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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다 Jan 02. 2021

외로움과 나를 지키는 것에 관하여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이 죽도록 싫었다. 맞벌이 부부인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같이 놀 형제, 자매도 없어, 티브이로 외로움을 채웠다. 또 친구들과 해가 저물도록 놀며 외로움을 채웠다. 머리가 더 크면서는 외로움을 사람으로 특히 더 채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사람을 찾으면 찾을수록 사람은 떠났다. 사람들을 만나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도 홀로 집으로 향하는 길이면 쓸쓸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울 때도 있었다.


 홀로 있는 시간이 외로워서 정말 싫었지만, 홀로 있는 시간은 나를 직면하게 했다. 사람들과의 연결은 잠시 뒤로 하고, 나의 내면을, 생각을 조용히 지켜보게 했다. 참으로 어둡기도 했고, 나 자신을 할퀴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나를 참 많이 울렸다. 한참을 그러고 나면 그토록 몰아치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졌다. 아주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다시 또 나 자신을 왕창 울리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역시 잠잠해졌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왜냐면 그때 생각했던 것들, 걱정했던 일들. 모두 다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내 생각이, 내 발목을 잡았다. 생각이 부정적으로 흘러갈 때 한 모든 생각들은, 결코 사실이, 진실이 아니었다. 나는 주로 나를 깎아먹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결국 날 미워하고, 싫어하고, 떠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특히 많이 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진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가 걱정한 것처럼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을뿐더러, 설사 내가 걱정한 대로 나를 생각한들, 그것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은 정말로 아무런 힘이 없었다. 내 멍청한 생각과 말들이 아무런 힘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의 말과 생각으로는 절대 나를 정의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정의하느냐였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한들, 나를 뼛속 깊이 보고, 알고, 나와 함께 꼭 붙어 생활하는 건 나이지 않나. 그러니 사람들의 말과 생각, 행동에 흔들리고 휘둘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 때문에 하나뿐인 삶에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되지 않나.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내 잘못된 점, 나의 모순은 다른 사람들에게, 혹은 더 옳은 모습이나 이상향에 비춰보고 고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를 이루는 토대, 근본, 뿌리는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지켜야 한다. 그래야 외부의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꽃도, 나무도, 햇살만 받고 살 수 없고, 때로는 비바람도, 폭풍도 맞아가며 살아가야 하듯이, 그걸 견뎌야만이 꽃을 피우고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듯이, 사람도 살면서 마냥 좋은 말만 듣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 쓴 말도 듣고, 서로 부딪쳐 가며 살아야 한다. 어쩌면 그간 지켜온 나의 세계,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정도의 압력과 마주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무너지고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외로움이 필요하다. 나의 내면 상태, 나의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고, 지금  안에 자리 잡은 것이 무엇인가. 나의 생각,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나는 어떤 것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내가 가장 중시하는 신념과 가치관을 나는 잊지 않았나. 세상 속에서, 삶에 치여서 나는 나의 생각을,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나를 지키지 못하지 않았나. 저버린 것은 아닌가. 돌아보는 것이다. 직면하는 것이다. 각자가 각자로 살아가는 이상,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이상, 나를 지키지 못하고서는 삶을 계속 살아나갈 수 없다. 살더라도 불행해진다. 고통의 연속이다.


 최대한 내 자신에게 이로운 좋은 가치관을 찾아 세우고, 기왕이면 나와 함께 이 땅을 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는 말, 생각, 행동을 선택한다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사람들이 그것을 쥐고 흔들어 놓을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선택한 올바르다고 믿는 가치들을 계속해서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외로움이 참 싫지만, 홀로 있는 때에, 가장 외롭고 심심하고 고독한 때에 내가 선택한 가치들을 돌아보고 되새겨 다. 정직, 신뢰, 사랑, 우정, 관용, 용서, 나눔, 배려, 인격, 존중, 희망, 감사 등. 그리고 '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대로 잘 살고 있나' 하고 점검한다. 그 어떤 상황에도, 어떤 유혹이 온대도, 흔들리지 않고 지키고 싶은 내가 선택한 나의 가치들을.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때로는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나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들로부터, 나를 지킨다.


 그래서 외로움을 즐기기로 했다. 받아들이고, 사랑해보기로 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자 마음먹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잘 안 된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맞아 세상도, 상황도 어째 점점 외로움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또 즐기도록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더욱 나를 지켜나가고, 나를 만들어나가는 이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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