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깔나무가 삼나무로 바뀌는 순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고서 중에 정약용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아학편兒學編』 필사본이 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살펴보다가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을 만났다. ‘삼(杉)’에 대해 훈을 ‘익기나무 삼’으로 썼다가 ‘수기나무 삼’으로 고친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익기나무’는 잎갈나무 혹은 이깔나무일 것인데 우리나라에 자생하며 학명은 Larix gmelinii이다. 이 책의 서지에 원본 소장처는 보성 남평문씨로 되어 있고, 책 표지 묵서에는 “병신년(1896) 10월”이 적혀 있다.
지석영은 『아학편』을 증보하여 융희원년(1907)년 경에 한자에 대해 우리말 뿐 아니라 일본어, 영어로도 훈을 단 『아학편』을 출판했는데, 이 판본은 국립국어원에 소장되어 있다.* 지석영 본을 살펴보면, 삼(杉)’에 대해 우리말로 ‘전나무 삼’, 일본어로는 ‘スギ’로 훈을 달고 있다. 물론 ‘スギ’는 우리가 현재 ‘삼나무’로 부르는 일본 원산의 나무이고 학명은 Cryptomeria japonica이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1896년에 필사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에서 ‘익기나무’를 ‘수기나무’로 고치고 있데, ‘수기’는 スギ를 뜻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에서 오랫동안 잎갈나무를 뜻했던 삼(杉)이 일본의 영향으로 삼나무를 뜻하는 글자로 바뀌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1896년 필사자가 처음 ‘익기나무’로 쓴 것과 나중에 ‘익’을 지우고 쓴 ‘수’는 글씨체가 다르다. 그러므로 첫 필사자가 아니라 훗날 책 소유자가 고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수기’나무로 고친 사람은 훗날 지석영본 『아학편』등의 확산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나는 2023년 여름에 출간된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에는 “삼杉 – 근대에 조림된 남부 지방의 삼나무, 그리고 잎갈나무”라는 글이 한 편 실려있다. 이글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문헌을 살펴보면, 구한말에 출간된 『자전석요』에서는 “杉삼. 나무 이름, 수긔목 삼”, 1913년 간행 『한선문신옥편』에서는 “杉 삼나무 삼. 나무 이름, 소나무 비슷, 선재船材”, 그리고 1930년대의 『한일선신옥편』에서는 “杉 수긔목 삼, 일본명 ‘스기’”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지석영의 『자전석요』에서 훈으로 단 ‘수긔목 삼’의 ‘수긔’가 일본명 ‘스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때에는 부산 지방에 삼나무가 일본으로부터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 조선시대 때 일부 문헌에서 잎갈나무나 전나무로 봤던 삼杉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삼나무가 도입되면서부터 상대적으로 혼란이 줄어든 듯하다.***
즉 조선시대에 잎갈나무 혹은 전나무를 뜻했던 삼杉이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한결같이 ‘삼나무’를 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자전석요』에서 삼杉을 ‘수긔목‘이라고 했고 이 ‘수긔’가 ‘スギ’일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실제로 지석영은 이미 『아학편』에서 삼杉에 대해 ‘スギ’라는 일본어 해석을 달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자전석요』에서는『아학편』에 기록했던 우리말 뜻 ‘전나무’를 수록하지 않은 점도 특기할 만하다.
앞에서 소개한 필사본 『아학편』에 작성된 해인 1896년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 사회의 곳곳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작하는 때였을 것이고, 약소국 조선은 이를 주체적으로 소화할 여유가 없었다. 사회 모든 분야가 그랬을 것인데, 일본 한자어의 영향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글자 ‘삼(杉)’에 대한 훈을 필사본 『아학편』에서 ‘익기나무’에서 ‘수기나무’로 고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숨가쁘게 외세가 밀려들어왔던 구한말 역사의 한 현장을 바로 코앞에서 보는 것 같아 안타깝고, 한편으론 마음이 서늘해진다. (끝)
* 지석영 출간 『아학편』은 한글박물관에서 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지석영 본에서 우리말 훈으로 ‘전나무’를 달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삼(杉)이 잎갈나무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전나무를 뜻하기도 한 것의 잔영일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더 검토해봐야 한다.
***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1993), pp. 130~133.
+표지사진 : 삼나무 (2018.4.16 여수 금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