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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cd Sep 01. 2021

입사 7주년을 맞이하며

자전거 위의 겁쟁이



축하받지 못한 날


9월 1일. 달력을 보다 문득 오늘이 입사한 지 딱 7년째 되는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전 스치듯 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세븐은 숫자 7에 그렇게 강박 아닌 강박이 있다던데. 7주년.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그 숫자가 새삼스럽게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 회사는 10년 장기근속자에게 상을 준다. 언젠가 받을 거라 기대해본 적도 없고, 오히려 절대 받고 싶지 않다 생각했던 그 장기근속상도 3년밖에 안 남은 것이다. 신입사원보다 10년 장기근속자에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기쁘기보단 무섭다. 


햇수로 딱 7년을 채웠으니 연차로는 무려 8년 차에 접어든다는 사실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신입사원 시절 바라보았던 이 연차는, 마치 대학교 신입생 때 스물다섯 복학생 어른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모든 일을 척척 슈퍼맨 원더우먼처럼 해내고, 후배들을 자신 있게 이끄는 그런 유능한 '과장님'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와장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간 7년을 등지고 선 요즘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그나마 는 것이라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버겁다 느낀다. 나 7년간 뭐했지? 20대 그 어린 나이에 입사해서, 바뀐 건 내 나이 앞자리 숫자일 뿐 같이 느껴진다. 이 연차가 됐다고 꼭 뭐가 되어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난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 같다.


O주년, OOth anniversary는 보통 축하할 때 쓰인다. 그런데 슬프게도 나의 7주년은 나에게 조차 축하받지 못했다.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나


요즘같이 퇴사와 이직이 흔해빠진 세상에 첫 회사를 7년 다녔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동안 나보다 뒤에 입사한 경력 선.후배들을 벌써 한 무더기나 먼저 떠나보냈다. 그들은 나를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한 회사를 다닐 수가 있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정말 나도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요즘엔 성실함이 꼭 미덕은 아닌 세상이다. 그분들이 진짜 어떤 의미로 나에게 그 말을 건넸는지는 몰라도, 나는 한 번도 그 말을 순수한 칭찬으로 받아들여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괜히 속이 베베 꼬이고, 속으로는 온갖 것에 컴플렉스 덩어리인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너는..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 같아." 

얼마 전, 그리 오래 만나진 못했던 남자친구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누구나 매일 좋고 행복한 회사생활이란 없겠지만, 그때도 끙끙 무언가 회사 일로 힘들어하던 나에게 그는 그렇게 말했다. 달리는 자전거의 관성에 익숙해져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 같다고. 그런 비유를 들어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애정과 걱정 어린 말이었지만, 엄청난 팩트 폭행에 온몸의 뼈가 다 부러졌다.


“맞아. 그런 것 같아"라고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그 말은 나에게 큰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가장 슬픈 것은 그 후 약 1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그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치고 지쳐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이만 번쯤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틀비틀, 고장 난 상태로 그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어디로 삼아야 하는지도 흐릿해졌다. 정말 그저 페달을 구르던 7년의 관성으로 어찌어찌 넘어지지 않고 안장 위에 있는듯한 느낌이다.


사실 언제든지 자전거에서 내리려면 내릴 수 있겠지만, 무섭다. 다 내던지고 자유의 몸으로 걸어가는 상상을 하면 속이 다 시원하면서도, 동시에 말할 수 없이 겁이 난다. 스스로 내려오지 못하니, 차라리 외부 그 어떠한 압력을 통해 강제로라도 내려오고 싶은 지경이다. 지난 7년 동안 난 오히려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걸을 수 있는 용기


아직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는 못했다. 다들 무작정 자전거에서 내려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반드시 '다음 자전거'를 찜해두고, 환승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아주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다음 자전거를 알아보고 구할 에너지마저 요즘엔 동이 났다. 그냥 색깔만 조금 다르고 성능만 조금 더 좋은 자전거를 타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 진다. 사실 나는 그냥 다 버리고 걷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아니, 그냥 잠깐 트랙 밖에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이 생각도 다시 스쳐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1년 전 나처럼 또다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구르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마음에 또 어떤 바람이 불어 새롭고 비싼, 삐까뻔쩍한 자전거 갈아타기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용기를 내서 자전거에서 일단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잠깐 잘 닦여진 트랙에서 벗어나 내 페이스대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만 그 용기가 오늘은 2% 부족해서, 대신 저녁 산책로라도 걷기로 한다. "산책 갈까? 걸을까?" 물으니 ‘갈까’ 소리에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강아지를 데리고 그렇게 밖을 걷는다.


어느덧 가을이 온 건지, 선선한 저녁 공기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로를 걷고 있다. 그 사이에 묻혀 나도 그저 강아지와 산책 나온 행인 1이 된다. 이렇게 걷다 보면, 진짜로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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