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보지도 못하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생이여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라는 단어에 참 많은 이상을 투영해왔다. 아니, 이상이 아니라 나의 불안과 미숙함을 반영한 것에 가깝다. 어른이 되면 흔들리지 않겠지, 어른이 되면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겠지, 어른이 되면 부당함 앞에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겠지, 어른이 되면 나를 믿으며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어른이란 '미래의 멋진 나'를 가리키는 마법의 단어였다.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이게 어른이 맞나 싶다. 국어사전에서 '어른'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해온 어른은 물론 후자에 가깝다.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다. 나이를 먹었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한다면 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다. 생물학적 나이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으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스무 살 성인이 된다고 천지개벽이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나이를 먹는다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아이나 학생이 아닌지 한참 됐으니 겉으로는 어른인 셈인데, 속은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 평생을 살아도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그 '어른'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고 하는데, 도대체 이놈의 꽃은 언제가 되어야 다 피는 걸까? 누군가 내게 "사람은 환갑이 되어도 속에는 소년, 소녀가 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란 그저 어른의 가면을 쓰고 어른인 척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아직 환갑이 되지는 않았지만 심정적으로는 완전히 동의한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결정과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고, 미래는 여전히 막막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까지 계속 흔들릴 줄은 정말 몰랐다. 거의 '인간갈대'다.
게다가 그리 당당하지도 못하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를 말하라니, 밥벌이 월급쟁이에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그나마 한 톨의 양심이 아직은 남아있어 예스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노를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속으로 조용히 노를 말하며 예스를 무시할 뿐. 사실 이건 지금도 잘 모르겠다. 현실과 이상이 너무 다르다. 지금까지 수집한 경험으로는 빠르게 승진을 하거나 C레벨의 오른팔이 되는 건 누구보다 뜨겁게 예스를 외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노를 말하면서도 무탈하게 살아가려면 어지간해서는 범접할 수 없는 '넘사벽'의 실력이 필요한 것 같다.
가장 간절히 바라왔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숲을 보는 일이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고? 숲은커녕 나무도 안 보인다. 사람과 상황을 파악하고 알맞게 대처하는 것이 업무보다 백배 천배 어렵다. 시야를 넓히는 일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이 필요해서, 피로가 점점 더 쌓이고 나이테만 세고 있는 기분이다. 물론 사회초년생 때보다야 훨씬 성장했지. 하지만 어린 내가 꿈꿔왔던 만능 천리안에는 발끝도 못 미친다. 은퇴할 때쯤에는 숲이 보이려나? 내가 원하는 어른의 제1조건은 역시 '숲'이다. 나의 일에 책임을 다하고 숲을 볼 줄 알게 될 때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거라고 인정하고 자신을 칭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온다고 해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금 징징댔지만, 인정할 때가 됐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린 시절 꿈꾸던 멋진 어른이란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와 같은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경험을 쌓는다고 해서 100%의 완성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고민하고 여전히 흔들린다. 어른이 되었기에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뿐. 고등학생 때는 대학 잘 가면, 대학생 때는 취업 잘 하면, 사회인이 되어서는 이직을 하고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면 다 끝날 것 같았지. 하지만 인생에는 끝이 없다. 현재 단계의 과제를 마치고 나면 다음 단계의 과제가 새롭게 나를 두드린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과제를 해나가다 보면 때로는 실패하거나 뒤처질지라도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의 내가 멋지다. 그럴 것이고, 그래야만 하다.
인생의 목표를 뚜렷하게 정하고 달려가는 사람도 많다. 목표를 설정해야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 삶을 지금도 조금은 동경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욕심을 부리거나 무리하는 대신에, 내가 쌓아온 시간과 노력에 걸맞은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때로는 성실하게 가끔은 게으르게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아득한 미래에는 진짜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 거다. 성공은 물론, 지난 실패까지 모두 끌어안고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