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국물, 나의 기억
냉동실 아랫칸 구석에서 봉지에 담긴 꼬리뼈와 잡뼈를 꺼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뼈들이 사라지자, 그 공간이 왠지 허전해 보였다. 1년 전 곰탕을 끓인 뒤 남겨둔 것들이라 해동부터 해야 했다. 가족은 기름으로 번들거릴 주방을 떠올리며 곱지 않은 눈빛을 보냈다.
핏물을 빼고, 뼈에 붙은 미끈한 살점을 만지작거리며 지방을 도려냈다. 그리고 집에 하나뿐인 큰 냄비에 뼈를 넣고 물을 부었다. 곧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끓는 사골 위로 떠오르는 지방을 걷고 있을 때, 딸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아빠, 뭐 만들어?”
“곰탕.”
“곰?”
나는 웃으며 “하얀 국물”이라고 답했다.
딸은 “그거 좋아!”라고 외치고는 금세 주방을 떠났다.
첫 번째로 끓인 물을 모두 버리고, 찬물로 다시 뼈를 씻었다. 냄비를 닦고, 지방을 잘라내고, 다시 새 물을 부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천천히 집 안을 채워갔다.
결혼 후, 부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시절에도 나는 이런 음식을 자주 했다. 엄마가 나를 위해 해주던 음식이었다. 모든 걸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곰탕만큼은 꼭 해보고 싶었다. 단칸방 연탄보일러 앞에서도 엄마는 사골뼈를 사다가 며칠이고 우려냈다. 그 국물은 세상의 어떤 음식보다 따뜻하고 고소했다.
시간이 지나 엄마가 다시 곰탕을 끓여줄 때면, 우리는 늘 같은 말을 나눴다.
“엄마, 왜 옛날 맛이 안 나지?”
“나도 그게 신기하다. 더 좋은 걸로 해도 그 맛이 안 나더라.”
“연탄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
그 대화를 열 번은 더 했을 것이다.
아빠와 나는 곰탕을 유난히 좋아했다. 김치 한 조각이면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찬도 필요 없었다. 아마 그래서 엄마는 냉장실에 늘 뼈를 넣어두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자식이 좋아하니까.
딸아이는 나를 닮았다. 입맛이 까다롭지만, 이런 국물 요리만큼은 잘 먹는다. 그래서 나는 이 수고가 싫지 않다. 몇 시간을 서성이고, 설거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지만, 하얀 국물에 밥을 말아 한입 크게 떠넣는 그 작은 입술을 보면 마음이 녹는다.
곰탕이 끓는 동안,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엄마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잠시 힘들면 바닥에 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던 엄마. 작고 단단했던 그 여자가 눈앞에 선했다.
얼마 전, 병원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러 서울에 갔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사이에서 손톱을 다듬고 있던 엄마는, 우리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자식들 왔다고 웃으시네.”
선생님들이 말하며 병실을 나갔다.
엄마의 몸은 이미 한쪽이 굳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 콧줄 때문에 장갑을 낀 손, 그리고 그나마 자유로운 왼발만이 천천히 까딱거렸다. 잠시 웃다가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동생이 엄마 옆구리를 간지럼 피우듯 만지며 애교를 부리자, 엄마는 짧은 미소를 한 번 더 지었다.
나는 엄마의 다리를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은 80대였다.
엄마는 그들보다 스무 살은 젊지만, 누구보다 아파 보였다. 여러 번 마주한 풍경이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떠올리면 늘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억누르고 살아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일상 속의 작은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르면, 나는 며칠이고 우울해진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 정해준 ‘평균’ 정도의 행복이 보장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곰탕을 끓인 그날 저녁 나는 공원을 뛰었다.
추석을 앞두고, 세월은 다시 한 해를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게 싫었다.
엄마의 남은 시간, 그 고통의 시간이 더 이어진다는 게 두려웠다.
곰탕 한 그릇의 추억에도 무너지는 게 인생인데,
무엇을 더 얻겠다고 그토록 바쁘게 살았을까.
이제야 조금 비워내며 사십 대를 건너고 있지만, 어쩌면 그것도 엄마가 내게 남겨준 마음의 결과일 것이다.
그 마음. 고생고생하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오직 곰탕 한 그릇뿐이던 그 마음.
나는 돌고 돌아, 먼 훗날 딸아이가 곰탕을 보며 나를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물로 끓여낸 아빠의 곰탕을, 언젠가 그 아이가 자기 자식에게 끓여주는 날이 오기를.
요즘 부쩍 힘이 든다. 단단해지려 애쓰지만, 자꾸만 흐물흐물해지는 자신을 느낀다.
아마 그래서 곰탕을 끓였을 것이다. 엄마에게 투정부리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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