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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Oct 04. 2023

마라톤을 뛴다고?

작은 도전, 마라톤

마라톤 대회에 신청을 해버렸다. 무려 10km. 무슨 용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저지르는 데는 선수니까. 원래는 체력을 좀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을에 5km 마라톤을 친구 가족과 함께 뛰기로 했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 덕분이었다. 내가 과연 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미루다가 기한보다 일찍 마감이 되어 신청을 못 했다. 결국 친구 가족만 5km를 뛰었다. 어차피 뛰기 어려웠을 것 같으면서도 내심 아쉬웠다.


어느 날, 미국에서 오신 친척 아저씨를 만나 식사를 했다. 그 집의 오빠는 지금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마라톤, 사이클, 골프 등 운동에 몹시 진심이었다. 그다음 주에는 마라톤을 뛰러 무려 베를린에 간다고 했다. 50살이 되기 전에 뛰어 보고 싶은 국제 마라톤들을 뛰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내년 3월에 하는 서울마라톤은 아직 신청이 가능할걸?"

"지금 9월인데 내년 3월 마라톤을 벌써 신청해요? 게다가 아직도 가능할 걸이라고요??"


마라톤의 세상은 전혀 모르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뛰려고 줄을 서 있다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울마라톤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내 것부터 접수를 하고, 차례대로 온 가족의 마라톤을 신청했다. 5km는 없고, 10km와 풀마라톤밖에 없어서 그냥 10km를 신청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마라톤을 신청했다는 말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우와, 대단하다!! 10km를 달린다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10km는커녕 1km, 아니 1분만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찬다. 걷는 것도 힘들다.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아이들 밥 챙겨주는 것도 어렵다. 내가 체력이 좋아서도, 달리기를 잘해서도 아니다. 그냥 신청했다.


'뛰다가 너무 힘들면 걷지 뭐, 걷다가 죽을 것 같으면 나오지 뭐.'


순위권에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완주를 하면 좋겠지만 못해도 그만이다. 나에겐 6개월 남짓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안에는 어떻게든 될 거라는 작은 믿음과 소망으로 그냥 신청해 본 거다. 오히려 아이들이 난리다. 자기들은 10km를 못 뛸 것 같다며 벌써부터 걱정이다.


"너희들보다 내가 훨씬 못 뛰잖아. 엄마가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그래. 엄마 좀 도와줘."


고맙게도 알았다고 한다. 뛰다가 못 뛰겠으면 그만 뛰어도 되고, 걸어도 된다는 말에 안심을 한 것 같다.


추석 연휴 중인 그저께부터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3일 차. 그저께는 남편과 둘째 아이와 아침을 먹고 산책을 겸해 나왔다가 운동화가게를 구경하고 왔다. 어제는 큰 아이를 깨워서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은 나오자마자 배가 고프다는 둥, 기운이 없다는 둥, 너무 힘들다는 둥 말이 많다.


"그럼 우리 뭐 먹으러 가자! 엄마는 혼자 걸으러 나와서 그냥 커피 마시거나 밥 먹고 들어갈 때도 많아. 그러면서 걷는 거야."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선 주차가 가능한 식당에 들어갔었는데, 차가 없으니 자유롭다. 이 가게 저가게 걸어 다니면서 메뉴판도 들여다보고 서로 의견을 조율했다. 결국 갈비탕에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고 나니 아이들이 좀 힘이 나는지 잘 걷는다. 그렇다고 어디 멀리간 건 아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운동이다.


오늘은 다들 학교와 회사에 가고 나는 혼자 걸으러 나왔다. 평소 걷는 길이 왕복 4km 정도 되는데, 오랜만에 걸으니 그것도 몹시 힘들다. 골반이 삐걱대고 허리도 아프다. 힘들어서 중단하고 싶었지만 시작을 했으니 한번 걸어보자 하면서 걸었다.


시간 1:00:41

거리 4.10km

평균 페이스 14'48"

걸음수 6,381

칼로리 183


4km를 걷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꾸준히 걸을 땐 40분이면 걸었었는데. 이런 나도 마라톤에 신청했다. 한 달은 걷기만 할 예정이다. 꾸준히 걷고, 조금씩 거리를 늘리고, 조금씩 속도를 늘릴 거다. 몸이 허락하는 만큼 조금씩. 만약 내년 3월에 10km를 못 뛰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내년 3월까지만 살 건 아니니까. 그다음에 조금씩 더 늘리고 늘려서 언젠가는 10km를 뛰는 날이 올 거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꾸준하게 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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