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樅, 향나무
지난 2월 말, 한가한 시간에 홀로 창덕궁을 관람하며 겨울나무들을 감상했다. 지금껏 창덕궁을 관람할 때엔 곧장 인정전으로 향했는데, 이번에는 좀 찬찬히 나무를 살펴볼 요량으로 가까운 궐내각사로 향했다. 규장각 뒤뜰로 가니 담장 너머에 덩치 큰 나무가 보였다. 운한문(雲漢門) 너머에 있었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운한문 기둥에 몸을 기대고 까치발을 하여 살펴보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향나무인데, 어쩐 일인지 줄기가 부러져버렸고, 여러 개의 버팀목이 가지를 받히고 있었다. 수령은 족히 수백년은 되어 보였다. 이렇게 큰 나무라면 기념물로 지정되었을 것 같아서, 임경빈의 『천연기념물』을 찾아보니 역시 ‘천연기념물 제194호(1967년 3월 4일 지정), 창덕궁의 향나무’로 실려 있었다. 수령은 700년, 나무 높이 6m, 가슴높이 줄기 둘레 4.3이고,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창덕궁 경내 잔디밭에 사각단(四角壇)이 있고 그 위에 오래 된 향나무가 서 있다. 줄기가 이상하게 꼬여 있고 줄기 아랫부분의 껍질이 많이 상해서 죽었다. 창덕궁은 1404년(태종 4년)에 왕실의 별궁으로 창건된 것인데 그때 어느 정도 큰 향나무를 옮겨다 심은 것으로 생각되며 수령은 약 700년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오래되고 큰 향나무가 창덕궁 경내에 있었으니, 조선시대 문신들 중 누군가는 이 나무를 소재로 글을 지었을 것 같았다. 만약 글이 있다면 어떤 한자로 이 향나무를 표기했는지가 몹시 궁궁하여 《한국고전종합DB》를 검색하였으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우리 고전에서 향나무는 향목香木 뿐 아니라 원백圓柏, 만송蔓松, 회檜, 노송老松 등 여러 글자로 표기했다. 이 한자어들을 사용하여 차례로 검색했으나, 창덕궁 경내의 향나무를 묘사한 것으로 생각되는 글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창덕궁 향나무를 묘사한 글을 찾는 일은 번잡한 일상에 묻혀 잊혀져갔다.
9월이 되어 안대회 교수님의 역저 『한국시화사』를 읽다가, 혹시 유튜브에 이분의 강의가 있지 않을까하여 찾아보니 역시 있었다. 민음사에서 펴낸 『한국산문선』 발간 기념 강연으로, 제목은 “천년 문장의 주제 – 옛 문장은 무엇을 말했는가?”였다. 강연 후반부에서 유본예(柳本藝, 1777~1842)가 쓴 ‘이문원의 노송나무(摛文院老樅記)’를 소개하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창덕궁의 향나무를 소재로 쓴 글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옛 글에 특정 나무를 소재로 글을 쓴 경우는 흔치 않다면서, 동궐도에도 그려진 나무라고 설명하셨다. 바로 내가 2월 말부터 찾고 있었던 바로 그 글이어서 쾌재를 불렀다.
유본예의 문집은 《한국고전종합DB》에 수록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향나무를 ‘종樅’으로 표기했기에 내가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종樅은 중국에서는 향나무(Sabina chinensis), 일본에서는 전나무속의 Abies firma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이 글을 원문과 함께 살펴보고 싶었으니, 이일 저일로 차일피일 하다가 겨우 9월 17일 도서관에 가서 『한국산문선』을 찾아 읽어보았다.
“이문원(摘文院)의 동쪽에는 늙은 노송나무가 있는데 적어도 백여 년은 된 나무이다. 그 몸통은 울퉁불퉁 옹이가 졌고 가지는 구불구불하여 멀찍이서 바라보면 가파른 산등성이나 성난 파도와도 같지만 바짝 다가 가서 보면 둥그스름한 큰 집채와도 같았다. 기둥으로 나무를 받쳤는데 그 기둥이 모두 열두 개이다. 나무 옆에 누각이 있는데 바로 내가 이불 을 들고 가서 숙직하는 장소이다. 좌우에 도서를 쌓아 놓고 교정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가 때때로 나무 곁을 산책한다. 쏴쏴 불어오는 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널찍이 드리운 서늘한 그늘 아래를 거닐면 몸은 대 궐 안 관아에 있어도 숲속의 소나무와 바위 사이로 훌쩍 벗어나 있는 기분이 든다.”**
저자는 이 향나무가 보통 식물과는 다르게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점에 착안하여, “가축이 인간에게 의지하여 살아나듯이 노송나무도 인간에 의지하여 살아난다. 나는 저 깊은 산중 인적 끊긴 골짜기에 이렇듯이 번성하게 자란 노송나무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라고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유희(柳僖, 1773~1837)는 1820년대에 편찬한 『물명고』에서 “종樅, 솔잎에 측백 줄기. 어떤 소나무[松]에 속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잣나무를 설명하는 부분 끝에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당시 물명에 밝았던 유희도 몰랐던 ‘종樅’에 대해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유본예는 향나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청나라와의 학술 교류로 종樅이 중국에서 향나무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감』에는 일본 식물명의 영향 때문인지, ‘종樅’이 전나무의 한자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옛글의 종樅’은 ‘이문원노종기(摛文院老樅記)’처럼 향나무를 표기한 분명한 사례가 있으므로, 문맥에 따라 향나무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수백년 전 옛글에서 묘사된 향나무를 지금도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끝>
* 임경빈, 『천연기념물-식물편』, 대원사, 1993, p. 344
** 안대회, 이현일 편역, 『한국 산문선 9, 신선들의 도서관』, 민음사, 2017. (摛院之東有老樅焉, 要之為百餘年物也. 其身擁腫, 其枝蟠拏, 望之如奔峭怒濤, 即之則穹然廈屋也. 擎以柱, 柱凡十二, 傍有樓, 寔余持被之所也. 左圖右書, 讐校鞅掌, 而有時乎逍遙其側, 聽謖謖之長風, 踏漫漫之涼陰, 身在禁省, 而脫然有山林松石間意.)
+표지 : 창덕궁 궐내각사의 향나무 (2025.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