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해월 Nov 12. 2023

트루먼 쇼는 끝났다

스위스에서 일주일, 인간관계는 늘 힘들다.

어쩌면 인생은 트루먼쇼

 고등학교 때 트루먼쇼라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로, 내 인생도 어쩌면 짜여진 대본대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본 모든 이라면 한 번쯤 의심해 보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또한 다른 세계를 감추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아닐까 의심했었다.


 tv를 보는데 스위스가 나왔다. ‘저런 곳이 실제로 있을까..?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존재한다고..?’ 낯선 기분을 느꼈다. 돈과 시간만 있으면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도 그런 것들이 많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위치, 내 자산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집, 내 실력으로는 갈 수 없는 높이. 이따금씩 자기 객관화라는 것이 앞길을 막는 것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생각은 아주 중요하다.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나는 여행에 가기 전부터 밤마다 내가 여행하며 겪고 싶은 상황들을 떠올렸다.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멋지게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나의 모습, 여행지에서 우연히 멋진 남자를 만나 데이트하는 상상, 아름다운 곳을 보고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상상 등등.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현실에서 일어날법한, 스스로도 납득 가능한 행복한 상상으로 시간을 채웠다. 스위스에 가는 것 또한 상상에 포함시켰다. 

 사실 나는 유럽여행을 혼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단연 스위스였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돈도 없고, 넓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비싼 돈 내고 뽕뽑을 자신이 없었다.


비행기표도, 숙소도 없지만 스위스는 갈 거야

 하지만 과한 생각은 행동을 지체시킬 뿐. 나는 스위스에 가기 위해 선전포고를 택했다. 어느 날 영어회화 수업에서 선생님께 말했다. “저 다음 달에 스위스 갈 거예요. 그래서 수업 못 해요”

 선생님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왜 많은 곳 중에 스위스인지, 스위스에 가서 계획은 무엇인지 등등 이것저것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어느새 스위스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었다.

 말은 그런 힘을 준다. “다이어트할 거야”와 같은 말은 이제 나도 너도 안 될걸 아는 뻔한 말이지만, 무언가를 할 거라고, 나는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그 말을 듣는 이에게도 강한 에너지가 전해진다. 당신과 내가 믿으면 세상도 믿는다. 


그래 그냥 해보자

 돈 없어서 굶는 한이 있어도 그냥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 포르투로 가기 전에 급하게 스위스행 비행기표와 숙소를 잡았다. 그렇게 아무런 여행 계획도, 지식도 없이 포르투에서 스위스로 향했다.

 유럽여행이 한 달은 지난 시점이라 두려움은 없었다. ‘그곳도 물론 사람 사는 곳이겠지 ‘ 싶었다.

한인민박과 한국인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났다. 이번 숙소는 한인민박을 잡았다. 하지만 비행기표를 끊은 이후, 숙박이 안된다고 예약을 거절당해서 한인민박에서 숙박이 가능한 날짜로 맞춰 비행기를 변경하고 스위스로 향했다.

 내가 굳이 많은 숙소 중에서도 한인민박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인이 조금은 그리워서. 추운 나라일수록 외로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스위스는 한인민박을 선택했다.

 일주일쯤 한국인들과 지내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다. 내가 왜 한국의 문화를 불편해했고, 왜 한국 사람들을 사랑했었는지 너무나도 분명해졌다. 정과 오지랖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은 해외에 나가서 한국인을 만나면 유독 반갑다는 것. 서울 지하철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피했을 것인데 여행지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한다는 사실 만으로 안도감이 든다. 여행자라는 사실이 서로에게 부담이 덜어진다. 

50년 우정여행

 한인민박 숙소에는 50년 우정을 자랑하는 멋있는 중년 여성 둘이 있었다. 두 분은 학창 시절 친구였다가 성인이 된 후 옛 동창을 찾는 사이트로 다시 만나 함께 여행을 다닌다고 들었다.

 '이상적인 우정이네'  나도 내 친구들을 떠올리며 유효기간을 생각해 보았다. 나와 그 친구들의 우정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크게 싸워서 관계가 끝난다면 그 사건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멀어지려나..? 그것도 아니라면 모든 추억들을 공유해 가며 오래도록 친구로 남으려나. 아무튼 모르겠다. 그런데 알고 싶지도 않다. 

 이 처럼 여행을 할 때 긴 생각이 토막 나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과한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다가도 갑자기 뚝 멈춘다. "오늘 저녁 뭐 먹지?"와 같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이 나를 생각에서 해방시켜 준다. '그래. 지금 내 저녁 메뉴보다 중요한 고민은 없어' 싶다. 

