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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ueBlue Nov 14. 2023

C. ‘퇴사’ 말고 ‘졸업’합니다?!

정치데이터플랫폼 옥소폴리틱스의 ‘졸업’ 문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정치 스타트업 중 하나인 옥소폴리틱스(oxopolitics). 나는 2021년 1월 팀 옥소폴리틱스에 합류했고 2023년 9월 1일 졸업했다.



✋ 잠깐! 학교 아닌 기업인데 퇴사가 아니고 졸업?

옥소폴리틱스는 ‘퇴사’ 대신 ‘졸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전 CTO님이셨던 대우님 퇴사 당시 생긴 문화로 옥소 팀원들이 끝까지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마무리하고, 회사를 나간 후 서로 편하게 연락하고,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길 바라며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대학 졸업 후 선후배가 서로 끌어주기도 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듯이 회사를 나가서도 “전에 옥소 팀원이었어!”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단어랄까. 각각의 이유로 먼저 졸업한 사람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부심을 만들며 서비스를 이어가자는 마인드를 담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자세한 내용은 2023년 4월 출간된 도서 OXO PLAY BOOK(옥소 플레이북) 또는 유호현 대표님의 브런치 등에서 볼 수 있다!


브런치에 그동안 옥소에서 경험하고 배운 스타트업 문화 내용도 꽤 올릴 예정이라 커리어 관련 첫 게시물을 옥소의 퇴사 문화, 내가 퇴사할 때 쓴 글로 정했다. ㅎㅎ


예전에 공연기획사 인턴 기간이 끝났을 때 선배님한테 선물과 함께 ‘더할 나위 없었다…!’라고 쓰인 편지를 받았는데(당시 미생이 핫했다) 최근 11년 동안 목회한 교회에서 사임하는 목사님의 인사말을 통해 그 표현을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보니 옥소에서의 나의 3년도 ‘더할 나위 없었다’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밀도 있었다. 처음 입사할 때 유호현 대표님께 기대했던, 경험하고 싶었던 실리콘밸리 기업 문화를 옆에서 충분히 배웠기도 하고, 시야를 넓히기도 했으니까.


잠언 13장에 지혜로운 사람 옆에 있으면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구절이 있는데, 3년 전 내 선택은 옳았고 앞으로의 선택에도 이 구절을 적용하려고 한다. 똑똑하고 빠른 리더 옆에 있으면 확실히 배울 것도 많고, 그 속도에 맞춰 나 또한 더 빠르게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가령 누구보다 빠르게 AI에 주목한 대표님의 영향으로 나는 올해 상반기 ChatGPT와 AI를 적극적으로 업무에 적용할 기회와 툴을 제공받았다. 반면 주변 친구들은 ChatGPT를 화젯거리로 이름만 알고 있거나 간단한 질문을 남기는 정도로 써본 것을 보며 ‘속도’의 차이를 크게 느꼈다. 호현님 덕분에 나도 관심이 생겨 요즘 KAIST 오종훈 교수님이 강의하는 온라인 AI 딥러닝 수업도 듣고 있다.


스타트업으로 커리어를 옮기거나 시작할 때 무엇을 보냐고 묻는다면, 리더와 회사의 미션을 잘 보고 선택하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2023년 Q4 브런치를 시작하며, 옥소를 졸업할 때 남긴 글을 이곳에도 올린다.


옥소폴리틱스와 함께한 지난 몇 년은 콘텐츠 기획자인 제가 IT 업계 인재로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디어로 문제 해결하기', '생각을 글과 영상으로 표현하기' 그리고 '프로젝트 기획 및 관리'라는 기획자로서의 경험과 강점을 IT 스타트업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스타트업 씬에 있으며 다양한 도전과 경험으로 밀도 있게 채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계속 방송계 주변에만 머물렀다면 스타트업 세계와 문화를 ‘콘텐츠’로, 소개해야 하는 ‘소식’으로 바라보고 느끼는데 그쳤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경험과 도전은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어주는 장치가 되어 줍니다. 정치인을 섭외하고 인터뷰하던 시절과 공채 시험을 위해 외우듯 익히던 시사상식과 정치 뉴스들이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에서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디자이너, 개발자와 함께 소통하며 플랫폼을 기획하고 운영하던 옥소에서의 경험은 제가 PO, PM, UX Writer라는 직군으로 역할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개인이 원하고 노력하는 만큼 참여할 기회를 주고, 각 분야의 전문성을 지지해 주고 책임지게 하는 ‘역할 조직’ 시스템 덕분에 짧은 시간 주니어에서 디렉터로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옥소 3.0에서 6.0 버전까지 유능한 옥소 팀원들과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콘텐츠 포맷, 커뮤니티 기능, 폴디(Politician Director)와 정치인 거래소 등 옥소코인 생태계도 론칭과 개선을 반복했고 지금의 옥소폴리틱스는 매일 수많은 유저가 방문하는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물론, 정치 관련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 특성상 정치적 이슈에 따라 MAU에 변동이 있어 왔지만 하루 100명 정도의 응답 수를 기록하던 플랫폼이 앱 푸시를 보내면 1,000 명 이상 응답을 보낼 정도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정치라는 소재로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표현 하나, 단어 하나에 더 예민해지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설문’과 ‘재미’ 사이 균형 맞추기도 중요한 고민이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신방과 전공필수 과목이던 <커뮤니케이션 조사 방법론>이 종종 생각났습니다. 미세한 단어 어감 하나에도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던 교수님. 설문 만드는 과제를 할 때 교수님의 피드백에 끝없는 질문 수정 작업을 반복하며 ‘아니 정말 이 정도까지 신경 써야 하나?’ 이런 푸념을 했는데 제가 팀원들에게 질문 톤에 대한 수정을 제안할 때 교수님의 모습이 오버랩될 때가 있었습니다. OX 중 특정한 답을 유도하거나 상황을 특정하게 이해하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했습니다. ‘가벼움’ ‘친근함’을 가져가며 유행하는 말투를 쓰고 싶은 마음과 ‘정치가 꼭 딱딱하고 어려워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 만의 톤을 잡기 위해 팀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고 많은 의견을 나눴던 것 같습니다.


