되고 하기 싫고 괴롭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나도 늘 잘 안 되고 하기 싫고 짜증 날 때가 많다. 같이 넘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남편과도 회사 생활이 얼마나 짜증 나고 어려운지 공감대가 형성된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넘어지고 구르며 살고 있다. 아이가 나를 얼마나 이해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인 내가 왜 이렇게 잘 못 하냐고 다그치는 일은 줄어든다. 나도 그러니까. 그러고 보면 너무 잘난 부모가 아이에겐 그리 좋지도 않은 것 같다. 아이에게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지 않고 밟고 넘어갈 수 있는, 그래서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경단녀의 삶도 마무리한다. 때로 일을 쉬는 날이 있겠지만 난 죽을 때까지 움직이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조금씩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위한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