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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y 07. 2024

9살 딸이 말했다. 엄마 아빠랑  따로 살고 싶다고

너는 잘못이 없단다. 어른들이 잘못이지.

아이들의 무기라면 순수함일 것이다. 


그 순수함은 어른인 내가 흉내 내려고 해도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맑음과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다. 딸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나는 내 딸의 순수함을 응원한다. 그리고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그 순수함이 때로는 나를 미치도록 힘들게 만든다. 


인생이라고는 고작 만으로 7년 산 딸아이가 내게 한 그 한마디가 내 가슴 깊은 곳에 박혀버렸다. 물론 아빠 아프라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오죽했으면 그 이쁜 입술로 그런 말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한 것 자체가 부모로서 자격박탈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몇 주가 흘렀지만 밤마다 딸아이를 생각하며 수많은 생각을 한다.


이런 삶을 딸아이에게 주는 것이 과연 옮은 행동일까? 내가 포기해 주는 것이 물론 미치도록 힘들고 아프겠지만 옳은 일이 아닐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천번 물어봤다. 그럼에도 아직은 내가 필요하다고 아니 있어줘야 한다고 나를 위로하고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귓속에 딸이 했던 그 말이 맴돌고 맴돌아 심장에 박힌다.  아주 평범하고 고요한 주말이었다. 평소와 같았다.


주말을 핑계 삼아 눈치를 보며 8시가 조금 넘게 내 방에서 뒤쳤였고, 주말 평일 구분 없이 매일 일찍 잠을 자는 모녀는 아침 7시 30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자신들의 주말 일과를 조금 일찍 시작했다. 딸아이는 거실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유튜브를 보며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고, 빵조각을 주섬주섬 먹으며 이어폰을 끼고 반대쪽에 아내는 앉아서 자기가 볼 것을 보고 있었다. 함께 살지만 완벽하게 분리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가족은 이런 식으로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고 화가 나서 반항을 했지만 가정에서 엄마는 위치는 그냥 그 존재감 자체가 아빠라는 동물보다 훨씬 우월했다.

나는 어디로 갈까?


내가 내 의견을 말하면 이내 싸움으로 번졌고  큰 싸움을 수천번 하고 깨달은 것은 그냥 내 존재감을 최대한 감추고 내 가족이 원하는 울타리가 되도록 멀리서 방관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차이 그리고 완벽하게 다른 성격적 기질로 인해 수시로 싸움을 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떨어져 있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정답은 정해졌다고 나는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꼬락서니를 사랑스러운 내 딸이 무려 7년을 꼬박 봤다는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아니 충분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좋지 않게 나타날 것을 확신했지만 이렇게 빨리 표현이 되고 감정을 느낄 거라고는 사실 예측하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초등학교 2학년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주말은 거의 반반 나눠서 나와 딸이 시간을 보내면 남은 시간은 엄마와 보낸다.


일부로 이렇게 주말을 분리한 것은 아니다.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언제나 싸움으로 끝이 났기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한 지붕에 살지만 최대한 서로를 피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딸도 오전은 엄마랑, 오후는 아빠랑 이렇게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이게 그냥 일상이 되었다. 오후가 되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아니 반강제로 딸아이와 외출을 나왔다. 물론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딸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서로 대화하며 아내 눈치 안 보고 뭔가를 하는 그 달콤함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아마 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엄마한테 말도 못 꺼내는 것들을 나와 있으면 편하게 말했다. 아내는 딸이 나를 이용한다고 불평했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다. 왜냐면 조선시대보다 더 엄하게 통제하며 키우는 아내의 육아가 무조건 옳다고 절대 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득이 불가능한 인간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귀를 막을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입을 막았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딸이 나를 이용하도록 두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다이소로 향하는데 딸이 정면을 응시하며 아주 고요한 톤으로 내게 물었다.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했어?"

 

몇 번을 들었지만 여전히 당황스러웠다. 엄마랑 아빠가 사랑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의 의미를 알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하고 싶지 않았다가 오히려 솔직한 것 같다. 그럼에도 대답의 의무가 있기에 애써 말을 만들어냈다.


그 대답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바로 이어서 딸이 내게 물었다.

"아빠! 저기 아파트 보이지? 난 말이야. 엄마 1동, 아빠 2동, 내가 3동 아니 엄마 1동, 내가 2동, 아빠가 3동 이렇게 따로 살았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들은 나는 걷고 있었지만 모든 신경세포가 멈춘 것처럼 마음이 요동치고 심장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그냥 어이없는 말에 대한 침묵으로 쳐다봤다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아이를 안고 베란도로 도망치며 내게 다가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외쳤던 그날처럼. 나는 두 번째 공황을 경험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내 가족들 때문에 공황을 경험게 될 줄을 정말 몰랐다. 이게 공황장애인지도 사실 처음에는 몰랐다. 정말 힘들게 힘들게 살았는데, 별별일을 다 경험했는데 그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나는 이렇게 약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한 참을 그냥 걸었다. 어찌 대답하면 좋을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이 딸의 상처를 조금으라도 낳게 해 줄지에 대한 정답은 그 어떤 공부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나는 내 심장소리만 크게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아니 몇 십 초가 흘렀다. 벌써 어른이 돼버린 9살짜리 딸아이는 뭔가 내게 미안했는지 애써 밝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던졌다.


"아니 그냥 그러면 집도 넓고 좋잖아. 그렇지 아빠?"


딸아이의 그 말이 나를 더 아프게 했지만 나는 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밝은 미소로 대답했다.


"맞네! 우리 딸, 아빠가 돈 많이 벌어서 더 큰 집으로 얼른 이사 가야겠네. 아주 큰 집으로 말이야!"


딸아이는 오답을 말한 아빠를 질책하지 않았다. 아니 애써 모른 척해줬다. 내가 아파하는 것을 느낀 것 같아서 나는 더 비참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딸아이가 저녁에 자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 아니 운다. 조용히 운다.


무슨 자격으로 내가 이처럼 순수한 영혼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내 이기심에 나를 질책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딸아이를 응원하며 힘겹게 눈물로 하루의 페이지를 마감한다. 아직 명확한 정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에게 이렇게라도 작은 숨구멍이 되어 주고 싶다. 나중에 나를 원망하고 네게 비수가 되는 말들을 하며 내 존재를 부정하는 그런 꼴을 당하더라고 이 순간에 아이가 갖고 싶은 작은 장난감이나 이런 속마음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래도 곁에 있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스스로 설득해 본다.


누구나 아주 완벽한 가족을 이뤘다고 속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걱정스럽고 불만족스러운 일은 매사 일어난다. 아주 풍족하고 화목한 집안에 태어나서 하얀 와이셔츠처럼 구김 없이 자랐다고 그 인생이 무조건 행복한 삶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 나름의 힘든 순간은 누구나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위안한다. 아직 삶이라고는 고작 사십 년뿐이 살지 않았기에 무엇을 정의하기에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셀프위로로 아빠라는 자리는 지켜내고 있다.


비록 나는 딸을 힘들게 하는 못난 아비지만, 아빠라는 이 행복을 준 딸에게 감사한다. 


이 지독한 인생에서 너라는 빛을 만났음에 그래도 감사하며 힘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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