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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를 뜻하는 ‘괴槐’를 느티나무로 이해한 유래는?

강명관 교수의 『냉면의 역사』를 읽으며

by 경인

강명관 교수님의 최근 저서 『냉면의 역사』는 아마도 장안의 냉면애호가들이라면 너도나도 읽고 좋아할 재미있는 책이다. 나도 냉면을 즐기는 편이라 아끼면서 읽었는데 앞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만났다. 두보 시의 ‘괴엽냉도槐葉冷淘’가 이색의 한시 등 옛 시가에 가끔 인용되는데 이것이 “조선의 음식문화에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라고 추정 하면서, 『성호사설』 만물문의 ‘냉도冷淘’를 인용하는 부분이다.* 『한국고전종합DB』의 번역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시가詩家에서 괴엽냉도槐葉冷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옛날 야호천野狐泉에 사는 한 여자가 수화 냉도水花冷淘를 잘 만들어, 오吳 나라의 칼로 썰고 낙양洛陽의 술로 일어서 만들었다.” 하고, 두보 시에,

푸르고 푸른 저 높은 괴엽을

따 모아서 주방으로 보낸다

새 국수를 가까운 저자에서 들여오니

즙과 찌끼가 완연히 갖추었네

靑靑高槐葉 採掇付中厨 新麵來近市 汁滓宛相俱


라고 하였다. 윗 말을 미루어 생각건대, 냉도는 수화水花나 괴엽槐葉 따위를 밀가루에 반죽하여 떡을 만들고, 그것을 잘게 썰어 술에 담가 두었다가 식혀서 먹는 음식인 듯하다. 그리고 괴엽이란 것도 노란 꽃 피는 괴(槐 회화나무)가 아니며 느티나무[柟木]인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柟]를 가리켜 '괴槐'라고 하는 것도 유래된 곳이 있는 듯하다.**



냉도冷淘 (성호사설 만물문, 한국고전종합DB 자료)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에서 필자는 ‘황유黃楡’가 느티나무임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조선시대 사전류 문헌에도 느티나무가 나오는데, 『훈몽자회』에서는 ‘황유수黃楡樹 누튀나모’로 나온다. 『고어사전』을 보면, 1690년간 『역어유해』를 인용하여 황괴수黃槐樹를 ‘느틔나모’라고 했다. 유희柳僖는 『물명고』에서 “괴槐의 음이 회懷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인데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이유 없이 ‘느티괴’라고 해서 훗날 민간에서 잘못 알게 되었음은 어찌된 일인가?”*라고 하면서 괴槐를 ‘회화나모’라고 밝히고, 대신 황유黃楡를 ‘느틔’라고 했다. 『훈몽자회』와 『물명고』를 따르면 조선시대에 느티나무를 황유黃楡로 표기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쓸 당시 나는 대학자 서거정이 ‘괴槐’를 ‘느티 괴’라고 했던 유래가 무엇일까 궁금했으나 그 유래를 알 수는 없었다. 이제 이익의 '냉도' 기록에서 그 의문의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석가탄신일 절식으로 느티나무 어린 잎으로 느티떡을 해 먹었다고 한다. 이 느티떡을 한자로 ‘괴엽병(槐葉餠)’, ‘유엽병(楡葉餠)’ 혹은 ‘남병(楠餠)’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풍습은 상당히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보의 시 ‘괴엽냉도槐葉冷淘’가 읽히면서 ‘괴엽槐葉’을 식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서거정 등 일부 학자들이 ‘괴槐’를 ‘느티나무’로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노란 꽃 피는 괴槐, 회화나무 (2017.8.2 안양)
느티나무 잎 (2022.5.5 운길산)


중국에서 괴槐는 회화나무를 뜻한다. 학자수로도 불리는 회화나무는 중국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에 정원수로 도입된 나무이다. 그러므로 두보 시의 ‘괴엽槐葉’은 분명 회화나무 잎이다. 한편 느티나무는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는 나무이다. 중국에서 느티나무는 대개 ‘거欅’로 표기한 듯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황유黃楡, 괴槐, 남柟 등 다양한 한자로 표기되었다.


괴엽냉도 (두시언해, 세종한글고전 site 자료)


혹시 『두시언해』에서도 ‘괴槐’를 ‘느티나무’로 번역했을 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프른 노ㅍ〮ㄴ 槐葉을 ㅂ다 (靑靑高槐葉)’이라고 하여 ‘괴엽槐葉’을 우리말로 번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호 이익은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柟]를 가리켜 '괴槐'라고 하는 것”의 유래를 두보의 시 ‘괴엽냉도槐葉冷淘’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내 오랜 의문이 풀린 셈인데, 그것도 『냉면의 역사』를 읽다가 우연히 풀린 것이다. 어떤 의문이든지 시간을 두고 천착하노라면 언젠가는 풀리니, 이것도 독서의 한 즐거움이다. (끝)


* 『냉면의 역사』 pp.29~30

** 冷淘 … 詩家多言 槐葉冷淘 昔野狐泉一女子 善制水花冷淘 㘦以吳刀 淘以洛酒 杜詩 靑靑髙槐葉 採掇付中厨 新麪来近市 汁滓宛相俱 意者 以水花槐葉之類 溲麪爲餅 細㘦漬酒候冷而食者也 槐非花黄之槐 恐是柟木也 我國指柟爲槐 亦似有自 – 『星湖僿說』(벅역문에서 식물 관련 일부 문맥 수정함)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1993, p.276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8718102)

**** 권경인, “소남(小楠) 심능숙(沈能叔) 집안의 현교목 남(楠)에 대하여 – 느티나무”, 문헌과해석 99호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scholardetail/product?cmdtcode=4010071686878). ‘남柟’은 현대에 통용되는 자전류에서 ‘녹나무’로 훈을 달고 있으나 이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일본의 이해가 도입된 것이고, 성호 이익 당대에는 ‘녹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를 가리킨 한자였을 것이다.

+표지사진 - 회화나무 (2025.9.11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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