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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툰베리의 『Flora Iaponica』와 보리수나무

Elaeagnus umbellata Thunb.

by 경인

왜 그런 습관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단어 하나 하나를 발음해야 비로소 문장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된다. 그러니 책 읽는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어서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새책이며 헌책을 가리지 않고 조금씩 산다. 식물애호가로서 재미있을 만한 것을 한두 권씩 사는데 대부분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감상하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한 것들이다. 물론 일별하다가 흥미가 생기면 한 두 페이지 숙독하기도 한다.


이렇게 산 감상용 책 중에 라틴어 책이 한 권 있다. 제목은 『Flora Iaponica』로 저자는 Caroli Petri Thvnberg, 1784년 간행으로 표기되어 있다.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는 스웨덴의 식물학자이자 린네의 제자로, 1775년부터 1777년까지 일본에서 식물을 채집하여 연구한 분이다. 그는 스웨덴에 귀국한 후 일본에서 연구한 식물들을 정리하여 1784년에 출간한 것이 이 책인데, 꽤 많은 식물 세밀화가 들어있다. 물론 내가 가진 것은 원본은 아니고, 일본의 식물문헌간행회에서 1933년에 영인본으로 제작한 한정판 중의 하나이다.


칼 페테르 툰베리의 일본식물지 영인본


라틴어 저작물이니 그야말로 나에겐 그림책이라 눈으로 감상하기에 딱 좋다. 그리고 식물애호가로서 250여년 전 툰베리가 눈으로 보고 채집하여 학명(scientific name)을 부여하고 삽화로 남긴 식물들이 흥미로워 가끔씩 펼쳐 본다. 도판이 있는 식물 중,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수목들도 꽤 여럿 있다. 광나무, 보리수나무, 자금우, 산호수, 사스레피나무, 애기동백 등이다.

툰베리 일본식물지의 보리수나무 도판 - 보리수나무의 학명 Elaeagnus umbellata가 최초로 출판된 곳.


대부분 남부 지방에 자라는 사철 푸른 상록수들이다. 이 수목들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툰베리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을 터이다. 아마도 그는 이 수목들에게 학명을 부여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와 닿은 나무들을 골라서 삽화로 남겼을지도 모른다. 이 중에 보리수나무는 유일한 낙엽수이자 중부지방에서도 숲 가장자리에 흔히 자란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보리수나무에 대해 툰베리가 남긴 삽화를 감상하면서, 이 나무가 250여년 전 한 서양인 식물학자에 의해 채집되어 처음으로 식물학 서적에 등장하고 학명이 부여되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보리수나무 꽃 (2022.5.8 구봉도)
보리수나무 열매 (2024.9.28 성남)


지금은 새로운 종의 식물을 발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지만, 당시 서양 식물학자들에게 동양은 노다지이자 별천지, 블루오션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툰베리는 이 보리수나무가 대한민국에서 석가가 깨달음을 얻을 때 함께 했던 인도보리수나,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Lindenbaum)의 피나무와 혼동을 일으킬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툰베리(Thunberg)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여러 종의 식물 학명에 명명자로 등장하고 있어서 식물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식물학자 중 한 분이다. 『한국의 나무』를 참조하면, 보리수나무 뿐 아니라 천선과나무, 떡갈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 산앵도나무, 장딸기, 찔레꽃, 사철나무, 노박덩굴, 꽝꽝나무, 감탕나무, 먼나무, 새머루,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상산, 작살나무, 누리장나무, 광나무, 인동, 덜꿩나무, 가막살나무 등 우리에게 익숙한 나무들 학명의 명명자에 툰베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식물들을 처음 수록한 책이 바로 『일본식물지(Flora Iaponica)』(1784)라서, 비록 라틴어를 읽지는 못하지만 식물애호가인 나에겐 소중한 책이다. (끝)


+표지사진 - 보리수나무 꽃 (2018.5.4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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