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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Nov 02. 2023

정리는 마음의 짐을 버리는 것

난 정리를 못 한다. 정말 못 한다. 이렇게 말하면 몹시도 게으르고 변명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겠지만 난 타고나길 정리를 못 했다. 어릴 때도 방이 지저분해서 엄마한테 많이 혼나곤 했다. 엄마는 잔소리를 하기도 했고, 혼을 내기도 하고, 때로 화를 쏟아부을 때도 있었다. 억지로 치우면서도 혼나는 게 억울했다. 방에 물건이 많긴 했지만 나는 내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았다. 복잡한 가운데 나만의 질서가 있는 내 방. 난 그런 내 방이 아늑하고 좋았다.    


문제는 아이를 낳고 나의 집이 생기면서 내 공간이 내 방이 아닌 집 전체로 커지면서 시작되었다. 게다가 엄마는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도 찾아줘야 한다. 남편은 알아서 한다 쳐도 아이가 어릴 땐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게다가 난 사촌언니에게 받은 큰 옷과 장난감들도 정말 많았다. 집은 복잡해졌고, 난 물건을 점점 찾지 못했다. 마음이 어두워지면서 모든 건 더 어려워졌다. 하루하루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지치는데 집정리는 꿈을 꿀 수가 없었다. 깔끔한 환경을 가족들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능력의 부족인 것 같아 더 스트레스가 쌓였다. 따뜻한 우리 가족들은 나에게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괜찮지 않았다. 

  

이런 나도 지난여름 이후로 거의 한 달 동안 열심히 집정리를 했다. 중학생이 된 아들과 초등학생 딸은 방을 분리할 때가 되었다. 공부방 / 놀이방 겸 침실로 쓰던 두 방을 각자의 방으로 분리해 줬다. 아들은 장난감도 선뜻 많이 정리를 해서 짐이 많지 않았고, 덕분에 더 빨리 마무리되었다. 딸은 여전히 장난감이 꽤 있었고 그 방의 정리까지 할 힘이 남질 않았다. 그 외에도 각각의 방과 베란다에는 오래된 짐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대로 사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결국 난 큰 결심을 했다. 정리컨설턴트의 도움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뜯어진 벽지도 새로 도배하기로 했다. 신혼 때부터 써온 삐걱대는 가구들도 교체하기로 했다. 거실 한 면을 가득 채웠던 책장도 빼기로 했다. 이젠 옛날처럼 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니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두웠던 조명도 바꾸기로 했다. 


큰 일을 갑자기 하려니 어려웠다. 모든 것이 자잘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 선택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전문가인 실장님은 재빠르게 모든 일을 계획했다. 모든 걸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 같았다.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움직여야 하니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반대로 난 많은 생각과 리서치를 한 다음 생각을 좁혀 마지막에 결정하는 편이다. 모든 걸 빨리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조급해졌다. 


실장님의 스케줄에 끌려가던 난 잠시 쉬기로 했다. 마침 주말이었다. 열심히 가구를 보러 다니면서도 선택을 성급하게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속도를 따르는 것. 세상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내 속도를 잃고 방황할 때가 있다. 늘 내가 조금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사실 난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 것 같다. 새로운 일 앞에서 주저하다 마음을 먹어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의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속도만 조절할 수 있다면 난 언제나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고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믿기로 했다. 가끔 내가 잘 해내지 못하는 건 충분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거나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할 때일 뿐, 내 능력의 부족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월요일이 되었고, 난 천천히 하나씩 선택하기 시작했다. 1차 정리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긴장이 많이 됐는지 며칠밤 꿈도 많이 꿨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은 나눔을 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주기도 했다. 결국 그날이 왔고, 일은 시작됐다. 다행히도 작은아버지의 과수원 집에 필요한 가구들을 많이 보냈다. 시골교회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책이 없다고 하셔서 책도 보내고 어린이 책상도 보냈다. 버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어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쓰던 모래놀이, 킥보드, 인형 등등.. 정말 많은 것을 비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1차 정리가 끝이 났다. 도배하기 불편하지 않도록 물건들을 포장해서 베란다에 빼두셨다.      


마무리를 하고 나니 집이 싹 비었다. 이삿짐이 들어오기 전의 집처럼 빈 집을 보니 놀라웠다. 금방 다시 짐이 들어오겠지만 빈집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를 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비운 것 같았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채우려고 너무 많은 물건을 쌓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매일 조금씩 해나갔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하루하루의 할 일만으로도 지친 내게는 도움이 필요했다. 도움이 필요한 것을 알아차린 나를 칭찬하고, 용기를 내 도움을 받은 나를 칭찬한다. 누군가에게는 돈지랄일지 모르지만 내겐 변화를 시작하게 해 준 고마운 동아줄과 같았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서도 또다시 엉망이 될지 모르지만 한번 비운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힘을 얻고 나면, 또 할 수 있겠지. 나를 오랫동안 괴롭힌 무기력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빈집을 보니 벌써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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