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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Sep 28. 2023

돌보고, 채우는 시간

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마음먹었을 때, 시작만 하면 술술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부터 적어보자고 생각했었다. 예상외로,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꽤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40이 지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살아온 모습이 어쩌면 진정한 나와는 간극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지 모를 공허함을 느껴서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뭔가 하루하루 힘이 들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무의미한 동영상에 더욱 빠져있다. 무기력하고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 했다. 몹시도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를 바라보는 일은 참 힘든 일이란 것을. 마음은 먹었지만 하기 싫다. 그냥 덮고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불편한 진실처럼 나를 온전히 바라본다는 것은 좋은 모습만 보는 게 아니다. 불편한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발을 들였다. 돌이킬 수는 없다. 아니, 돌이키고 싶지 않다. 내 안의 불편한 모습도 바라보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예전 같으면 제때 식구들 밥도 잘 못 챙겨주고, 일에도 집중을 못 하는 나를 보면서 자책했을 거다. 계획을 잘 못 세우고 할 일을 제대로 잘하지 못 하는 나를 벽에 몰아세우고 다그쳤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속상한 마음은 뒤로 하고,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이런 나에게 말해준다.      


“내가 힘들구나. 지금 아주 어려운 일을 하고 있어서 그래. 괜찮아. 그런데 이렇게 나를 소모하다 보면 사실은 내 몸이 더 힘들어지는 거야. 제 때 자고 잘 먹는 게 중요해. 잘하고 있어.”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해준 날, 나는 병원에 갔다가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침을 대충 먹고 등교를 시킨 후 뭉개고 있다가 아이들이 돌아와 간식을 먹을 때가 되어서야 뭘 좀 먹곤 했다. 핫도그나 떡볶이 같은 간식으로 대충 때웠다.


지금까지 소홀했던 내 몸을 위해 잘 먹고, 에너지를 채워주고 싶었다. 식당에 가서 혼자 먹기엔 꽤 비싼 한식 외상을 주문했다. 2000원을 추가해서 솥밥도 시켰다. 작은 생선과 전 2조각, 각종 나물과 소고기뭇국이 나왔다. 요즘 밥을 먹다가도 중간쯤 되면 확 막혀서 더 이상 못 먹겠어서 숟가락을 놓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날은 솥밥에 누룽지까지 모든 반찬을 싹싹 비웠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차곡차곡 나를 위한 온전한 밥상을 누렸다. 그렇게 채우고 나니 힘이 났다.      


“그래, 먹어야 힘이 나지. 그래야 나를 돌아보든 애들을 돌보든 뭐든 할 수 있지.”       



   


요즘 나는 병원을 다닌다. 그중 하나는 재활의학과인데 어느 날부터 손목과 팔이 아팠고, 왼쪽 엄지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임이 느려지다 보니 오타가 많이 났다. 점점 일하는데도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아갔더니 손가락과 연결된 신경을 수축된 근육이 눌러서 그렇단다. 그 신경이 팔을 거쳐 목까지 연결되는데, 일단은 손과 팔에 주사를 놔보고 필요하면 목까지 치료해야 할 거라고 하셨다.      


“분명히 목도 치료를 해야 할걸요.”

‘목도 불편하세요? 거북목이 있으시긴 해요. “

“네. 늘 목이랑 어깨가 불편해요.”     


주기적으로 주사치료를 하면서 목의 앞쪽 근육까지 주사를 맞았다. 그러고 나니 원래도 거북목이라 불편함이 있긴 했는데 더 심해진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 목 앞쪽에 주사를 맞으니 목이 앞으로 더 빠지는 것 같아요.”

“네, 목을 잡아주던 근육 중에 앞쪽을 풀어주니 뒤쪽이 더 힘이 많이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럼 어깨와 목 뒤쪽도 함께 치료할게요.”     


몇 번의 치료를 하다 보니 그쪽은 나아졌는데 등 쪽도 불편함을 느꼈다.     


“선생님, 이제 등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제가 왼쪽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왼쪽 팔이 잘 안 돌아가고 이쪽에 근육과 인대가 붙어서 잘 안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날개뼈 쪽 근육을 과도하게 쓰게 돼서 불편하신 거예요.     


