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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다

걷는 속도로 사는 법

『월든』을 읽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by 춤추는 금빛제비


소로는 도망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숨은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었다.
숲은 그에게 고립이 아니라 실험이었다.

그는 월든 호숫가에서 나무를 베고, 콩을 심으며, 문장을 남겼다.
그 일상의 기록은 단순한 생존일기가 아니라, 사유의 체온을 재는 일지였다.
소로가 발견한 건 자연의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의 불필요함이었다.

『월든』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은 자꾸 속도를 늦춘다.
읽는 행위가 걷는 행위처럼 느려지고,
문장 사이의 여백이 마치 발자국처럼 이어진다.
그는 묻는다. “너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소로는 말한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그 단순함은 무소유가 아니라 선택의 명료함이었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고, 남은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용기.

그의 오두막은 작지만, 그 안의 세계는 깊다.
숲과 하늘, 새와 바람이 하루의 언어가 되고,
그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환원된다.
그는 그곳에서 철학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증인’으로 남았다.

책을 덮고 나면 도심의 소음이 낯설다.
커피의 향이 오르는 시간, 휴대전화 알림음이 울리는 그 순간에도
나는 잠시 호숫가의 침묵을 떠올린다.
소로는 내게 말하는 듯하다.

“삶이란, 네가 걷는 속도만큼만 의미를 남긴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지만,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걷는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문득,
내 안에도 하나의 작은 월든이 있다는 걸 느낀다.


"당신과 나의 Walden 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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