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것은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조용한 거실에 토요일 새벽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출판사 리스트를 검색했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이라는 거창함보다는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미묘한 감정이 나를 붙잡았다. 대형 출판사부터 작은 출판사까지 리스트를 종이에 적어서 정리하고 내 글과 성격이 가장 맞는 출판사를 찾고 또 찾았다.
우선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성격이 맞는 출판사를 골라냈다. 출판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업성이 확보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의 글을 책으로 내는 것이 가장 선택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사업성에 대한 보장이 제로인 그런 무명의 글 쓰는 사람이다. 아니 이제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체성도 사라졌으니 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없는 그런 그냥 내가 되었다. 그래서 더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냥 편한 말로 곧 직장에 나가지 않는 조기퇴사를 한 마흔 살 백수가 되었기에.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출판제안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의 목적, 예상하는 독자분들, 주요 줄거리, 등장인물의 특색, 기대효과 등 나름을 정리했다. 대부분 대형 출판사들은 원고를 다 써서 보내도 읽어볼 시간조차 부족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물론 내가 직접 일을 해보고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요즘처럼 질 좋은 정보를 쉽게 얻는 세상에서 그 모든 말이 거짓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안서를 잘 작성해야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터였다.
'이거 괜찮은데?'
이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원고를 클릭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기회를 더 가깝게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몇 곳을 찾아서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 쓰는 글조차 출판사의 특색을 고려해서 아부성 멘트를 포함해서 진심을 담았다. 물론 같은 여러 곳에 동시에 보내는 손쉬운 방법을 생각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20년 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주 작은 성의가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여행을 간다는 동생의 말에 서울집에 올라와서 아픈 엄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그 고요함과 슬픔 속에서 난 그렇게 내 인생 첫 번째 투고를 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제안서에 작가를 소개하는 곳을 만들었는데 그곳에 무엇을 쓸지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 내가 쓴 책 두 권의 정보와 브런치 주소를 남겼다. 그런데 몇 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과연 이 소개가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었다.
출판사의 편집자 분들이 내 소개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쓴 두 권의 책은 과연 이런 투고에 도움이 될까?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는 건 아닐까?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성과가 별로 좋지 않아서 인지 나는 여러 가지 경우에 수를 두고
고민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넣기로 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내가 남긴 흔적이고 시간이자 내 삶의 일부이기에 넣는 것이 내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울 행동은 한 것은 아니기에. 대신 그 간 제안을 받아 다른 루트로 출간했던 크몽 전자책과 월간 에세이 기고문에 대한 내용은 넣지 않았다. 의미가 적어서라기보다는 너무 상업적인 사람으로 비칠 것 같아서 그렇다. 물론 내게는 모두 의미 있는 결과이자 흔적이다.
모든 원고는 몇 번이나 읽고 고치기를 반복했고 분량도 많기에 이제는 평가를 받는 일만 남았다.
물론 그 어떤 곳에서도 내 글을 반가워해주지 않는다면 다른 루트(1인출판사)를 통해서라도 나는 그들을 이 세상에 탄생시켜 살아 숨 쉬게 만들 각오를 하고 있다.
단지 빛이 잘 드는 곳에 한 번이라도 나오기를 소망한다. 내 삶을 담은 글을 누군가에게 의미로 다가선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내 불행이 남들에게 눈물이 되어 가슴을 따뜻하게 할지도 모른다.
첫 번째 책도 그러했다. 무턱대로 자비출판으로 책을 냈다. 아는 것도 없었고, 목적도 없었다. 그냥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다. 일 끝나고 앉아서 틈나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목차를 작성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원망했던 아버지를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볼 수 없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눈물도 흘렸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미국으로 떠났던 그날.
나는 실제로 많이 울었다. 다시 돌아오면 이 세상에 아버지가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아버지는 암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미국으로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게 그를 떠나보냈다.
떠나는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지도 못하고 나는 아버지를 보냈다. 그래서 아빠한테 괜찮다고 내가 당신을 이해한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쓰게 된 것이 첫 번째 에세이 <보잘것없는 사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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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도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마치 어린 시절 내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었던 다정한 아버지처럼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글에 대한 진심은 더 커졌다. 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선물을 받은 셈이다.
두 번째 책은 무엇인가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진정한 의미는 사랑이 맞다. 하지만 조금은 슬픈 사랑이다. 살면서 뜻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공허함은 찾아오는 듯하다.
