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덩굴
古寺木皮瓦 굴피 지붕의 옛 절
僧去薜荔鎖 중은 떠나고 벽려薜荔 덩굴로 덮혔네.
小鑪燼檀香 작은 향로엔 타다 남은 단향이 있고
陰壁蔓山果 응달 벽엔 다래 머루 덩굴 뻗었네
蒼鼠眠佛龕 불감佛龕에서 잠 자던 청설모는
驚人竄復墮 사람에 놀라 달아나다 떨어지네.
幽深此焉極 그야말로 이곳은 심산유곡이니
荒落固自可 황폐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
灑掃寄枕簟 청소하고 잠자리에 누으니
白雲來就我 흰 구름 나에게 다가오는구나
筧泉試甘洌 대롱에서 흘러나온 샘물이 달고 차가워
茗團發包裹 차 덩이 꾸러미를 풀었네.
中峯採參子 봉우리 안에서 산삼 캐던 사람도
日暮路坎坷 해는 저물고 산길은 험하여
相偶宿不歸 돌아가지 못하고 함께 묵으니
隔窓耿松火 창 너머엔 관솔불이 깜박이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시 ‘대승암에 묵으며 (宿大乘菴)’이다.* 우연히 1710년대 간행 추정 번각본 『농암집』 한권을 펼쳐보다가 ‘벽려薜荔’가 눈에 들어와 읽어보았다. 대승암은 현재의 설악산 일대, 당시 한계산으로 불리던 산록에 있었던 암자로 보인다. 이름으로 보아 아마도 대승령 근처에 있지 않았을까? 김창협이 하루 묵었던 당시에도 벌써 중은 떠나고 황폐해지고 있었으니,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려울 터이다.
필자는 몇 해 전에, “숨은 선비를 상징하는 초사의 벽려薜荔는? - 모람과 왕모람”이라는 글을 써서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지에 게재한 적이 있다.** 『초사』의 벽려는 현재 푸밀라모람(Ficus pumila)로 부르는 무화과속의 덩굴성 식물로 전국 곳곳의 식물원 온실에 심어져 있다. 최근에는 오산 물향기수목원 온실에서도 보았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벽려의 근연종으로는 모람(Ficus oxyphylla), 왕모람(별명 애기모람, Ficus thunbergii)이 있다. 그러나 이 모람 류는 따뜻한 지방인 제주도나 남해안에서 자라므로, 대승암이 있었던 설악산의 심산유곡에는 자랄 수 없는 식물이다. 그렇다면 김창협은 이 시에서 무엇을 보고 벽려라고 했을까?
『초사』의 벽려인 푸밀라모람은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았으나, 우리 조상들은 숨은 선비의 상징인 벽려가 무엇인지 고심했을 터이다. 조선시대에는 대개 ‘담쟁이덩굴’이나 ‘줄사철나무’를 벽려로 이해한 듯하다. 필자의 벽려에 대해 썼던 글에서 몇 줄 인용한다.
“조선 중종때의 학자 최세진崔世珍(1468~1542)의 『훈몽자회』에서는 벽薜을 “담쟝이 벽”, 려荔 “담쟝이 례, (중국) 속칭 벽려초薜荔草”라고 설명했다. 즉 벽려를 담쟁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모람과 줄사철나무의 한자명으로 벽려薜荔를 기재했으며,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에서는 벽薜과 벽려薜荔를 ‘줄사철나무’로 훈을 달고 있다. 이로 보면, 실제 우리나라에서 벽려를 담쟁이덩굴이나 줄사철나무로 이해한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황폐해지는 대승암을 뒤덮고 있었던 벽려는 무엇일까?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줄사철나무는 “경북(울릉도), 울산시, 인천시, 경기(백령도, 연평도) 이남의 숲 가장지라, 산지 능선 및 바위지대”에 자란다. 담쟁이 덩굴은 우리나라 전국의 산지에 자란다. 이러한 두 식물이 자라는 분포지를 고려하면, 김창협은 담쟁이덩굴을 ‘벽려’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식물 감상을 위해 전국의 산야를 꽤나 누비고 다녔다. 경기도 일원의 야산에서는 줄사철나무를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설악산에서 줄사철나무를 만난 기억은 없다. 그러나 담쟁이덩굴은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혹시 설악산에서 찍은 담쟁이덩굴이 있을까 사진첩을 뒤졌으나 아쉽게도 없다.
농암 김창협은 조선의 대표적인 문장가중 한 분으로 『조선한문학사』에서 김태준은 “천자(天資)가 온수(溫粹)하고 정결하야 일점의 진기(塵氣)가 없으며 문장은 전칙(典則)하고도 농욱(濃郁)하야 육일거사의 정수를 얻엇스니 퇴계 이후에는 처음보는 문장경술(文章經術)이 양미(兩美)하둔 어룬이다.”라고 칭송하고 있다. 현상윤은 “이조문학(李朝文學)을 논할 때에 누구나 상(象)·월(月)·계(谿)·택(澤)과 연암(燕巖)을 말하나, 나는 농암(農巖)과 연암을 그 최고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창협은 『농압잡지』라는 필기도 남겼다. 안대회는 『한국시화사』에서 김창협에 대해, “작가의 자아와 개성에 눈뜨기 시작하여 특정한 시대의 작풍을 배우기를 거부하고 작가의 개성을 표현하고, 삶의 터전과 실제 풍경을 사실대로 묘사하자는 시론”을 널리 퍼트렸다고 했다. 또한 “시화에서는 격조와 기상을 대체하여 성정性情과 진경眞景을 창작본연의 가치로 내세웠다.****라고 했으므로, ‘대승암에 묵으며 (宿大乘菴)’에서도 실경을 묘사했을 것이다. 이러한 대 문호가 설악산의 담쟁이덩굴을 ‘벽려薜荔’로 표기했으니, 우리나라 옛 글에서 벽려는 글이 지어진 환경을 감안하여 담쟁이덩굴로 이해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끝, 2025.10.13)
*『고전종합DB』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했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206호, 2023년 9/10월호, pp.72~80 (https://brunch.co.kr/@783b51b7172c4fe/21)
***송혁기, 조선문장가열전 중에서
****안대회, 한국시화사, p.293
+표지사진: 담쟁이덩굴 (2024.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