지금까진 작은 주사기로 조금씩 놨는데 어깨에는 엄청 큰 주사를 오랫동안 놓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많은 주사액이 몸에 들어갔다. 다음날부터 팔이 조금 더 잘 돌아갔다. 수영을 하면서 왼쪽 팔이 잘 안 돌아가서 몸이 바르게 못 나가고 머리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게 조금 줄어들었다. 왜 이렇게 몸이 뻣뻣하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뻣뻣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오랜 시간 얼마나 긴장을 하고 살았던가. 조금씩 기능이 떨어져 가는 엄마를 보면서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무거웠다. 끝이 없는 추락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머리로 몸이 조절되지 않는 엄마가 너무나 힘들었고 함께 사는 아빠를 보면서 때로 화가 나고 때로 안쓰러웠다. 마지막 길은 말할 것도 없이 아프고 아팠다. 긴 시간 동안 내 모든 마음도, 몸의 근육도 쪼그라든 것 같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시간은 흉터처럼 내 몸에 새겨졌다.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미 상처가 크게 내 몸에 새겨져 있으니.  

    

그 상처는 내 삶에 들어온 문제를 온몸으로 살아내느라 생긴 거다. 폭풍우를 만나면 온몸에 상처가 나더라도 흔들리는 배를 붙잡고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으면 됐다. 잘 살아남을 방법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환절기에 비염이 더욱 심해진 나는 내과를 찾았다. 집정리를 하면서 오래 묵은 먼지가 드러나면서 콧물은 빗물처럼 흘러내렸고, 재채기와 눈 가려움은 달고 살았다. 지난겨울부터 비염이 한층 심해졌는데 고양이를 키우면서 더 심해진 것 같아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아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환자분에게는 집먼지진드기와 고양이 알레르기가 나왔는데요, 수치가 1 정도라서 굳이 약을 드실 필요가 없어요. 가끔 힘들 땐 지르텍 같은 약 사드셔도 되고, 제가 약을 처방해 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속해서 드실 필요는 없어요. 고양이도 계속 키우셔도 됩니다.”     

“그럼 저는 왜 이렇게 힘든 거죠? 늘 알레르기가 매우 심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알레르기 수치가 높으면 약으로 눌러주는데요, 수치가 낮아서 약으로 누를 필요가 없어요. 알레르기 수치는 낮은데 환자분 면역력이 낮아서 그런 거예요. 잠 잘 주무시고 밥 잘 드시는 수밖에 없어요. 저는 약이나 비타민 같은 것도 크게 권하는 편은 아니에요.”     


당황스러웠다. 내 몸이 도대체 얼마나 안 좋은 거지. 선생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저는 오히려 빈혈 수치가 낮게 나온 것이 더 걱정스러워요. 빈혈 수치가 12-16인데 11.6으로 나왔거든요. 빈혈이라고 하면 어지럽고 쓰러지는 걸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굉장히 피곤하고 무기력한 거예요. 혈액이 산소를 운반해야 하는데 그런 기능이 떨어지면 힘들거든요.”     


뭔가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의 오랜 피곤과 무기력이 사실 빈혈 때문이라는 건가? 예전부터 빈혈수치가 낮다는 이야기는 들어왔다. 그런데 수치가 아주 많이 낮지 않다 보니 의사들도 빈혈약을 먹어도 좋고 그냥 음식 잘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해서 특별히 빈혈약을 챙겨 먹지 않았다. 나의 피곤과 무기력에 이유가 있었다니!!     


“빈혈약을 처방하려면 몇 가지 검사를 더 해야 하니 다시 오세요.”    

 

추가적인 검사 끝에 혈색소, 산호포화도, 저장철의 수치가 매우 낮다는 결과를 받았다. 앞으로 2달간 꾸준히 철분제를 먹으면 나아질 거라고 하셨다. 의지가 약해 아침에 못 일어나고 게으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했다. 심장에도 간에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난 왜 이렇게 부지런하지 못할까 자책하고 답답해했다. 그런데 나에게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유가 있다는 게 이렇게 반가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그것도 모르고 나를 탓하기만 한 것 같아 나 스스로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난 요즘 병원을 다니면서 나를 돌보고 있다. 바쁜 일에 치여서 내 몸을 돌보는 걸 소홀히 하고 살았다.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몸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요즘 마치 책을 들여다보듯 나를 들여다본다. 필요한 것을 채우고, 불필요한 것을 멈춘다.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잘못한다 자책했던 것들은 대부분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모습일 뿐이다. 불편한 내 모습이 보기 싫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내 몸과 내 마음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많은 것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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