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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Mar 22. 2021

김치가 좋아

하루 요리 일기-김치 볶음밥 편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요리가 있다.  바로 김치볶음밥과,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좋아해서 자주 해 먹는 요리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건 아니다. 자주해 먹어도 어느 날은 맹하게 간된 김치볶음밥을 먹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간장을 너무 많이 넣어 까만 김치볶음밥을 먹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가 보내준 김치를 먹으며 자랐다. 김치는 내 음식 생활 중에 빠질 수 없다. 다른 반찬 없이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있다. 외할머니의 김치가 내 입맛에 길들여져 있어서인지 먹어만 봐도 이게 외할머니 김치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다른 김치들은 내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 우리 외할머니는 김치 대회에 나가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이다. 재작년부터 깁장하시는 날에 찾아가서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시험기간이거나 또 다른 김장 준비가 있다거나. 할머니의 손맛을 따라 할 순 없겠지만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막 담근 김장김치보다 익은 신김치를 좋아한다. 아삭하게 익어 김치에 신맛이 입안에 퍼지는 게 좋다. 예전에는 김치의 줄기 부분만 먹었는데 이젠 잎 부분도 잘 먹는다. 안 그래도 맛있는 김치를 볶으면 감칠맛이 더 올라와 더 맛있다. 아무튼 오늘은 김치볶음밥!


한결이와 등산을 하기로 해서 각자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다. 늦잠을 부리다 늦게 일어나 머리도 못 감고 허겁지겁 냉장고에서 김치, 파를 꺼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파를 넣고 약불로 파 기름을 내는 동안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가위로 김치를 집어서 싹둑싹둑 잘라 김치를 넣고 볶고 서랍에서 진간장을 꺼내 한 숟가락 넣어 불을 세게 키워 보글보글 간장을 태운다. 그리고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위해 햇반을 넣어 볶아준다. 밥이 익어갈 동안 베란다에서 딸기를 꺼내와 식초물로 한 번 헹구고 체에 받혀 물기를 빼서 도시락통에 넣고 김치볶음밥에는 피자치즈를 넣고 숟가락으로 뒤적뒤적 섞으며 치즈를 녹인다. 완성된 김치 볶음박을 도시락통에 부으니 딱 맞다. 좀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계란 2개를 까서 스크램블 에그를 하고 마지막으로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까지 살짝 넣어주면 완성이다. 이 모든 걸 15분 만에 했다. 빠르게 프라이팬은 물에 담가놓고 참기름, 진간장, 식용유는 아래 서랍에 대파는 다시 냉동고에 넣고 시간을 보니 15분 정도 지났다. "나 좀 멋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쭐해진다.  자주 해 먹는 요리라 조미료들의 위치나 만드는 내 행동이 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레시피를 보려고 요리하다 멈춰 핸드폰으로 서치를 한다거나, 모든 재료를 다 꺼내놓고 요리를 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식재료가 어디 있는지 알고 필요한 순간에 바로 쓰고 넣을 수 있는. 이런 흐름들이 너무 좋다.

한결이에게 줄 딸기잼까지 챙기고 집을 나섰다. 산을 오르고 나뭇잎들로 그늘진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만들고 나서 제대로 간을 보지 않아 맛있을까 걱정하던 게 무색하게 맛있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김치볶음밥은 부재료가 있어야 헉! 할 정도로 맛있다는 것을. 피자치즈와 스크램블 에그가 신의 한 수였다. 내가 먹어도 맛있어서 먹어보라고 한결이에게 권했다. 한결이도 맛있다고 했다. 밥을 다 먹고 땀도 식어 조금 추워진 우리는 햇빛을 받는 의자로 자리를 옮겨 딸기를 먹었다.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밥을 다 먹고 창가에 누워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자던 그때가 생각났다. 말없이 가만히 앉아 광합성을 하며 딸기를 베어 물었다. 역시 딸기.

 

전에 이 산을 올랐을 때는 정상의 올라서서 경치를 보던 기억이 있는데 8년이 지나고 나서 올라오니 정상이 없었다. 약수터도 사라지고 아파트가 지어졌고 산에 올라가는 사이사이 보이는 건 공장처럼 세워진 아파트라는 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모를 동물이 나무를 타는 것, 깊게 뿌리를 내린 나무의 뿌리, 진달래, 제비꼿,개나리 벚꽃, 안개꽃, 지네 등 보았다.  아기 새들이 우는 소리도 들었는데 짹짹이 아니라 고양이 야옹 소리와 비슷했다.

올라갔던 산을 다시 내려오고 버스를 타고 가려고 선 정류장 앞에 포르투갈 에그 타르트 가게가 보였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에그 타르트를 먹어본 적이 없어 맛이 궁금했던 나는 기본 에그 타르트를 1개 샀다. 이제 막 구워서 따뜻한 에그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먹어니 타르트지에 바삭함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필링까지. 진짜 맛있었다. 달걀빵 맛도 아니고 커스터드 크림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아무튼 다음에 다시 한번 올 때 많이 사서 이 맛을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곳은 유명해져야 해. 포르투갈에서 타르트라더니 진짜 포르투갈에서 먹으면 이런 맛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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