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선하라고?
담당자가 정신 차리지 않았다 탓할 시간에
실수를 유발하는 시스템을 고치자!
당신은 팀원/동료의 업무상 실수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일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의 크고 작은 실수로 웹 사이트가 먹통이 되거나 앱에 버그가 생겨 유저들이 불편을 겪는 이슈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아침에 나갈 앱 푸시가 전날 저녁 9시 이후 뜬금없는 시간에 발송되는 일도 있다.
팀원/동료가 실수할 때 "왜 집중을 안 해서 실수하지?"라는 마음을 품는 사람. 내가 그랬었다. 특히 주의가 필요함을 알려준 부분이거나 나는 안 했던 실수가 생길 때 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반복적인 실수가 이어질 땐 속으로 ‘이 친구는 일할 때 왜 정신을 안 차리지?’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런 시각을 가지고 동료를 바라보니 내게도 부작용이 생겼다. ‘이러다 나도 실수하면 어떡하지? 완벽해야 해! 나는 실수하면 안 돼!’라는 강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실수의 근본 원인을 찾아: 집중 부족을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
내가 그랬듯 많은 사람이 팀원의 실수를 바라볼 때 개인의 능력이나 집중력 문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을 것 같다. 옥소폴리틱스 유호현 대표님은 내게 "사람을 탓할게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서 실수를 방지해야 한다"라고 알려주셨다. 문제를 일으킨 특정 인물에 집중할 게 아니라 조직 전반의 프로세스와 체계를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저 친구가 조금만 신경 썼다면 이런 실수를 안 할 텐데’라는 생각에 대표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료의 실수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나니 나 또한 ‘절대 실수하면 안 돼!’라는 강박에서 자유해질 수 있었다.
포스트 모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비책 도출
옥소에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포스트 모템’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방지책을 만들었다. 포스트 모템(post-mortems)은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컴퓨터 연산 중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시체 해부를 뜻하기도 하는데, 시체를 해부하듯 문제를 해부하고 원인을 찾아 재발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개요 - 증상 - 5 Whys - Identified Problems - Action Item>
포스트 모템은 주최자가 개요와 증상 등 사고/문제 발생을 브리핑한 뒤 관련자들이 모여 ‘5 Whys(5번의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연달아 물어가고 답하며 답을 찾아내는 방식!)’를 통해 사고/문제 발생의 이유들을 찾아내고, 보완 및 해결책을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각 팀의 Action Item을 정리하고 각 Action의 담당자를 정한다.
예를 들어, 앱 푸시 오발송 사고로 유저들이 불편을 제기하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린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포스트 모템 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유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상황을 공유한다. 다음으로 왜 이런 사고가 났는지 5 Whys를 통해 추적해가다 보면 ‘콘텐츠팀이 주의해서 사용하면 되지’라고 넘기던 불편한 어드민 조작 방식이 ‘개선해야 하는 시스템’이 된다. ‘앱 푸시를 예약할 때 오발송을 주의하느라 쓰는 에너지와 시간’를 줄여 더 빠르고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불편을 없애는 것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중요한 것 같다. 사용할 때 이 부분을 주의하라고 하나씩 설명하고 감독하는 것보단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실수를 기회로: 한 사람의 실수는 유사한 문제를 예방할 정비 기회
포스트 모템을 잘 진행하기 위해 중요한 태도 두 가지를 골라봤다.
①담당자를 문책하려 모인 자리가 아니라는 모두의 인식과 태도
②담당자의 솔직하고 구체적인 상황 설명
포스트 모템은 누가 어떤 잘 못을 했는지 밝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스템이 어떤 사고를 유발할 수 있게 되어있는지 찾아내고 보완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잘잘못을 따지고 비난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의 실수가 팀 전체를 위한 교훈이 되고, 유사한 문제를 예방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대신 사고를 낸 당사자는 모두가 최선의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도록 솔직하게 어떤 이유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말해주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남들 앞에 내 실수와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어려울 수 있다. 나도 처음엔 이 시간이 괜히 떨렸다. 그래서 포스트 모템이 내가 혼나는 자리가 아니라는 팀 분위기가를 만들기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레벨이 높은 분들의 도움과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솔직한 소통: 함께 성장하는 스타트업
앞서 말했듯 나는 팀원 간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회사 문화뿐 아니라 프로덕트를 개선,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공유하고 학습의 기회로 여기는 태도가 함께 성장하는 동료와 조직을 만드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포스트 모템을 통해 배웠다.
* 사진: Unsplash의Jason Goo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