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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Sep 22. 2023

괜찮아, 안심해

어느 순간 숨이 턱까지 차는 걸 느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어도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불러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고, 모든 일이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웠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 모든 게 실제로 버거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관리를 못 하고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멈췄다. 불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숨 막히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질문 자체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 모든 질문에는 대전제가 존재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난 정말 열심히 살았다. 문제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내 안의 결핍을 채우려고만 했다. 진짜 문제는 마음의 공허임을 그때는 몰랐다. 시험지에서 몇 문제를 더 맞히면 성적이 높아지듯이 노력하면 채워지는 것인 줄 알았다. 무엇을, 어떻게 채우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열심히 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싫은 걸 억지로 참고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요리와 베이킹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도 땄다. 전통음식 전공의 대학원을 다니면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병행했다. 즐겁기도 하고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은 에너지를 꽤나 많이 소비하는 일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아프시고 나서는 모든 게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쉬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나 가족들이 필요로 하면 내 몸이 힘든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그들의 요구를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견디기 어려웠다.      


내 자리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잘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살림을 잘할 수 있을까'

.

.

.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한 건 사춘기 무렵이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자아가 깨어난 듯 내 삶을 주도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말 잘 듣는 딸을 원했다.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지나칠 정도로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던 엄마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신기하게도 나는 초등학교 때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참 착하고 얌전한 아이였다고 하셨던 할머니 말씀을 기억하며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고 짐작할 뿐이다. 깨어나지 않은 채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기억조차 남지 않은 게 아닐까. 그러니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변한 내 모습이 엄마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어릴 땐 참 말을 잘 들었었는데 중학교 들어가면서 점점 아빠를 닮아가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엄마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자신과는 달리 자기주장이 강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아빠를 닮은 내가 낯설었을 테니까.     


자아가 막 깨어난 사춘기 소녀는 마치 알에서 깨어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진 새와 같았다. 날아오르고 싶었고,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대한민국의 중학생. 새장에 갇힌 것 같았다. 날개가 꺾인 것 같았다. 엄마가 미웠다. 다행인 점은, 중3 때부터 미술을 전공하면서 숨 쉴 틈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미술학원을 오가며 놀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즐거움을 찾았다. 나름대로 노력한 끝에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취직도 했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남들 보기에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훌륭했다. 그런데 내 안에는 무언지 모를 공허함이 있었다. 무언지 모를 이 감정은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채워져 있어야 할 공간이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에게 이런 의문을 품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이 사랑받고 자랐는데, 왜 난 외로울까.”     


아주 넘치는 집은 아니었지만 부족하지 않은 집에서 편안하게 자랐다. 명품백을 척척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필요한 것을 하지 못 한 기억은 크게 없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안정적으로 자랐다. 좋은 남자와 결혼했고, 집도 있고 아이도 둘 낳았다. 내가 생각해도 부족할 게 없는데 난 늘 허기졌다. 나의 이런 고민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 너무 다 가져서 그러는 거 아니야?”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머리로는 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고, 내가 부족함을 논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음속 허기를 다스릴 방법이 없었다. 혼란스럽던 그때, 상담사로 일하는 친구가 내게 상담을 권했다.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조언을 받아들였다.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알아갔다. 

마음은, 외적인 요인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의 결핍은 존재할 수 있으며 그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며 눈물이 또르르 흐를 때가 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때도 있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날도 있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제 조금은 들여다볼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엄마의 병은 우리 가족 모두의 삶에 큰 변화를 안겨주었다. 엄마의 병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길고 긴 아픔의 터널 속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사춘기 시절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문을 열고 나가고 싶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서있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터널의 끝에 닿았다. 막상 터널에서 나와 보니 하루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부모님이 이끌어주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잘하던 소녀에게 이젠 이끌어줄 선생님도, 칭찬이든 잔소리든 뭐라도 주던 엄마도 없다. 새장을 나가면 될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 세상이 너무 크고 막막하다.      


40대가 된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처음 만난 것처럼 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다는 건, 내 마음을 살펴보는 거다. 숨어있었던 내 안의 나에게 괜찮다고, 이제 나와도 된다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본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나올 수 없어 치장하고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서 웃는 얼굴로 걸어 나오던 나에게 맨 얼굴로도 나와도 된다고 말해준다.      


“빨리 나오지 않아도 되고, 언제고 네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면 돼. 원치 않으면 나오지 않아도 돼. 그래도 괜찮아. 너의 모든 것이 괜찮아. 안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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