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삐약이에게
약 4년 전, 드디어 마케팅 인력을 뽑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공채 시즌을 맞았다. 수많은 지원서 사이에서 D는 유독 눈에 띄었다. 대학 시절과 유관 경력, 깔끔한 자기소개서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직접 문제를 낸 필기전형에서 1등을 차지했으며 인적성검사 결과마저 훌륭했다. 그리고 내 인생 처음으로 면접관이 된 날, 서류로만 봤던 D를 처음 만났다. 맨질맨질한 차돌 같은 얼굴, 밝은 인상과 환한 미소, 차분한 목소리, 또랑또랑한 대답까지 단연 독보적이었다. 백점이 아니라 이만점을 주고 싶었다. 면접을 본 후 나는 가족에게 '면접 대박쓰, 내가 맘에 들어 했던 애 아예 완벽해, 너무 잘나서 금방 그만둘까 봐 걱정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라도 최종면접에서 삐끗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최종합격자는 D였다. 합격하고도 오지 않는다고 할까봐 걱정했으나 D는 입사를 선택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D는 나의 기대를 넘어 성층권을 뚫고 우주까지 날아갔으며 나는 사랑에 빠졌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D를 지칭할 때 나는 병아리 또는 삐약이라는 애칭을 사용했다. 이 글에서도 D 대신 삐약이라고 칭할 것이다. 단순히 어려서가 아니다. 삐약이는 인간 자체가 사랑스러우며, 신기할 정도로 귀엽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귀여운 존재가 또 있었나 싶다. 거의 강아지나 고양이 수준이다. 한 번은 똘똘하고 어른스러운 후배에게 삐약이라는 애칭을 쓰는 것이 민망해 '이제 중닭이라고 불러야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언젠가는 꿩이 되겠다'고 대답하는 후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삐약이와의 첫 1년은 행복했으나 부서 이동과 함께 지옥이 시작됐다. 역량과 인성은 물론 지능까지 의심스러운 전팀장과 강제로 한 배에 타게 된 것이다. 반 년쯤 지나자 전팀장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됐고, 우리는 열심히 맞섰으나 언제나 졌다. 정상인이라 지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배가 산으로 간다면 차라리 다행이지, 그 배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침몰하고 있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삐약이는 나의 전우이고 활력소이자 위안이었다. 우선 '개그 코드가 맞는다'는 걸 인생 처음으로 실감했다. 친구들과도 재밌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삐약이와의 개그 코드는 그 이상이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게 다 웃겼다. 본인이 왜 미움받는지 모르는 전팀장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동시에 저팔계 주제가를 떠올리며 배가 찢어지게 웃기도 했다. 갑자기 음식 끝말잇기를 한 적도 있다. 국밥-밥버거-거봉을 이어가며 우리는 실성한 것처럼 굴러다녔다.
그렇다고 삐약이와 내가 비슷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모티콘을 절대 구입하지 않는 나와 달리 삐약이는 이상한 이모티콘을 수십 개쯤 가지고 있었다. '저런 이모티콘을 사는 사람도 있나'에서 '사람'을 담당했다. 한 번은 삐약이가 닭갈비 에코백을 메고 왔다. 새로 오픈한 닭갈비 집에서 받아온 건 줄 알았는데 춘천 여행을 갔다가 사 온 거라고 했다. 또 뭐가 있을까. 난 매운 걸 못 먹지만 삐약이는 빨간 국물에 미친 인간이었다. 온갖 수작업은 다 못하고 싫어하는 내게 삐약이는 직접 만든 귤쨈을, 직접 뜬 미니 백을 선물해줬다. 아, '프렌즈'의 로스를 싫어하고 레이첼을 좋아한다는 건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던 사랑스러운 후배가 좌절하고 속을 끓이며 하루하루 지쳐가는 걸 옆에서 보는 건 분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가끔은 미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퇴근 후 술 마신 구남친처럼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서로가 서로의 위안이었지만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삐약이의 이직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삐약이가 청년내일채움공제 만기를 채우려면 아직 1년은 더 버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삐약이가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길 바랐다. 3천만 원이 매우 큰 돈인 건 맞지만, 그게 삐약이의 인생보다 큰 돈은 아니었으니까.
'퇴사하게 되면 꼭 1등으로 말해달라'는 약속을 삐약이는 지켰다. 함께 일한지 2년 반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내 몫의 테이크아웃 음료를 사들고 출근한 삐약이는 이직 소식을 전했다. 삐약이가 탈출에 성공한 건 정말 기뻤지만 전팀장과 둘이 남게 되며 괴로움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6개월 후, 삐약이가 다니는 회사로 나 또한 이직하게 되며 다시 한 번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됐다.
정상적인 사람들과 정상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잠시 잊고 있던 축복이었다. 대화다운 대화를 했고, 일다운 일을 했다. 그곳에 나와 삐약이가 함께 있음이 행복했다. 전 회사에서는 몰랐던 서로의 먹성도 발견하게 됐다. 나와 삐약이의 먹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팀 내 최상위권이었다. 내가 훨씬 많이 먹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둘 다 먹는 걸 즐기고 사랑했다. 내가 '맥도날드 먹고 싶다'고 중얼거리면 삐약이가 콜을 외쳤고 이내 맥너겟, 후렌치후라이, 맥플러리가 도착했다. 내가 먹으면 삐약이가 먹고, 삐약이가 먹으면 내가 먹었다. 무시무시한 시너지였다. 내가 새 회사에 입사한 후 삐약이의 입이 터지며 함께 살찌기 시작했다. 그것마저 행복이었다.
전 회사에서 행복한 1년과 끔찍한 1년 4개월, 그리고 지금의 회사에서 1년. 도합 3년을 넘게 같은 팀에서 일했다. 짧다면 짧지만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삐약이가 퇴사했다. 저번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똑똑하고 진취적인 삐약이가 먼저 떠났다. 이직한다고 했으면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삐약이는 워홀을 간다고 했다. 나이 차이가 꽤 난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갑작스러운 워홀 소식에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어차피 삐약이는 모든 걸 알아서 잘 해낼 것이다.
처음 헤어질 때는 삐약이가 울고 나는 울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송별회가 끝나고 삐약이와 함께 탄 지하철 3호선에서 질질 울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삐약이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회사 메신저로 업무 이야기를 보내자 알겠다며 김정은이 메모하는 짤을 보내던, 전팀장을 보며 '왜 중대장이 맨날 실망하는지 알 것 같다'던, 점심 등산에서 나 혼자 낙오했을 때 정상에 있는 고양이 사진을 보내며 유혹하던, 이모티콘을 절대 사지 않는 내게 생일선물로 이모티콘을 보내준, 밀카 초콜릿을 먹고 싶다는 나와 함께 편의점을 가주던 나의 영원한 삐약이. 항상 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와서 곧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