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요리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이제는 나도 ‘생존 요리’ 몇 가지쯤은 할 줄 알아야 되는데ᆢ 어쩌지?
젊었을 때는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처가에 며칠 다녀온다고 하면 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며칠간 자유라니, 그게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아내의 빈자리도 많이 느끼지만, 무엇보다 혼자 끼니를 때우는 게 참 귀찮다.
밖에서 사 먹는 건 기름지고, 배달 음식은 쉽게 물린다. 결국 라면을 끓여 먹는데, 이 나이에 라면이 주식이라니 못내 먹으면서도 살짝 짜증 난다.
라면 물은 정말 기가 막히게 맞추는데, 그 재능이 여기 까지라는 게 문제다.
나는 입이 짧아서 식욕에 크게 욕심이 없다. 반면 아내는 먹는 걸 즐긴다. 그래서 종종 이상한 생색을 내기도 한다.
“다른 집 남편들은 국이나 고기 없으면 식탁에 앉지도 않는다던데, 당신은 참 편하지 않아요?”
그럴 때 아내는 묘한 웃음을 짓는다. 아마 속으로는 ‘편하긴 한데, 너~무 편해서 문제다..?’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아내가 혹 아플 때 내가 밥 한 끼쯤은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며칠 집을 비울 때도 혼자 밥상을 차릴 수 있어야 한다.
해서, 김밥말이 하나, 김치볶음밥 둘쯤은 거뜬히 해낼 줄 알아야 최소한의 생명연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는 남은 평생, 집안에서 내 몫을 아주 쬐끔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생존 요리가 나를 지키고,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또 다른 '필살기'가 될지도 모른다. 요리학원등록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반찬, 찌게, 국 몇 가지는 제대로 맛나게 배워야겠다.
문제는 이 한마디다.
“여보, 나 요리 좀 가르쳐줘요.”
괜히 어설프게 꺼냈다가 평생 주방 보조로 발령 나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그래도 뭐, 주방장이 쓰는 흰 모자, 은근히 멋있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