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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지 Jan 10. 2021

어떻게 너 같은 애가, 싱가포르 해외 취업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땅에 헤딩

원래 어리고 가진게 없을 수록,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한 말을 굉장히 많이 듣게 된다.


"해외 유학파들도 취업 못해서 돌아오는 마당에, 한국에서 그 정도 대학 나온 니가 어떻게 해외 취업을 해?"

"넌 영어를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력서에 쓸만한 무슨 자격증이라도 있니?"

"너가 특별히 잘하는 게 뭔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꼭 먹어야만 하는 성격만큼이나

하고 싶은 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를 평가하던 그 사람들은, 정작 맨땅에 헤딩해본 적이 없으니까.


내 몸뚱이 하나만 책임지면 되었던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실패할 용기' 였다.

실패할 용기는 젊음이 가진 특권인데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행사하는 젊은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그 용기를 낸 것이 바로, 싱가포르 해외 취업이었다.


그렇다면 왜 싱가폴인가?

나는 취업을 잘 하고 싶어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그 당시 홍콩과 싱가폴은 아시아 금융의 허브 도시 였다.

그 당시 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있는 그곳에서 나의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대학 졸업 하기전부터, 영문 이력서에 쓸만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하면서 2천만원의 돈을 모았다. 내가 쌓은 스펙은 일한 경력과 모은 돈이었다. 마지막 학기 수업을 마친 2011년 12월 마지막 날, 일하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실패해도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싱가폴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막상 이곳에 와보니, 갓 대학을 졸업한 나의 가장 큰 경쟁력은 크게 세가지 였다.

1. 한국어 실력

2. 싱가폴에서 면접이 가능

3. 바로 다음날부터 일할 수 있음


실제로 와서 경험해 보니,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던 학벌, 자격증, 영어실력, 중국어 실력 이런 것들은 절대로 나의 경쟁력이 될 수 없었다 (싱가폴 로컬 사람들이 더 잘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그 당시엔 나처럼 무모하게 해외에 여행비자로 나와서 취업하려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2012년 2월.

한국에선 한창 대학교 졸업식이 있을 무렵, 나는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 대기업의 해외법인 재무기획팀 사원으로 입사를 하게 된다.

이 곳에 온 지, 꼭 한 달만이었다.


* 여기서 잠깐,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멋진 표현이 영어에도 있으니

바로 Happiness in disguise 이다.


그 당시 나는 매일 아침 싱가폴 직장인들 속에서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출근을 했고,

사무실에선 신경성 위염약과 두통약을 달고 살았을 정도로 강도높게 일을 했으며,

매일 야근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갈땐 오레오 한줄씩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한국 대기업의 해외 법인에서 한국인 현지 채용으로 사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월급은 현지 사람들보다 적게 받으면서도, 야근수당없이 밤낮, 주말, 공휴일 없이 대기조로 일을 하면서 살았다.

더군다나 나의 유일한 사수였던 직속 상사는, 한국인인 나를 경계하고 팀킬도 서슴치 않는 무서운 중국 여자였다.


그 모든 어려움은, 아무것도 없는 신입이었던 나에게 취업비자를 제공해 주는 것에 대한 댓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묵묵히 6년동안 이 업무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내공을 쌓았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비아냥 섞인 "너가 뾰족히 잘하는 게 뭔데?" 라는 질문에, 드디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그리고 그런 나의 경험을 가치있게 여겨준 곳이 바로,

지금 내가 있는 글로벌 IT 기업의 아시아 지역 재무기획 담당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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