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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제인 Oct 11. 2023

내 그림이 있는 것

홍도 ep2. 몽돌해수욕장; 내 시선 속 프레임

섬에 들어오기 전에 비장하게 준비했던 건 손바닥만 한 노트였다. SNS를 통해 보았던 것 중 여행지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 그림의 ㄱ도 제대로 못 표현하는 '나'였기에... 남몰래 홍대에서 일러스트를 배웠다는 말도 못 하고 지금까지 담만 쌓아 놓고 그림 그리는 시도를 제대로 안 했던 거 같다.  

아무 보정 없는 홍도의 몽돌해수욕장

돗자리와 색연필, 노트, 펜, 간식 등 한가득 가방에 챙기고서 간 곳은 숙소 바로 뒤에 위치한 몽돌해수욕장. 뜨거운 태양을 피한다고 3~4시쯤 갔지만 여전히 뜨거운 게 여름은 여름이었다.


뜨거운 게 싫어서 그리운 게 겨울이고, 추운 게 싫어서 그리운 게 여름이라 그런지 체감 온도 40도에 임박하는 뜨거운 여름도 어쩌면 그리운 순간일 거라고 생각하니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거 같다.

여기저기 돌탑이 있길래 나도 하나 만들었다

너도 나도 소원을 빈 걸까? 그저 동그란 돌을 요리조리 균형 찾아 쌓아 올린 걸까? 좋은 자리를 찾아 헤맬 때 가장 많이 본 것은 바로! 돌탑! 그래서 나도 자리를 잡고 제일 먼저 돌탑을 쌓았다. 더 높고 웅장한 돌탑을 기대했다면 나의 균형 감각은 5개가 한계였던 거 같다. 둥그스름한 돌을 탓하고 싶지만, 사진에 없는 뒤편엔 나의 허리까지 오는 돌탑이 한두 개가 아니기에 돌을 탓하지는 말아야겠다.

오늘 나의 바다 피크닉

알고 보면 여행은 참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느낌이다. 홍도와 흑산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수많은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그리고 SNS 게시글을 찾아봤다. 그중에서 어떤 한 여성이 혼자 홍도에서 해수욕을 하는 블로그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아! 이거다!'라고 하면서 내 짐에는 돗자리가 추가되었다.


어쩌면 머나먼 훗날 또는 섬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나의 글과 사진이 나침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섯 마디를 남기자면..........


1. 이곳에서는 뜨거운 돌 마사지와 더불어 걸을 때 지압이 되는 건강 해수욕장입니다.

2. 물이 정말 엄청나게 맑지만 미끄럼 주의 필수!!!

3. 벌레들이 반갑게 나를 반겨주며 다가옵니다. 다행인 건 물지 않아요.  

4. 여름에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선크림 필수!!!

5. 낭만을 찾기 전에 시원한 물 2L가 그리워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위에 모든 걸 극복한다면 여긴 나만을 위한 프라이빗 비치 그 자체입니다. 

(왜냐면 제가 그런 느낌이었어요.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저만 덩그러니 앉아서 그림 그리고 과자 먹고 영상 찍고 낭만 찾다가 흑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결국 다 정리하고 5층 돌탑에서, 5층 쌍둥이? 돌탑으로

그래도 1시간 이상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찍고, 멀리 여행 온 부부와 이야기도 나누고 돌탑 업그레이드 하고, 물에 발도 담그고 즐거운 몽돌해수욕장 해수욕 시간이었다.


멀리 여행 온 부부와의 이야기는 밥 먹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처음 먹어보는 부시리 회

아들을 소개해주신다고 했던 어머님과 아버님은 혼자 밥도 못 챙겨 먹을까 걱정되었는지 사장님께 "그 혼자 온 여자가 어디 갔냐"며 찾았다고 한다. 타이밍이 딱 해수욕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사장님을 마주쳤는데, 어서 식당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가보니.. 이미 자리는 3명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어머님이 하시는 말이 "나도 젊을 때 혼자 여행 많이 다녔어. 근데 그럴 때마다 돈 없다고 못 먹고, 1인으로 주문 못하는 것도 많아서 못 먹었던 게 많아. 이건 우리가 사는 거니까 넉넉히 먹어" 하는데... 이걸 정말 먹어도 되나 어리둥절하다가 일단 "감사합니다" 하고 먹는데 너무 감사했다.


아마 혼자 왔다면 회, 매운탕 맛도 못 보고 갔을 텐데....

여기는 옥돌 위에 회를 준다

방어와 비슷한 부시리.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지만, 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너무 맛있었다. 두 분 모두 나를 자녀처럼 생각해 주면서 부위도 맛있는 부위 추천해 주시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친절을 베푼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아직 세상은 따뜻한 거 같다.

1일 2 매운탕

여기 우럭 매운탕 너무너무 맛있다. 어머님께서 회는 잘 안 드시지만 익은 고기는 좋아하신다며 매운탕을 주문하신 건데 먹어봤던 매운탕 중에서 TOP3 안에 드는 맛이다.


나이를 먹고 미래에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오늘 회랑 매운탕을 사주셨던 어머님, 아버님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가 맛있는 음식과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노을 어디 갔니???

밥 먹다가 뛰어 나가서 찍은 홍도 첫날 노을의 모습인데 해가 숨어서 나오지를 않는다.

역시 노을은 서해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니 얼굴 살짝 보여주는 태양.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고 이렇게 바라보면서 든 생각은 바다에서 바라보는 황금빛 노을은 어떤 느낌일까?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보트운전'인데 이걸 하게 된다면 낚시도 배우면 좋겠다 싶고... 낚시하면 물고기 손질이나 요리하면 좋겠고.... 꼬리에 꼬리를 계속 물다 보니... 좋아하는 하나가 확실하면 취미가 여러 개 따라오는 거 같다.

밥 먹으면서 보이는 노을

기다리다가 들어오니까 보이는 태양이지만 분위기가 압도했던 첫날.


나는 일출도 좋지만, 일몰이 더 좋다. 어쩐지 노을을 바라보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Behind story

거의 화가

서울에서 여행 온 부부 중 남편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작가인가 봐요?"

"아니요, 그냥 여행 왔어요"

"그럼 크리에이터??"

"도전은 해볼까 하는데 용기가 안 나요"

.

.

.

"여보! 여기 작가님이 그림 그려준데 와봐~~~!"

"어? 아니에요. 저 그림 못 그려요 ㅠㅠ"

.

.

.

"못 그리고 잘 그리고 어디 있어. 내 그림이 있는 거지."


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글에도 각기 다른 색깔(개성)이 있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림 속 나만의 색깔보다는 화가처럼 잘 그린 그림만 그림이라고 생각했을까? 라며 내가 표현해 보려는 부분들을 더 나타내려고 노력했다.

이걸 왜 이렇게 계속 찍었을까?

그래, 어디 보여주고 전시하고 대회 나가는 거 아니잖아.

이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함인데, 어때??


내 방 보인다

내 시선 속 프레임은 몽돌해수욕장에서 내 숙소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참! 부부 중 아내분께서는 그림 그리는 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주셨는데 분위기 있게 찍어준 게 놀랐다. 그냥 가볼까? 하고 잠시 들어온 섬이라는데 이렇게 마주친 것도 인연이라면서 한 20~30분 수다를 즐겁게 나눴다.

내 그림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어디 있어, 내 그림이 있는 거지! _지나가는 부부 여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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