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우울한 일상과 생각을 갈팡질팡
두서가 없고 무기력한 글이 될 것 같다. 우연히라도 이 글을 접할 누군가에게 우울이 전이되지는 않을까 조금 고민했다. 불필요한 감정 배설로 데이터센터의 서버와 전력을 낭비하고 환경 파괴에 가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를 너무 방치하고 있다는 죄책감, 뭐가 됐든 글로 써봐야겠다는 의무감, 그리고 조금이라도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것저것 적어본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매일 허덕이기도 바빠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음고생이 끝나니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며 오히려 고민이 몰려온다. 정상적인 일상으로 힘들게 돌아왔는데도 그걸 즐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땅을 파고 있다. 이것은 배부른 소크라테스인가.
조금 '스불재'스럽긴 하다. 그래도 우울한 건 우울한 거다. 평상시에 비해 우울 지수가 높다. 우울의 근원을 거창하게 말하자면 '미완으로 인한 조급과 불안'이다. 완성과 미완성을 누가 명확하게 나눌 수 있겠냐마는, 요즘 나는 개인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미완의 상태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자세한 내용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할 정도의 용기는 아직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지도 않으면서 우울함만 늘어놓자니 민망스럽긴 하다.
개인적인 고민은 도식화한 후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는 중이다.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고민의 결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절망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사람의 기질이란 바뀌지 않는 것이니 감수하며 나아가야지.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고 시도하는 것도 칭찬할 만한 일이고. 근로복지넷의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찬스로 오랜만에 심리상담도 재개했다. 매번 의표를 찌르는 질문에 감탄하며 상담사 선생님과 함께 으쌰으쌰하고 있다.
업무적으로는 어느덧 12년 차에 다다랐는데, 짧은 시간 안에 역치 이상으로 환경의 변화를 겪은 데다가 현재의 일이나 시스템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아 지친 상태이다. 논리와 효율을 상실한 직장인이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차라리 포기하면 편할 것 같은데 포기가 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되뇐다. 억울하면 사장하자. 자아실현을 위해 월급 받는 게 아니니까.
감정기복이 좀 있는 편이긴 하지만 회복탄력성도 높아서 대개 우울이 오래 가지는 않았는데, 올해의 우울은 제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우울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고, 조금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여러 가지 고민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내가 나를 귀여워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너무 우울에 취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잣대와 채찍질을 내려놓는 일에 더 집중해야지.
하지만 2분기가 코앞이라는 사실은 역시 무섭다. 시간이 흘렀는데 나는 이렇게나 제자리라니. 시간이 빨라서 괴롭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과거의 순간들의 결과, 즉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겠지. 주어진 안에서 최선을 선택하며 살아왔고, 특별히 돌이킬 만한 것도 없지만... 그나마 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빠르다는 것을 위안 삼고 있다.
우울하고 짜증 나다가도 딸기케이크 한 조각에 다시 행복해진다.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일시적인 해소에 가깝겠지만, 내 우울함이 딸기 케이크보다는 가벼운가 보다. 아니면 딸기 케이크의 힘이 너무 강력한 건가. 맛있는 음식과 가족, 친구, 점심 메뉴, 음악, 산책, 지난 여행의 기억이 우울을 완화한다. 물론 더 나빠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더 좋아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 100세 시대인데 아직 지치기엔 이르지. 분명 이 글을 읽으며 추억에 잠기는 날이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