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절 일상기록 01
샤워를 하다 문득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각이 났는데.
베를린시절 에이전시에서 광고에 컨템퍼러리 댄서를 찾는다 해서 오디션에 갔었다. 나보다 먼저 왜 있는 미국에서 온 초콜릿피부의 키가 큰 꽤나 미남형의 다른 모델도 있었는데, 캐스팅담당자가 즉석에서 둘이 컨택즉흥을 해줄 수 있느냐 물었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한 컨택즉흥에서 합이 꽤 잘 맞았고, 그 남자모델 C와 나는 나란히 캐스팅되었다. 그 후 촬영 전에 한 번 같이 연습을 해보자 해서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 스튜디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얘가 글쎄 2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뭐라고..? 왜 그렇게 빨리 왔냐물으니 C가 말하길,
자기는 집이 없단다. 그래서 어차피 갈 곳이 없었다고.
뭐?? 도무지 상상도 못 한 대답에 앉아서 한참을 얘기를 나눴다.
C는 미국에서 전여자친구를 따라서 독일로 왔고,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서 쫓겨났단다.
헤어졌다고 타국에 데려온 전애인을 무일푼으로 쫓아낸 그녀가 피도 눈물도 없는 걸까 아님 그럴만한 짓을 해서 쫓겨난 걸까 의문이었지만..
당시 나는 일전의 사이코패스 스토커 멍멍이사건-_-으로 이사할 집을 알아보며 친구집에 머물고 있었기에 빈 내 집에 잠시만 머무르라 했다. 그리고 종종 여유가 있을 때면 저녁식사에 C를 초대했다. 오지랖이긴 했지만 이렇게 한 데는 그가 촬영 전엔 제대로 자고 제대로 씻고 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그 후 연습과 촬영, 식사자리 등등에서 그를 몇 번 만나고 알게 된 것은 이 녀석 굉장한 나르시시스트(…)였다. 일상생활에 플러팅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훤칠한 미남이라 접근해 오는 여성들도 꽤 있는 걸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그녀들에게 수시로 금전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감사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적은 많아도 그게 진심으로 느껴진 적도 없었다. 다행히 C에게 다음 지낼 곳(=새 여자친구 집)이 생겨 옮기고 난 후 따로 연락이 온 적도 없었으니까.
그 후 몇 달 뒤 베를린 번화가에서 그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남성스트립쇼의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너무도 해맑게 자기도 출연하니까 보러 오라고(….)
그래서 나름의 살 길을 찾아 잘 살고 있구나 싶었다..
갑자기 이 생각이 왜 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