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10편
파리 4일차. 1월 31일.
목차
1. 판테온(팡테옹)
2. 퐁피두 센터
3. 에펠탑
4. 라파예트 백화점
팡테옹 → 퐁피두 센터 → 에펠탑
팡테옹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주택가를 거닐다 나타나는 공원처럼 좁은 도로를 타고 찾아가다 보면 큰 건물이 하나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팡테옹이다.
팡테옹은 국립 묘지다. 다른 파리 관광지들에 비해, 나름 외지에 있다. 에펠탑이나 개선문, 몽마르뜨 대성당 같은 경우 그 근처 역에만 가도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입구에 있는 삼각형 부조.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한다'라는 문구.
엄숙하다.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돔형 천장. 안쪽에 그림이 있다. 저기에 어떻게 붓칠을 했을지 상상해본다.
여신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왼쪽으로는 그녀를 추대하는 시민들이 보인다.
공간만 남으면 그림을 채워놨다.
관광객들이라 함은 카메라를 들고 있거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구글 맵스를 따라가거나 현지인(파리지엥)답지 않게 화사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가운데에 진자가 진자운동을 한다. 좌로 갔다 우로 갔다.
단체 관광객들이 별로 없다. 그 말은, 중국인이 많지 않고 인스타 성지가 아니며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 수가 적고, 조용한 관광지라는 뜻이고 호객꾼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팡테옹 옆 골목.
파리의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일행이 선생님을 따라 5-10명씩 이동하면서 무언가를 필기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장소를 설명했고 아이들은 받아 적었다. '세계 유적 근처를 수학여행으로 오는 너희들은 참 복받은 아이들이구나, 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런 곳은 경주뿐이었는데.
팡테옹은 묘지다. 묘지라면, 지하로 가야한다. 지하벙커에 들어선 기분이다. 칸 별로 무덤이 나뉜다. 안 쪽에 가면, 작은 예배단이 있다. 관도 있다.
<레 미 제라블>에서는 형사 '자베르'와 도망자 '장발장'은 추격전을 이어간다. 지하로 내려가서 하수구를 따라 거닐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다. 음침하다.
오른쪽 사진은 빅토르 위고 방이다. 프랑스인들에게 '빅토르 위고'란 어떤 존재일까. 그 시대에 소시민의 비참함을 조명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려 했다. (본인이 금수저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받는 자들을 조명하려 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로 친다면 '박지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짓다만 건물같이 생겼다. 주변에 안전 펜스를 쭉 둘러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현대식 센스있는 미적 감각을 표출하고 싶은 의도였나본데, 내 눈엔 건축 골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닥, 센스가 빛난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퐁피두 센터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같은 분위기다. 현대 미술관이다. 현대 미술관은 별 감흥이 없다.
현대 미술품의 가치는 둘 중 하나 아닐까. 첫째, 역사적 가치(세계사를 품고 있는)를 지니거나 둘째, 머리를 도끼로 찍는 것 같은 신선함을 주거나.
수 백 년 동안 유명세를 이어온 고전 작품이 아니라면, 적어도 현대 미술품이라면, 그 미술품을 맞닥뜨렸을 때 신선한 충격이 팍 들어줘야 미술적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눈이 그런 가치를 판별할 만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의 진가를 꿰뚫어 볼 만한 능력은 없지만 대중이 공유하는 상식 정도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계의 백종원은 어디 없나.
그 분야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나같은 일반인들이 소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얕고 넓은 지식을 전달해주는, 그런 전문가.
대표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세계사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프랑스어와 영어 천지. 내가 해독할 수 있는 활자는 여기 없다. 큐브 문제를 푸는 것처럼 답답했다.
점심으로 먹은 에스까르고. 달팽이 요리다. 내 유럽 여행 중에는 여러 목표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그 도시의 명물을 먹어라'였다.
1) 에스까르고
런던에서는 피쉬 앤 칩스였고 파리에서는 에스까르고와 마카롱, 스위스는 퐁듀. 고집을 부려서 에스까르고를 먹게 됐다. 웬만해서 새 요리에 도전하는 걸 꺼리는 편인데 에스까르고는 기어코 먹고 싶었다.
