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고 있지. 아들 왔다고 웃네.
"아이고, 저... 웃네.. 웃어. 큰 아들 왔다고 웃어."
한 달 만에 엄마를 보러 병실을 찾은 나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옆 침대에 계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익숙한 그 얼굴. 할머니는 잠시 자기 몸 아픈 것도 잊고 우리 형제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환자 침대 옆에 걸린 출생 연도와 이름을 오래전에 봤기에 엄마보다 스무 살이 더 많으신 어르신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도 어떠한 사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환자지만 본인보다 한 참이나 어린 엄마를 보며 안타까워하시고, 그 엄마를 간호하는 우리 형제를 보면서 더 안쓰러워하시는 모습에 매번 감사했다.
할머니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그 미소는 오랫동안 얼굴에 머물지 못했다. 할머니 말대로 분명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씨익 하고 잠시 웃었다. 그것이 나를 알아보는 것인지? 아니면 반사적인 행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 사람들은 분명 엄마가 나를 알아봤을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조용히 무릎은 땅에 내려놓고 마비가 된 엄마의 반쪽을 주무르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계속 혼잣말을 하셨다.
"그래... 그 안에 있지. 그래 아들이 그것도 큰 아들이 왔는데... 그래 그 안에 다 있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있어.."
뒤에서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무표정으로 변한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다시 초점이 없어진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눈에 무엇인가 천천히 고이기 시작했다. 할머니 말대로 엄마가 정말 다 알고 있다면 그게 맞다면 엄마의 세상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떠올렸다. 만약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엄마가 거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면 지금 엄마는 행복할까?
엄마와 대화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사리 진지 오래이다. 아마도 5년쯤은 된 것 같다. 지금처럼 엄마가 한마디도 하지 않게 된 것은 1년이 조금 넘었다. 뇌출혈로 반신 마비가 오기 전까지 아주 아주 가끔 엄마는 단어를 입 밖으로 말하긴 했다. 물론 아주 짧은 말들이었다.
아마도 과자를 보며 "줘..."라고 엄마가 말했던 것 같다. 그때 동생과 나는 한없이 웃었다. 우리 김여사가 연기하고 있다고 이거 다 엄마가 그린 큰 그림이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놀리며 우리는 눈물이 날 때까지 웃었다. 이렇게 누워서 콧줄에 의지해 남은 삶을 지내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사실 처음 엄마가 입원하고 나는 주변 환자분들이 미웠다. 그분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냥 마음 좁고 꼬여서 내가 못난 놈이라 그런 것이다. 엄마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입원해 있어서 그게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대부분 어르신들은 말도 하고 정신도 멀쩡하셨다. 자식들이 면회를 오면 몸 어딘가 한 구석이 불편해도 잔소리를 하거나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시곤 했다.
반면에 엄마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표현하지 못한다. 물론 엄마 표정에서 짧게나마 읽거나 추측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인 현실이 너무 싫어서 그분들을 미워했다. 참 어리석게도 말이다.
엄마 옆에 계신 할머니는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를 병실에 던져두셨다. 아마도 장남인 나 들으라고 하신 소리인 듯하다. 나는 할머니가 흘려 둔 그 소리를 예민한 감각으로 잡아 흘려보내지 않았다.
"동생은 매일 와서 엄마 보고 우는데..."
한 달에 많이 오면 두 번 정도 오는 큰 아들. 그것도 병실에 오래 있어봐야 10분, 어떤 날은 그보다 짧게 머물다가 가는 큰 아들 들으라고 하신 소리인 것 같다. 더 머물고 싶어도 마음이 모두 무너져 있을 수 없는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엄마 앞에서 마음껏 울고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라는 잔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아니 살아내다보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가뭄에 갈라진 밭처럼 푸석하고 볼품없어져 버렸다. 어떤 식으로라도 끌고 가야 하는 그러기에 더 앞모습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나는 눈물을 삼킨 채로 동생과 목욕탕으로 향했다. 답답한 마음은 반신욕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고, 몸을 불려 떼를 밀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는 충만할 수 없는 걸까. 내속에 나를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1박 2일의 짧은 서울 일정을 마치고 다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게 말하고 싶어 하는 딸이 있는 내가 만든 울타리로 향하기 위해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올랐다. 평소라면 오디오북을 들으며 운전을 했을 테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라디오가 듣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임재범의 '사랑'이 흘러나왔다.
"사랑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에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서.
오늘 오늘이 지나면 그 사람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죠."
그 가사에 나는 가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운전을 할 수을만큼. 결국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운 채 엄마를 떠올렸다. 감히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이 든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 엄마가 없는 세상을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