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외모 평준화

오늘만큼은 나도 인기남

by 춤추는 금빛제비

며칠 전, 아내에게 말하지 않은 작은 외출을 했다.

숨길 일은 아니지만, 괜히 말 꺼냈다가 의심받고,

말꼬투리 잡히기 싫은 그런 외출이었다.


퇴직한 친구가 제안했다.

“건강 삼아 사교댄스를 배우고 있는데,

같이 콜라텍 한번 가보지 않을래?”

처음엔 손사래 쳤다.


“내가 왜 그런 데를 가?”

"내가 췄던 춤과 사교댄스는 달라."

그러다 문득,

‘경험이란 건 나이 들어도 새롭게 쌓는 거지’

싶어서 따라나섰다.


사실 예전 직장 내 동호회에서

댄스스포츠를 2년 정도 배운 적이 있다.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란 게 있다.

배운 춤과는 사뭇 달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리듬이 몸 안에서 살아났다.


나는 살아오며 ‘잘생겼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친구는 어려서부터 외모 칭찬을 도맡아 받았고,

나는 늘 그의 옆에서 존재감이 희미했던 쪽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이 들수록 '외모는 평준화'된다는 걸 실감한다.

젊었을 땐 분명히 친구가 더 잘생겼지만,

이제는 키, 몸의 균형감, 여유 있는 태도 같은 것들이

오히려 나를 더 빛나게 해 준다.


아내도 예전에 이렇게 말했다.

“처음 봤을 땐 그동안 소개받은 남자 중에서 당신 외모가 제일 아쉬웠지.”

약간 기분 나빴지만 웃으며 되물었다.

“그런데 왜 나랑 결혼했어?”

아내는 대답했다.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이상하게

대화할수록 태도나 느낌이 계속 끌렸어.”

그 말이 꽤 오래 남았다.


콜라텍은 예상보다 훨씬 크고,

음악은 요란했고, 조명은 정신없었다.

내가 생각하던 단정한 사교 댄스장이 아니라

어른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여성분들이 계속 먼저 다가와 춤을 청해왔다.

친구는 벽 쪽에 서서 팔짱을 낀 채 한참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야… 아니, 왜 너한테만 사람들이 가?”

당황한 듯, 약간 억울한 듯한 표정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춤을 추고 나온 우리는

콜라텍 근처 막걸리집에 들렀다.

서로 안주를 나누며, 친구가 불쑥 말했다.


“근데 왜 너가 인기냐?”

뭔가 좀 이상했어. 억울해, 자존심도 살짝 상했고, ㅋ…”

“그런데 조명 아래서 보니까,

솔직히 네가 더 나아 보이긴 하더라.

쬐끔..아주 쬐끔, 한 반 발자국?

우린 함께 웃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 난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젊은 시절엔 미완성이었고,

지금은 어딘가 단단해졌다.


몸은 여전히 균형 있고,

배도 나오지 않았고,

풍성한 희끗희끗한 은발이 제법 잘 어울린다.


콜라텍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다시 갈 생각은 없지만,

그날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나이 들어도 괜찮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평준화되는 건 외모고, 깊어지는 건

사람이다.


쑥스럽지만 난 내가 점점 더 좋아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Walking, 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