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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준 도슨트 Oct 20. 2023

무연고로 세상과 작별하다

[이중섭]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소의 외침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
이중섭이 아들에게 보낸 엽서에 그린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가족의 모습   


‘야스카타에게,

야스카타 잘 지내고 있겠지.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니?

아빠는 잘 지내고 있고, 전시 준비를 하고 있어. 아빠가 오늘 … 엄마와 야스카타가 소달구지에 타고 … 아빠는 앞에서 소를 끌고 … 따뜻한 남쪽 나라에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어. 소위 위에 있는 것은 구름이야

그럼 안녕.’



 이후 아들에게 보내는 엽서에 소달구지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그림을 그려 아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족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그의 간절한 마음이 보이는데요. 달구지가 사실 편하지도 않겠죠. 낡은 소달구지를 타고 가지만 함께하는 이들끼리 즐거워하는 행복을 담습니다. 그림에서도 어딘지 상기되어 보이는 이들의 얼굴이 느껴지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중섭은 끝끝내 가족과 다시 재회하지 못합니다.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 이중섭의 작은 꿈이었지만 비극의 시대는 그의 꿈을 이뤄주지 못합니다. 


1955년 이중섭전시는 미도파 갤러리에서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의 작품 중 은지화는 모마(뉴욕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기도 합니다. 생전 그의 그림을 알아봐주는 이들이 있었죠. 하나둘 그의 그림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미 늦었던 걸까요. 이중섭의 건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합니다. 음식을 먹지도 않았고, 영양실조에 온몸이 노랗게 변해 황달 증세까지 그를 덮쳤죠. 병마와 마지막 싸움을 이어가던 이중섭은 1955년 12월 이남덕 여사에게 쓴 편지에 병 때문에 도쿄에 가기 어려워졌다고 적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마지막 희망을 놓아버립니다. 결국 이중섭은 1956년 9월 6일 11시 45분에 무연고자로 홀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중섭은 치열하게 붓을 들고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과 싸워낸 산물데요. 이중섭에게는 그림이 곧 자신의 삶이었습니다. 특히 황소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주어진 하루하루 묵묵히 견디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 당시 우리 민족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지금도 이중섭이 그린 황소와 눈을 맞추다보면 오늘 하루도 힘차게 꿋꿋이 살아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 같습니다. 


소마미술관에서 진행했던 〈다시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에서 해설할 때 저는 매일 아침 출근하며 이중섭의 〈황소〉를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떤 풍파가 있을지라도 황소처럼 굳건히 내 자리를 지키며 나아가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당시 쉽지만은 않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 쉼 없는 매일을 보내던 차였기 때문인데요. 그때의 제게 〈황소〉는 바라만 봐도 많은 응원의 말을 건네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앞에서 매일 다짐했죠. ‘오늘도 최선을 다해 당신의 그림을 전하겠습니다.’라고요.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

                                                                                                                  - 이중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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