 중년 여성분들 중 한 분이 다리를 다쳐서 내가 양도를 받은 날이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던 나는, 오들 오들 떨며 패러글라이딩 하는 곳으로 향했다. 걱정했던 지난날이 귀엽게 느껴졌을 만큼 짜릿한 경험이었다. 세상을 다 품은 느낌이었다. 


인연 

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유독 스위스에서는 단 하루도 혼자였던 날이 없었다. 한인민박에서 동행이 구해지기도 하고, 우연히 혼자 다니다가 외국인 친구가 생기기도 했다. 누군가와 동행을 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을 나눠가지기도 하고, 추억을 나눠가지기도 하고,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사진 속 보이는 곳은 내가 스위스에서 가장 사랑했던 장소인 '외시넨 호수'이다. 한인민박에 오고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 언니와 함께 동행했다. 새벽에 일어나 첫 기차를 타고, 안갯속을 걷고 또 걸어서 도착했다. 하지만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움직일 수 없었고, 우리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안개가 없어지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안개가 점점 사라지더니 CG 같은 풍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

 사진에서 보다시피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풍경들. 한 번도 여행을 하면서 한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 적은 없었는데, 스위스에서는 만약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진짜라면, 이 자연이 진짜라면, 이곳 사람들의 웃음이 진실된 행복의 웃음이라면,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경제적으로 못 산다, 잘 산다 하는 간단한 문제를 떠나서, 내가 꿈꿀 수 있다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많이 변화했다. 한국이 분명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여행만 해서 뭘 알아, 살아봐야 알지'라고 할 수도 있는데, 여행만 해도 안다.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거. 오후 두 시에 놀이터에 아이들이 붐비는 것만 봐도, 보도 블록보다 푸른 잔디가 많은 것만 보아도, 버려지는 동물들이 없어서 '길고양이' '떠돌이 개'라는 말이 없는 것만으로도, 자유롭게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남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문화를 경험해 보면, 분명히 다 안다. 더불어 우리가 얼마나 불편하게 살았는지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서도 기꺼이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있었다. 한국에서 내 삶과 내 일과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한국의 경복궁을 보며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나도 스위스의 자연을 보며 경의로움, 아름다움, 그리고 삶의 저 너머 이상을 보기도 했다. 이 아름다움이 익숙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아 가기에는 내 마음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동행

 동행. 그 얘기를 한다는 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스위스에서 참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중에서도 융프라우에 혼자 올라간 날, 고산병을 이겨내고 오른 정상에서 대만에서 온 사랑스러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은 사진을 너무 못 찍어준 외국인 덕분이었다. 나는 융프라우에서 외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했지만, 기울기와 각도가 정말 인기가요 무빙 저리 가라였다. 그래서 사진을 잘 찍어줄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다가 동양인이 보였고, 나는 그 친구에게 사진을 요청했다. 그리고 스몰토크를 시전 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2살 많은 프랑스 유학생 겸 대만인이었고, 혼자 여행을 온 여자였다. 나는 방방 뛰며 나도 혼자라고, 혹시 하이킹하고 싶으면 같이 하이킹을 하자고 말했고, 그렇게 하루, 이틀 동행이 이어졌다. 

 이 마저도 내 상상이 현실이 된 상황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을 원했고, 그런 상황이 네게 일어날 거라고 믿고 준비했다. 그리고 막상 그 상황이 되자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고산병으로 인한 언어능력 상실을 꼽을 수 있다. 나에게는 고산병 약이 있었지만, 고산병 증상이 생기면 약을 복용하라는 말을 듣고 기다렸다. 살짝 숨이 가빠오고, 머리가 핑 돌고, 몸이 무거워져 계단을 오르기 힘들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고산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치 빠니보틀 처럼..) 높은 곳에 올라오면 이 정도는 당연하다 여겼다. 

 그리고 그 친구를 만난 이후로, 머릿속이 연기로 가득한 기분이 들면서 영어가 기억 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하이킹 코스로 내려왔고, 드디어 언어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영어를 잘하시나요?

