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근교 마토지 뉴스에서 살아 본 일주일 이야기
애써 익숙해진 곳을 떠나가는 마음에 대하여
독일에서 3주가 흘렀을까.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을 하며 이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늘 마음이 이상하게 몽글거리곤 한다. 이번에는 확실한 설렘과 조금의 불안을 느꼈다.
나는 여행하며 이동하기 전 날에 잠을 설치는 밤을 가장 싫어한다. 애써 익숙해진 곳에서 또다시 새로운 낯선 공간으로 간다는 것이 마냥 두렵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떠나기 전 날 밤이 두렵다.
하지만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그 첫 느낌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점점 익숙해지고,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가는 과정. 편안함을 찾아가는 과정말이다.
눈물로 시작한 포르투
여행을 하며 자주 이용하는 에어비앤비. 원래 포르투로 갈 계획이 없었기에 시간에 쫓기며 덜 신중하게 고른 숙소였다. 나는 간단하게 리뷰만 읽고 결제를 했다. 체크인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고, 숙소 호스트는 연락두절이 되었다.
원래 호스트가 집에 도착한다는 시간은 5시, 내가 도착한 시간은 5시 이후. 호스트는 에어비앤비 문자부터 왓츠앱 연락까지 다 받지 않았고, 나는 숙소 로비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와 데이터를 아껴가며 호스트를 기다렸다.
처음 1시간 정도는 바빠서 그런 거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리뷰를 과하게 신뢰하며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지웠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고 2시간이 넘어가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해가 저무는 모습을 보며 실시간으로 멘털이 털려나갔다. 심지어 이곳은 포르투 시내도 아니고, 근교 마토지뉴스라는 곳이었기에 사람이 한 두 명 지나가는 작은 곳이었다. 나는 저녁 식사는 물론이고, 잘 곳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에 다급하게 다른 숙소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당일 예약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고, 현지 유심이 없어 전화를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선택지가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만만한 한인민박마저도 자리가 없었다.
기안 84 라면 어땠을까?
나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꽃보다 청춘을 떠올렸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기에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며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기안 84를 떠올리며 기안 84 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냥 시내로 나가서 다른 숙소 찾을 것 같아. 발로 뛸 것 같아' 이게 내가 내린 기안 84의 대답이었다. 돈은 날린 셈 치고, 나중에 돌려받고. 일단 시내로 가서 숙소를 구하자. 발로 뛰자. 나는 큰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로비 문을 열고 나오며 눈물이 차올랐다. '이런 경험도 하는구나. 예상은 했지만 되게 서럽다'
'띠링'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내가 탈 버스가 보이는 와중에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지금 집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화가 난 상태였기에 답장을 고민했다. 그래서 네이버 룰렛을 돌렸다. 기존 숙소로 가는가, 다른 숙소를 찾는가, 확률은 50대 50. 그리고 결과는
결국 그 숙소로 향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호스트는 방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나를 더 기다리게 했고, 나는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거실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강력하게 환불을 요구하며, 다른 숙소를 구할 때까지 이틀까지만 머물 거라고 통보했다.
미소가 죄
하지만 이 다짐은 30초도 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오래 기다려서 들어간 개인 방에는 넓은 침대와 옷장, 창문, 예쁜 스탠드 두 개와 가득한 간식들, 예쁜 미니어처 와인까지. 이 가격에 이 정도 방 컨디션이라면 일주일은 무슨, 2주도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머쓱하게 웃으며 "그냥 원래대로 여기서 지낼게 하하"하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방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아주 강력한 강아지 꼬순내가 난다는 것이었다. 후각이 예민하기도 하고, 강아지 비린 냄새 (?)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나는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냄새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우선 의심 가는 담요와 쿠션을 옷장에 가두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아직도 냄새가 없어지지 않았다. 그냥 웃음이 났다. 이 모든 게 웃겼다. 체크인 과정부터 모든 게 계획에서 벗어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다시 고통을 겪는 나의 삶이 재밌었다. 그럼에도 따뜻한 호스트의 미소를 보고 금세 마음이 풀렸던 나를 생각하니 또 웃겼다. '나도 꽤나 단순한 사람이네' 싶었다.
왜 많은 이들의 인생 여행지는 포르투로 통하는 가
다음 날 아침이 밝고, 나는 아침 일찍 포르투 시내로 향했다. 동화 같이 아기자기 한 동네에 여유롭게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여기 홍대야....?" 포르투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헛웃음이 났다. 성수기는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마주한 건 작은 동네에 바글거리는 관광객들이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생각했다. '숙소를 시내로 안 잡아서 다행이야'
나는 역시나 포르투에서도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파스타와 와인을 마셨다. 빈속을 와인으로 채워가며 파스타를 기다렸다. 결론적으로 살짝 술에 취했다.