...
2개 까먹고 나서 전부 다 버리고 싶었다. 두꺼운 소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뜹뜨릅한 초록색 뭐시기가 올라가 있는데 그 녀석이 특히 기분 나쁜 맛을 낸다. 달팽이 내장인가. 12피스에 15유로 정도 했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포만감. 그래서 빵을 리필해서 먹었다. 억울해서, 빵으로라도 배 채웠다.
배고픈 채로 식당을 나설 수는 없지 않은가.
2) 물
처음 식기를 세팅할 때 웨이터가 와서 물었다. '물 줄까?' '응 줘! 고마워'. 2.5유로다. 탄산을 시킬 예정이라면 물을 따로 시키지는 말자. 명심하자, 공짜 물은 없다.
흐린 날의 에펠탑
에펠탑이야말로 골조탑일 뿐이다. 퐁피두랑 비슷한 시리즈 아닐까.. 송전탑과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잘 모르겠다. 에펠탑이 어디가 아름다운지.
내 눈엔, 런던의 오래된 길거리를 한 번 더 가 보고 싶다. 그 도시가 품어온 역사가 전해지고, 사소한 상점 간판들을 보면 소상공인의 소박한 정감이 느껴진다.
그 도시의 원색을 드러내주는 건, 어느 한 건축가가 지은 장엄한 건축물보다는 그 도시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보통 일상을 지내는 곳이 아닐까.
손 시려워서 입김 불고 있다.
굉장히 추웠다, 그래서 에펠탑을 즐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카메라를 들고, 포커스 링을 요리조리 조절하며 피사체에 알맞는 줌을 맞추려면 적어도 1분의 시간은 필요하다. 손이 시려워서 포커스링을 돌리는 것도 힘겨웠다. 비에 온몸이 젖고 신발 깔창에도 조금씩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해서 더 이상 바깥을 거닐기 싫었다.
어서 실내로 들아가고 싶은 생각 뿐. 몸을 녹이고 싶은 생각 뿐.
파리 한복판에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는 이 녀석. 우아한 역사를 지닌 것도 아니다. 130년 전 쯤, 파리 엑스포를 기념해서 세워진 첨탑.
100년 전, 세계적으로 고층 건물이 없었을 때에는 그 위용을 떨칠만 했을 것이나, 지금 당신은 그닥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에펠탑을 즐기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인스타 업로드 하기.
둘, 길거리 상인들이 판매하는 아기자기한 에펠탑 기념품 수집하기.
셋, 밤에 다시 와서 번쩍번쩍이는 거 구경하기.
여러모로 거품이 낀 관광지라고 본다. (과거엔 어쨌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어릴 적부터 세계 국가를 알아갈 때마다 당연스럽게 봤던 에펠탑. 대단함은 없었다. 거기서 오는 실망 탓에 에펠탑에 관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밤에 들른 어느 백화점.
파리는 백화점의 근원지다. 세계 최초 백화점은 파리에서 시작됐다. 1850년 경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은 '미스꼬시 백화점'이다. 1930년 즈음이다. 일제강점기의 한복판. 이상의 작품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상의 몇 안 되는 소설 중 <날개>에서, 26살인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미스꼬시 옥상 꼭대기에 가 있다. '날개야 돋아라'라고 외치고, 그는 뛰어내렸다.
그의 다른 시, <AU MAGASIN NOUVEAUTES>다. ('새로운 것들이 가득한 가게에서'라는 뜻, 백화점을 가리킨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의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 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 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무아젤.
이상의 눈에 비친, 처음 보는 낯선, 일본애들이 득실대는 경성에, 프랑스에서 전해진 이놈의 복잡한 몇층짜리 번쩍거리는 건물. 사각형 내부의 사각형 내부의 사각형 내부의 사각형.
신세계 백화점, 롯데 백화점, 현대 백화점 모두 가져다 붙여도 이 백화점에 못 비기지 않을까.
10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