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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l 10. 2024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지원해 주세요.

아직 내게는 내일 아침이 또 남아있다.

중년도 그렇다고 청년도 아닌 이상하게 걸린 빨래 마냥 어중간한 나이 마흔한 살.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가지고 이력서를 몇 군대 넣었다. 나름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시작했으니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잘 다니던 직장시계를 멈춘 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기에 크게 나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았다. 경제적인 활동은 아니었지만 학술지에 논문도 투고하고, 자격증 시험공부를 마무리하는 등 아침부터 저녁까지 뒹굴거리는 시간 없이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불안은 어찌 강당 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한 직장에서 20년이라는 이상한 벼슬 때문에 내 시야와 경력은 사회에 부적합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나는 취업사이트와 카페를 들어가서 일자리를 검색했다. 지원 자격이 가능한 일들을 찾고, 지역도 고려하면서 찾다 보니 막상 눈에 들어오는 일자리가 별로 없었다. 물론 노동으로 돈을 버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돈보다는 새로운 경력을 만들고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다가 지금 공부하는 대학원과 관련된 일자리를 찾았다. 단기 계약직이었지만 업무가 연구와 관련이 있어서 나는 이력서 양식을 다운로드하여서 하나씩 채워 넣기 시작했다. 조잡한 학력과 난잡한 자격증이 눈에 거슬렸다. 되는 대로 살아온 것은 아닌데 오해하기 딱 좋은 이력서였다. 몇 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자신감은 점점 추락했다. 


'혹시 이대로 멈추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도 꾸역꾸역 잘 포장해서 이력서를 보냈다. 그렇게 넣고 나니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십 대 후반 미친 척하고 학교를 자퇴하고 벼룩시장 신문을 뒤져가며 일자리를 찾고 전화를 돌렸던 어린 시절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자신감 하나로 평범함을 거절하고 밖으로 걸어 나온 나는 살아가는 게 드라마 같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빨리 배웠다. 그 결과 군대라는 동굴을 파고 20년 동안 빛을 피해 도망을 쳤다. 

물론 군대에서 계속 빛을 피해 다닌 것은 아니다. 인정을 갈망했고, 충분히 받았고, 빛이 났던 순간과 어둠이 몰려오는 모든 순간, 좋은 사람들 그리고 존재하면 안 될 사람들을 모두 경험했다. 단지 겉으로 포장된 안정된 직장이라는 껍데기를 스스로 벗어던지기에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고, 내 경우에는 20년이 조금 넘는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모든 일이 내가 생각한 데로 풀릴 것이라는 확신 따위는 애초에 가지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는 게 절대 지루하지 않다. 너무 예측이 불가능해서 똑같아 보이는 하루가 특별해지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이력서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연구소에 아무리 계약직 그것도 단기에 주말 출근이라고 해도 분명 해당 대학교를 출신의 사람이 유리할 것이라는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다 아는 사실이기에.


그래도 로또를 사서 지갑 속에 품은 것처럼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는 했다. 잠시 깔끔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옷장에는 운동복만 한가득이다. 군복이라는 유니폼은 나의 개성을 얼룩무늬로 만들었다. 그래서 다시 채우고 싶었다. 출근한 옷으로 저녁에 사람들을 만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평범함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일주일이 흐르는 동안 습관처럼 이메일을 열었다. 지원했다는 소리는 친동생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결과가 중요하니까 과정은 생략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결론은 떨어졌다.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무시당했다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이게 바로 냉정한 사회의 현실이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그래도 조금은 다정하게 '지원해 줘서 고맙다고' 답신이 왔다면 아주 조금은 더 따뜻하지 않았을까? 아니 오히려 놀리는 것처럼 들려서 더 불쾌할까? 아마 무시당했던,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둘 다 기분은 별로였을 것이다. 



박사과정을 거듭하면 할수록 담장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건 졸업논문을 쓰고 등재지에 아무리 투고를 해도 어쩌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나를 억눌렀다. 그러다 보니 괜한 짓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중년이 훌쩍 넘어서 그냥 자아실현이나 명함, 명예욕 때문에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로 쉬운 길은 아니었다. 중간에 멈추면 나중에 미련이 생길까 봐 끝까지 달리기는 하지만 먹을거리가 없는 학과이고 앞으로 전망이 아주 밝지는 않아서 인맥과 다른 요소들이 없다면 이거 하나로 밥벌이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빠른 포기는 다른 대안을 만든다. 그렇다고 박사논문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매듭은 질 것이다. 단지 마음을 가볍게 하겠다는 것이다. 생활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어른들도 모두 성숙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먹고살만하고 충분히 배웠다고 모든 면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참 이기적이고 실력이 없어서 뉴스에 나오는 그런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대안을 선택하려는 분들도 종종 있는 듯하다. 뭐 그것도 능력일 수 있으니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여기까지 대충 걸어오지는 않았으니 괜찮다. 이력서가 아마 휴지통으로 삭제되었겠지만 괜찮다. 나를 원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게 만들고, 아무도 찾지 않으면 내가 만들어서 스스로 일하리라. 다짐해 본다.


아직 내게는 내일 아침이 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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