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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캐리 Aug 03. 2023

정기 구독의 시대, 나는 구독이 싫다

정기 구독으로 '뽕을 뽑는' 당신, 혹시 완벽주의자 아닌가요?

바야흐로 구독의 시대다. 영상, 음악, 도서 등의 콘텐츠부터 꽃, 커피 원두, 언더웨어까지 구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몇천 원대의 합리적인 월 정액제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온갖 서비스에 둘러싸여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갈수록 숨이 막힌다.


생각해보면 구독을 기피하는 나의 성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내 인생 첫 구독은 구몬 학습지였다. 당시 같은 반 친구들 대부분은 구몬 학습지를 풀었다. 그게 재미있어 보였던 건지, 혹은 소외되기 싫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어린 나는 엄마를 졸라 결국 구몬을 시작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해지'했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몬을 끊게 된 결정적 이유는 '무한'이었다.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정기 구독의 형태는 내게 무한한 책임으로 다가왔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이나 자격증은 유한한 괴로움이었다. 공부는 힘들지만 목표와 결과가 명확하다. 목표 점수에 도달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하면 해방이 보장된다. 수능도, 토익도 끝이 있기에 견딜 만 했다. 취업이나 이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지지부진할지라도, 내 목표보다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성공한다. 다음 이직은 또 새로운 이정표가 된다. 하지만 인생에서 목표와 결과가 그리 뚜렷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의 영원한 적敵이자 짝사랑이자 주홍글씨인 영어를 생각해보자. 토익이나 오픽은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어회화 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목표는 어떻게 잡을 것이며 현재 수준과 결과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토익은 990점이면 끝인데, 영어회화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고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그 목표는 과연 달성 가능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다.


공부는 그렇다 쳐도 소비마저 괴롭다. 다들 가볍게 시작한다는 정기 구독이 내게는 너무나 무겁다. 나에게는 본전이 중요하다. '뽕을 뽑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적은 금액이라도 비용을 지출한 이상 나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 아니, 이용해야만 한다. 아주 효율적으로. 그래야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기간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해지하기 전까지) 구독이 이어진다면 나는 계속 최선을 다해 최대치의 효율을 낼 수 있을까?


몇 달 전, 예스24의 e북 구독 플랫폼 '크레마클럽'의 2개월 이용권이 생겼다. 신규 가입 시 첫 달은 무료이기에 총 3개월 동안 e북을 볼 수 있게 됐다. 구독을 연장해 유료로 이용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여도 내게는 짐이 되니까. 대신 3개월 동안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길고 긴 통근 시간, 야구 경기나 유튜브를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e북을 열었다. 즐거움이 100%였다면 거짓말이다. 즐거움과 책임감이 뒤섞인 독서 시간이었다. 12주 동안 서른 권의 e북을 읽었다. 일주일에 최소 두 권은 읽은 셈이다. 무료 구독이 딱 일 주일 더 남았으니 두어 권을 더 읽고 크레마클럽을 놓아주려 한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구독이었다고 자부한다.


3개월의 시한부 구독은 할 만했다. 끝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기 구독이라면 과연 일주일에 두 권씩 읽을 수 있을까? 1년 동안 약 100권의 e북을 읽을 수 있을까? 100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 스트레스다. 만인의 구독이라는 OTT도 마찬가지다. 정기 구독의 가치에 상응하는 만큼 콘텐츠를 소비할 자신이 없다. 이래서 나는 정기 구독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내가 제대로 정기 구독하는 서비스는 오직 음악 스트리밍뿐이다.


몇천 원짜리 정기 구독이지만 효율적으로 이용해 최대치를 뽑아내고 싶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죄책감이 든다. 정기 구독을 하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기 구독은 즐거움을 사는 비용이다. 최대치의 효율을 따지는 이상한 책임감으로 임해서야 아무리 재미있는 서비스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정기 구독을 숙제로 여기는 이 마음의 뿌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아마도 완벽주의일 것이다.


스스로 만든 완벽주의의 벽 앞에 설 때면 나는 심리상담사님의 말을 떠올린다. 완벽하게 하고 잘하는 것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니 그냥 하지 않는 거에요. 일종의 갈등 회피라고도 볼 수 있어요. 목표를 너무 높게만 잡으니 시작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자꾸 들고 금방 지칠 수밖에 없죠.


맞아요, 선생님. 그 얘기를 들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전 여전히 이러고 있어요. 어쩌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고작 정기 구독 서비스 앞에서도 목표를 따지고 있답니다. 얼마 전 헬스장 1년 회원권을 끊은 이후로는 '오운완'하느라 매일이 피곤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족한 내가 완벽주의자라는 것은 아직도 100% 인정할 수 없어요. 이렇게 얘기하니 더욱더 완벽주의자 같네요. 하지만 아무리 소액이라고 해도 내 소중한 자원(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어떻게 효율을 따지지 않을 수 있는 걸까요.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은 해요. 그래도 새로운 정기 구독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요.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책임감 때문에요.


나도 알고는 있다. 완벽주의자란 참으로 멍청하다. 이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인생이 어찌 고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남들 다 하는 가벼운 정기 구독조차 무거운 짐이 되고, 가늠되지 않는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게다가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의 완벽주의를 쉬이 인정하지도 않는 고집쟁이다. 고작 헬스장 좀 열심히 가는 게, 맞춤법 조금 신경 쓰는 게 정말 완벽주의라고?


다시 한번 곱씹고 다짐한다. 나의 목표와 이상은 대개 높고 엄격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대단한 것을 이루려고 생각하기보다는 빠르게 도전하고 실패하자. (그러려고 '빠르게 실패하기'도 읽었잖아!)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과정을 즐기고 스스로를 격려하자. 이렇게 생각하며 구독 기간이 일주일 남은 e북 플랫폼에서 완벽주의에 대한 책 두 권을 다운로드했다. 참으로 진상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좋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고칠 수 없지만 노력하면 아주 조금씩 나아질 수는 있다고 믿는다. 성형수술도 아닌데 하루 아침에 환골탈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구독할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오늘의 나보다는 내일의 내가 조금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설마 이것까지 완벽주의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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