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우울하지 않다

백경 에세이

by 백경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우울하지 않다. 무기력할 뿐이다. 죽음만 기다릴 만큼.




병원에 들러서 검사를 받으니 검사 결과가 심각하게 나왔다.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손에 쥔 엄청난 부피의 알약을 보며 내가 아프구나 실감했다.


내가 곪아가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그 친구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난 그렇게 조용히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 모든 걸 끝내려면 지금까지 내가 노력한 것들을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길을 생각하면 막막했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살고 싶은 의지가 그때까지는 있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혼자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내게 기대를 걸고 기댄 사람들이 있었다.

어리석게도 그때에 난 타인과의 ‘관계’만 생각했다.

나와의 ‘관계’는 의식하지 않았다.


내 목을 조르는 건 나였음에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어느 겨울밤이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인근 공터를 걸었다.

(나무 같은 사람이지만, 산책을 좋아한다. 몇 시간이고 걷는 건 자신 있다.)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위로받고 싶었다.

오랜만에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날 사랑으로 키워주신 분.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울컥했다.

목이 잠겼고 눈이 무거워졌다.

이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지만 끝내 참아냈다.


할머니, 나 아프대. 너무 아프대. 그런데 나 여기서 다 그만두고 다시 할머니랑 같이 살까?


치매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발을 동동 굴리는 것만 같았다.

안타까움이 전달되었고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위로받았다는 생각보다 내가 가진 근심을 옮긴 것만 같았다.


잠시 후면 그녀는 내가 전한 이야기는 잊겠지.

그런데 감정은?

치매 환자라도 감정을 연결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괜히 전화했다 싶었다.


공터를 돌며 노래를 크게 틀었다.

당시 난 한 가수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냈다.

그에게는 나와 같은 병이 있었고, 그 병이 그를 지독하게 괴롭힌 듯했다.


애석하게도 난 그가 활동할 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가 떠난 뒤에야 그가 내게 들어왔다.

그의 노래는 많은 이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상상하곤 했다.


넌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거니.


그 질문은 곧 내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난 그의 노래를 한동안, 오래도록, 각인될 만큼 들었다.


아직도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차가운 밤공기,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가로등불의 세기, 땅의 질감.






우울증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

죽을 용기로 살면 되지라는 말을 함부로 했다.

요즘에야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시절엔 그랬다.


타인의 생의 결과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고 입을 댔다.

처절하게 맞서 싸운 그의 전투를 알지 못한 채, 패전한 장수라 기억 한다.


우울증이면 우울한 거 아닌가요?

병명을 그렇게 지으니 흔히들 하는 오해이기도 하다.


우울감, 공허감, 무기력, 피로 증가, 죄책감, 집중력 저하, 죽음에 대한 반복적 생각, 수면의 변화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저 많은 증상 중 우울감이 선택이 되어 우울증이 되었다.


그때에 난 우울하기도 했지만, 불안했다.

공허하고 무기력했다.

자기혐오에 빠져 매일 스스로를 난도질했다.


편안한 침대를 버리고 불편한 소파를 선택했다.

잠자는 것조차 사치라 여겼다.

내 가치를 스스로 깎아 먹었다.

세일 딱지를 붙이고 끝없이 저평가했다.


소파에 누우면 온갖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로 시작된 상상은 끝없이 날 괴롭혔다.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랬다면.


손 볼 수도 없는 내 시간들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천성이 세상을 삐뚤게 보기는 했지만, 그 시절엔 지독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날 잡아먹었다.


난 우울했다기보다 한없이 무기력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무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 어떤 것도요 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을 치유할 수 없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을 먹게 되면 진짜로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것을 선고 받는 것 같았다.

수면 장애 때문에 집중력이 저하되었다.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난 소파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