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봄

백경 에세이

by 백경

봄맞이 해적글입니다.



힘든 일이 겹치니 안 좋은 생각이 깊어진다.


오늘의 난 무엇으로 버티는가.


산다는 표현이 사치일만큼,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나른하고도 어중간한 시간. 오후 세 시.

난 오후 세 시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고 설 명절을 앞두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나태해지는 시간이었겠지만, 그날 우리 가족에게는 긴장과 기쁨을 가져다준 시간이었을 것이다.

난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고, 내 탄생에 많은 이들은 웃음으로 답했을 것이다.


오후 세 시만 되면 난 나의 출생 이야기를 떠올린다. 난 누군가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익숙한 것은 상실로부터 의미를 찾게 된다. 문득 지난날들을 그리다 지나간 시절인연을 떠올린다.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붙어 지냈을까.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던 것일까.

날 잊은 사람들에게 나도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겠지. 특별한 오후 세 시 같은 사람으로.




날씨가 많이 풀렸다. 사람들의 옷은 한층 얇아진 걸 보니 계절의 변화를 체감한다.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세상은 변했고 우리에게 뜻을 알 수 없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노력에 비해 보상이 커서 어찌할 바 모르는 나는 감사히 이 계절을 바라본다.


올봄이 마지막이라면….


지금까지 이런 생각조차 하고 살지 않았다. 당연히 이 봄이 지나면 다음 봄이 찾아올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봄을 지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한 프레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올해 봄이 마지막일지, 내년 봄을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올봄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울해서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삶이 무료할 때 한 발 물러서 빈자리를 만들어 본다.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바뀌게 된다.


무수히 많은 우연이 겹쳐 운명을 이루고 인연을 맺는다. 우리가 이렇게 글로써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난 올봄을 최대한 몸에 새길 생각이다. 내년 봄이 온다고 해도 그렇게 하겠지. 내년 봄은 올봄과는 또 다르니까. 그렇게 지내다 보면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거겠지.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