한편, 프로덕트 팀 PO로서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이슈’라는 외부 요인의 영향력을 덜 받고 많은 유저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만족스러울 정도의 해결책을 만들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팀원들과 함께 전체적인 서비스 질과 플랫폼 사용성만큼은 꾸준히 높여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플랫폼이 안정화가 되어가던 차에 (게다가) 총선이라는 대목을 앞두고 먼저 졸업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그동안 옥소팀원들과 함께 했던 도전과 실험이 대한민국 정치 스타트업 역사에 한 페이지가 되어 다음 도전자분들께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옥소폴리틱스는 비슷한 정치 성향의 사람만 모여 대화하는 커뮤니티나 한쪽 의견으로 도배되는 댓글 창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광고와 앱 푸시를 모두 끈 시기에도 하루 300명이 들어와 응답과 생각을 남기고 커뮤니티가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응답을 남기지 않는 방문자 수는 더 많습니다-ㅎ) ‘모든 정치 성향이 모여 이야기하는 플랫폼’, ‘데이터로 나의 정치 성향을 계속 기록하고 알아가는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 함께했다는 것은 뿌듯함으로 남을 것입니다.


"프로페셔널은 당연한 것이다." 옥소가 직원의 근태를 평가 항목으로 넣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라던 호현 님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옥소폴리틱스 팀이 100% 재택으로 업무를 진행함에도 퍼포먼스를 낼 수 있던 것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는' 열정과 프로페셔널함을 지닌 팀원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번아웃 관리에 실패하거나 지칠 때도 있었지만, 좋은 팀원들과 미션을 향해 달리며 일에서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번아웃이 오기 전 스스로를 관리하는 법도 배운 것 같습니다.


옥소에는 아이디어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고, 방향성이 정해지면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개발자 분들이 있었습니다. UX 용어, 개발 용어를 하나도 모르던 제가 질문하면 친절하게 설명하고 함께 프로덕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팀원 분들…! 옥소를 함께 만들었던 모든 팀원분들께 감사 인사와 박수를 전하고 싶습니다.


입사할 때 호현 님과 일하며 ‘실리콘밸리의 기업 문화’, ‘역할조직’이 무엇인지 배우고 체득하고 싶었는데 특히 이 부분을 충분히 배우고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OXOPLAY BOOK’ 안에 제가 경험한 역할 조직에 대한 생각도 남길 수 있었고요✌]



PO 겸 Contents Manager로 여러 직무의 전문가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다양한 내부, 외부 프로젝트를 추진해 가며 역량을 키웠고, 피플매니저로 팀원들과 매주 1:1을 하며 매니징 하며 리더십과 경청 스킬의 레벨이 높아졌습니다. 요즘 ‘물경력’ 때문에 걱정하는 직장인이 많다는데, 옥소에서의 3년은 하루하루 꽉꽉 채운 '밀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캘린더를 다시 돌아봐도 참 바빴고 열심히 했네요…ㅎ)


마지막으로, 브런치에도 글을 옮기며

유저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옥소는 OX 응답과 댓글이 메인 기능이다 보니 유저분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댓글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사용자 관점에서 콘텐츠와 서비스를 개선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유저들의 댓글을 보며 많이 배우기도 배웠습니다. 때론 따끔한 지적을, 때론 벅찬 응원을 해주신 덕분에 계속 프로덕트를 발전시켜 갈 수 있었습니다. 2021년 재보궐 선거 땐 말풍선 형식으로 토론회를 요약해 올렸는데, 방대한 양에 지쳐 '아 두 번은 못하겠네' 했지만, 다음 토론회 때 ‘옥소 정리를 기다린다’라는 유저들의 반응에 다시 힘을 내 정리를 했던 날도… 서비스에 버그가 생겨 사과문을 올렸을 때, 사과문 잘 썼다고 오히려 칭찬하던 댓글도 기억에 남습니다. oxolive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도할 때 꼬박꼬박 들어와 출첵하고 대화에 참여하시던 분들도, 옥소 BM을 걱정하며 자발적인 옥소 홍보 운동 독려글을 남겨주신 분도, 나무위키에 옥소의 이야기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옥소 안에 나무위키 관리 그룹까지 만드셨던 분도… 참 소중하고 고마웠습니다.


업데이트 때마다 작성하던 옥소편지의 끝인사를 빌려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호하코공사 여러분!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소~!


AI 뤼튼이 만들어 준 '퇴사 말고 졸업하는 사람의 모습!'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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