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백경 에세이

by 백경

병원에서 상담받는 것 말고도 개인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내 우울증 여정을 긴 시간 함께 해주었다.

그는 다양한 치료 방법을 사용했고, 내가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길 도와주었다.

그는 내게 한 문장을 남겨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울증은 도저히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울증이 낫고 친했던 사람들과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다.

그들이 나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전혀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난 아무렇지 않게 웃음 지으며 대화를 이어가지만, 홀로 생각을 곱씹을 땐 놀라기도 한다.


당시 내 상황이 얼마나 안 좋았다는 걸 반증한다.

지금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길 테지만,

그때의 난 그러지 못했다.

우울증이 오래갔으니까.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난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그때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서 술에 의지를 많이 했다.

술자리는 좋아했지만, 술이라면 질색하던 내가 혼자서 술을 찾아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소주 한 병에 맥주 피쳐 하나를 섞어 마셨다.

체력이 다 해서 자는 것이 아니면 되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오직 죽음뿐이었다.

사람은 무얼 담고 있냐에 따라 달라진다.

난 죽음을 담는 그릇이었고 그릇은 점점 흉하게 변해갔다.


그때 난 살이 엄청 쪘다.

지금과 비교하면 20kg 정도 차이가 난다.


맞는 옷이 없었고 살을 뺄 의지는 당연히 없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으로 몸을 가린 채 살았다.

몸의 변화 뿐만 아니라 영혼의 변화가 더욱 심각했다.

매사가 부정적이었고 희망이란 한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이 병원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내 상황이 도저히 낫지 않아서였다.

난 치료에 의지가 없으면서도 열성적이었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새롭게 살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생각했다.

다짐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럴 힘조차 없었으니까.




원하지 않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난 시간을 헛되이 버렸다.

오히려 죽음에 한 발 다가간다고 좋아했다.


할머니와 살 때 난 그녀가 부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 하는 모든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라 그랬다.

그녀는 삶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었기에 어딜 가나 양보를 받았다.


처음 보는 사람도 그녀에게 텃세를 부리는 일이 잘 없었다.

그런 모습이 부러워서 그녀에게 말했다.


나도 빨리 할머니 나이가 되면 좋겠다.


그러니까 그녀는 특유의 환한 미소로 답했다.


난 가진 걸 전부 주고 돌아가라고 해도 네 나이로 돌아갈 텐데.


모험심이 강하고 유쾌한 그녀 다운 답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 난 왜 그렇게 미련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젊게 산다.

확실히 또래보다 정신적으로 젊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우울증을 겪은 시간만큼 내 인생의 기억이 흐릿하다.

그러니 그만큼 정신적으로 이득을 보는 셈이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보상받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 중이다.


친구를 만나면 이제 우리도 적은 나이가 아니다는 말을 듣는다.

새삼 깜짝 놀란다.

평소에 나이를 굳이 기억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굳이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힘든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조심스럽게 주문을 외워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이 듣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버텨야 한다.

살아만 있다면 또다시 기회는 주어지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지나가는 중이다.




다음 이야기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