 외국인 친구와 동행을 마친 저녁에, 좀 늦게 숙소로 들어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 융프라우에 간다는 사실에 걱정을 하던 한국인들이 나의 오늘 하루를 물었고, 나는 외국인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한국인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영어를 잘하시나요?" 나는 "간단하게 이야기할 정도로만 해요"라고 답했다. 한국인들에게 이 답변은 겸손한 영어 능력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은 있는 그대로였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파닉스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몰타 한 달 살기를 하러 갔을 때 영어 공부를 절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 1월부터 여행을 가기 2주 전까지 매주 영어회화 수업을 통해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노력을 바탕으로 깊은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못 알아듣는 것도 많고, 모르는 단어도 많고, 긴 말을 하지도 못 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딱 하나. 그것은 영어에서 강조하는 '자신감' '노력' '재능'도 아니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하나면 어떤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내가 비록 이 단어는 모르지만,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워' '나는 긴 말을 하진 못 하지만, 그래도 너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이 마음은 모든 걸 극복하게 한다. 그것이 언어장벽이든, 나라 사이에 시차든, 문화든, 뭐든. 

대화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

 나는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하는 행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영어로는 나의 지식을 뽐낼 수도,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도,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할 수도 없어서 시시콜콜한 말로 대화를 채웠다. 숙소로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는데, 영어를 잘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 대화를 이어나간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간단한 대화가 주는 가볍고 기분 좋은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한국어로도, 굳이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현재 내 상황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좋은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얕은 대화를 한다고 해서 관계도 꼭 얕게 유지되진 않다는 것을 느꼈다.

스위스 사람들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스위스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든 스위스 사람들은 보였다. 특히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공원에 들어오고, 사실 많이 놀랐다. 오른쪽에는 어른들의 놀이터. 야외 테니스 장, 배드민턴 장, 축구 장, 미니 골프장, 왼쪽에는 자연친화적으로 보이는 커다란 아이들 놀이터, 중간 큰 잔디에는 거대한 체스판, 큰 나무 밑에서 낮잠 자며 휴식하는 젊은이들, 백텀블링을 열 번도 더 하는 활발한 아이들. 오후 3시에 이 풍경이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한국이라면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갈 시간에 놀이터에 아이들이 붐비는 풍경이 낯설었다. 나도 잔디에 누워 그들처럼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 와서 한국사람에게 나이를 밝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다. 

 한인민박에서 만난 어느 아저씨가 술에 취해 나에게 와서 말했다. "내가 어른으로써 조언하자면, 순수한 것을 티 내지 마. 남들이 걱정하게 만들지 마" 나는 이해를 못 하고 두 번 세 번 더 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다. 그 말을 네게 하는 것 자체가 어른의 역할이 아니란 걸 당신은 모르는 것인가.

 여행을 하며 나이를 말하고 나면, 한국 어른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듣는다. "어우 내가 부모라면 여행 허락 못 해줘" "대단하긴 한데 부모가 걱정하겠네" "왜 이렇게 어려서부터 왔어" "그래 지금이 가장 좋을 때다. 걱정도 없고 편안할 때야" 

 여기는 내 공간이니까 편하게 글을 쓰자면, 여행 중 한국 사람들에게 나이를 밝히고 나면, 모두가 '조언'이라는 핑계로 잔소리를 하고 싶어 난리가 난다. 나는 당신의 잔소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좋은 시절'이라고 정의해 버리는 그들이 밉기도 하다. 

나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지

 어릴 때부터 어른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명절 때는 내가 얼마나 더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처음에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그 눈빛이 흉측한 괴물 보듯 찡그린 시선으로 변화해 갈 때, 나는 집을 나와 엉엉 울었다. 명절이 오는 것이 두려워 죽고 싶었다. 그리고 살이 많이 빠지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현재에도, 살이 많이 빠졌다는, 예쁘다는 칭찬을 듣곤 한다. 다시 숨 막힌다. 첫 번째 독일 편에서 잠깐 언급했듯, 몸이 신체로서 기능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나는 함부로 남의 몸과 얼굴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외모 칭찬과 더불어서 어른들의 '조언'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아니 어쩌면 유치원생까지도 '그때가 좋은 시절'이라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다. 나의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초등학생 > 중학생 > 고등학생 > 순으로 고통의 정도가 나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시기는 아무것도 몰라서 막막하고 괴롭고, 도움이 필요하고, '친구랑 재밌게 놀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시기는 나보다도 친구를 위해, 관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며 아파하고, 불안한 시기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우리는 누구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한다. 그리고 인생의 고난이라 불리는 것들은 초년에 오기도 하고, 중년에 오기도 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함부로 남의 인생을 판단하고 조언하는 일을 멈추면 좋겠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조언'이라는 목적하에 강해지는 폭력이 멈췄으면 좋겠다. 앞으로 여행을 할 때는 나의 어린 나이가 단점이 되지 않길 바란다. 사랑하는 스위스 안녕. 


작가의 이전글 포르투,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난 일주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