포르투의 일상은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점심은 외식을 하고, 와인을 마시고 취하면 나따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갔다가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나는 솔로 16기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일상들.
포르투갈 에그타르트는 뭐가 다른가요?
고등학교 때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에그타르트 먹으러 포르투갈에 가고 싶다던 친구들, 그 친구들의 순수한 바람을 떠올리며 나는 즉흥적으로 포르투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포르투갈에서 에그타르트를 먹는 순간은 유일하게 외로운 순간이었다. 포트투갈 에그타르트가 얼마나 맛있는지, 한국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떠들고 싶은 욕구를 견뎠다.
이곳에서 먹는 에그타르트는 몇 개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다. 촉촉하고 부드럽지만 느끼하지 않은 크림이 가득하고, 겉으로는 따듯하고 바삭한 빵을 두르고 있다. 따끈따끈 갓 나온 에그타르트에 시나몬 가루를 뿌리고 한입 베어 물면.....!!!!!!!!!!
맛있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나따 (에그타르트)의 매력이다. 와인을 먹고 취한 후, 에그타르트로 취기를 꾹꾹 눌러주는 것. 그것이 포르투의 소소한 행복이다.
마토지뉴스, 거기가 어딘데....?
사실 숙소 위치에 대해 말하자면 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곳이 포르투인 줄 알고 숙소를 잡았고, 포르투로 오기 전날 마토지 뉴스가 포르투 근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다음에 포르투에 온다면 나는 이곳으로 숙소를 잡을 것이다. 우선 아주 여유롭고 조용한 분위기에 가까이에 바다가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책 한 권 들고, 도시락을 싸서, 해변에 누워 햇살과 바다를 느끼며 시집 속 사랑스러운 문장들을 꼭꼭 씹어 먹는 것. 그것이 마토지뉴스의 행복이다.
하지만 강한 파도로 인해 서핑을 제외하고는 물놀이를 즐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시도했으나 강한 파도에 휩쓸려 참패를 맞았다.
여행지에서 바다를 본 다는 것
여행하며 바다를 보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이곳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자연이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무언가는 휴식을 주는 존재가 되곤 한다. 밤에는 달과 함께, 아침에는 햇살과 함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엄마가 알려준 시차적응 방법에는 '어싱'이 있다. 맨발로 대지 (흙)와 접촉하는 것인데 바닷가에서 어싱을 하면 더 효과가 좋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마토지뉴스 바다를 걷고 또 걸었다. 어느 순간 이곳이 강릉 바다인지 포르투의 바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포르투의 낭만에 대하여
포르투는 유독 '낭만'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작고 따뜻한 고양이의 심장 같다.
가장 큰 낭만은 음악이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골목골목에 들려오는 노랫소리. 할 일 없는 나에게 버스킹 감상은 소중한 루틴이다.
포르투에서 나는, 관광보다는 휴식을 선택했다. 그냥 이곳에서는 좀 쉬고 싶었다. 여유롭게 책도 읽고, 어떤 날은 나는 솔로를 보며 시간을 쏟기도 하고, 갑자기 창업이 하고 싶어서 창업 계획을 세우기도 하다가, 새로운 시나리오도 쓰다가, 온전한 내 방에서 모든 순간을 생각하고 상상했다.
부피가 작은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로 향하는 길이 설렜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나를 위한 저녁식사를 매 끼니 만든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순간의 욕구들을 기억하며 충족해 주려 애썼다.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들어
이상하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몸은 분명히 혼자인데, 동행도, 말동무도 없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혼자 보내는 밤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었다. 잠에 들기 전까지 모든 시간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만나면 반갑게 안부를 물어주는 호스트와 옆 방에 머무는 사랑스러운 커플.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나의 기분을 물어주는 가벼운 말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도 했다. 일을 하지 않는 삶도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굳이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이곳에 머무는 내내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 실실 웃었다.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지막 눈물
숙소에 도착했던 첫날, 사기당했다는 생각에 조금 흘렸던 눈물. 그 눈물이 아쉬움의 눈물로 변했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편안하게 숨 쉬며 살 수 있을까, 온전히 나를 위해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편지를 썼다. 맥주와 함께 편지를 써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7장이 가득 찼다.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가며 스위스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다음 여행지인 스위스로 가기 싫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포르투에서 이보다 더 오래 있고 싶은 것도 아닌데... 올해 들어 가장 많이 울었다. 나중에는 코가 막혀서 강아지 꼬순내를 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렇게 많이 울었었는지 알 것도 같다. 감격의 눈물이 아닐까 싶다. 처음 여행을 가기로 한 목적은 혼자인 게 두려워서였는데, 혼자인 밤이 괴로웠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그 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두려움이 불러온 순간의 용기가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나는 이렇게 한 단계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