어린 딸을 키우면서 나는 모자란 내 모습에 대한 반성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다정한 가정을 보여주지 못하는 죄책감은 참으로 나를 아프게 했다. 딸아이가 7살이 넘어가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그 죄책감은 현실이 되었다.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했어? 서로 좋아하지도 않잖아...."
둘이 손을 잡고 키즈카페를 가는 그 익숙한 동네 길목에서 딸아이는 정면을 바라보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니 질문을 하고 바로 답변도 스스로 마쳤다. 나는 그 말에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했다. 아니 순간 무슨 말을 해줘야 이 작은 천사에게 상처가 덜 될까? 고민했지만 시간은 멈춘 듯 다른 장면으로 나를 이끌었다.
예측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질문, 이런 고민을 내가 사랑하는 딸아이가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고민했었다. 과연 어떤 선택이 내 목숨보다 소중한 딸을 위해 좋은 걸까?
그 고민의 끝을 나는 결국 책으로 남기기로 했다. 혹시나 떠올리며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은 에세이 형식으로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커서 진로 걱정 앞에서 고민할 그 모습도 떠올리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힘들어할 그 모습도 생각했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 돈을 대하는 태도, 만약 결혼을 했다면 혹은 안 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그런 담담한 이야기를 썼다.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맞이해서 우리가 이별하게 된다고 해도 딸아이가 두고두고 꺼내서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살아보니 부모라는 존재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존재도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내 곁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기에 그래서 남겨두고 싶었다. 글을 다 쓰고 이번에는 독립출판 형태로 출간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표지부터 내지, 교정까지 모두 내가 직접 하였다.
이 과정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 오탈자 때문에 독자분들께 민망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 어떤 독자분은 책을 잘 읽었다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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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의 장단점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표지와 내용을 다시 수정해서 새롭게 탄생시킬 예정이다. 독자분들의 의견도 반영하기로 결심했다. POD 형식이기에 원고와 내용수정이 자유롭다는 장점을 극대화시킬 예정이다.
세 번째 책은 전자책이다. 크몽에서 제안을 해주셨다. 조금은 생소했다. 요즘은 재테크 관련 글을 브런치에는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이유는 엄마에 관한 에세이를 주로 올리면서 뭔가 정체성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이 될 것이 걱정되었다. 아픈 엄마를 모시는 내용으로 응원을 받고 있는데 돈돈돈 하는 이야기를 동시에 올리는 것이 살짝 거북했다. 하지만 브런치 초창기에는 투자관련 된 글을 많이 올렸다. 200만 넘는 조회수 중에 절반 이상이 재테크 관련 글로 인해 조회되었다. 그래서 나는 크몽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입점했다. 이 또한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전자책 수입구조도 알게 되었고 마케팅에 대한 부분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글과 함께 이겨낸 시간들이 내 뒤에 존재했다.
내가 쓴 글과 성격이 맞는 출판사를 몇 곳 더 찾아서 오늘 투고를 더 할 예정이다. 적어도 글에 대한 내 진심이 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많은 분들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꾸준히 습관이 되어 쓴다면 마법과도 같은 경험을 분명하게 될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우리의 표현 중 가장 잔잔하면서 강력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즉흥적이기도 힘들고, 가식을 담기에도 힘들다.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되어야 하고 그것을 손끝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완성되는 과정에서 눈으로 다시 보며 내 생각을 또 정리한다. 결국 나 스스로 더 단단해진다.
그 단단함을 모두가 경험한다면 한결 더 포근한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중증치매로 아픈 우리 엄마는 나를 계속 괴롭혔다. 시원한 봄바람과 유혹하듯 불어오는 봄햇살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내게 액체 세제를 들고 와서 먹으려고 하고, 냉장고를 수십 번 열고 생고기를 몰래 자기 방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중 먹을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모두 가지고 갔다. 말려도 소용없었고, 화늘 내도 허탈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가슴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더 이상 좋아진다는 희망도 없이 점점 나빠지는 치매 증상 때문에 내 마음도 지쳐갔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내 앞에서 아직 사탕을 먹고 있는 엄마를 보는 것이 행복하고 이 봄날이 감사하다.
언젠가는 이곳에 연재하고 있는 엄마 이야기를 꼭 책으로 남겨두겠노라고 다짐하며 오늘의 글을 마치려고 한다. 봄 꽃을 보러 엄마가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