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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노 Feb 21. 2023

실패가 강자를 만든다

Failure maketh superpower

실패는 정말 두렵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체면을 구기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실패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또 실패했어?”라는 소리가,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에게는 “너는 잘할줄 알았는데...“라는 소리가 두려움을 키운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미국 사람들이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페일콘(failcon), 퍽업나이트(FuckUp Night)를 통해 실패를 기념한다.


미국사람들은 대체 왜 실패를 기념하는 걸까?


그들이 실패를 기념하는 이유는, 미국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미국은 실패를 통해 이류에서 일류로, 추종국에서 선도국으로 거듭났다. 핵무기를 가장 늦게 개발했지만, 가장 먼저 만든 것이다. 이러한 선배들의 경험이 축적된 미국 사람들은 실패를 겪는 것을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고, 실패의 힘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 이야기를 통해 실패가 주는 힘을 알아보자.


아인슈타인-질라드 편지

1939년, 아인슈타인은 루즈벨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프랑스 프레데릭 졸리오퀴리의 연구로 핵분열에서도 연쇄반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핵 연쇄반응을 활용하면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진 핵폭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독일이 핵무기를 만들지 모르니, 먼저 핵무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은 핵폭탄을 만들기로 결정하지만, 대체 어떻게 만드는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원자핵에 대한 지식은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해결책은 든든한 친구로부터 나왔다. 동맹국 영국은 미국에게 핵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핵폭탄을 만들려면 핵물질이 필요하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핵 물질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핵물질농축우라늄플루토늄은 모두 자연에서 얻을 수 없는 물질이다.

농축우라늄을 얻기위해서는 화학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동위원소를 분리해야하고, 플루토늄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동위원소 분리법과 플루토늄 생산법을 전혀 몰랐다.


가성비가 좋은 방법은 뭘까?

미국의 과학자들은 고된 연구 끝에 핵물질을 얻기 위한 5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동위원소 분리를 위해서는 (1) 기체확산법, (2) 전자기 분리법, (3) 원심분리법이 있고,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서는 (4) 흑연 감속로, (5) 중수로를 이용하면 된다 알아낸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던 와중에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다. 이는, 핵무기 개발에 속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미국 본토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사건이었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에 올인하는게 맞지 않을까?


실패를 각오한 바보들

그런데 미국인들은 바보같은 결정을 내린다. 실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실패를 각오하고, 5가지의 핵물질 확보 연구를 모두 추진하기로 한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성공률이 가장 높은 연구에만 집중하지 않고, 실패를 감수하기로 한 결정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원심분리법이 실패하며 큰 비용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나머지 연구에서는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더 큰 위기가 발생했다. 다른 연구들에서 성과를 내고 있을 때, 이번에는 같은편이 문제가 되었다.


동맹의 견제

기체확산법 연구의 선두 국가였던 영국이 미국과의 과학협력을 제한했다. 동맹으로써 핵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긴 했지만, 후발주자 미국이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영국으로써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도움을 받아 진행 중이던 기체확산법 연구는 이때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신의 한 수 : 실패가 최초를 만들다.

이러한 위기속에서 미국의 바보 같은 결정이 빛을 발했다. 성공가능성이 불확실했던 다른 연구에서 해결방법이 나왔기 때문이다.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흑연로 연구가 성공한 것이다. 엔리코 페르미가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CP-1(Chicago Pile-1)만들자, 미국은 자연에서 구할 수 없었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었다. 플루토늄을 얻게 된 미국은 오펜하이머에게 플루토늄 폭탄 설계 임무를 맡겼다. 오펜하이머와 과학자들의 도전 끝에 미국은 영국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플루토늄 원자폭탄을 얻게 된다.


초강대국 미국의 시작

플루토늄 생산법의 발견으로 미국은 원자폭탄을 대량으로 얻을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얻을 수 있는 우라늄과는 달리, 플루토늄은 원자로를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며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군사력은 기존의 강대국을 초월하게 된다. 미국을 견제하며 핵폭탄 개발의 선두를 유지하고자 했던 영국도 미국의 맨하탄 프로젝트에 협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은 독일과 영국에 비해 핵 개발을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그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핵무기를 개발한 나라가 되었다.

이후 미국은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핵무기 사용으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면서 오늘날까지도 초강대국(superpower)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말도 안되는 일

이건 당시의 사람들에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과학선도국가는 영국과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
과학분야에서 영국은 일류 국가,
미국은 그를 따라가는 이류 국가였다.


1939년까지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수가 이러한 사실을 잘 알려준다.

그러나 핵폭탄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있어서 일류국가인 영국과 이류국가인 미국의 처지는 똑같았다. 둘 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기에 어떤 방법이 좋은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실패의 힘

실패의 힘은 강력했다. 도전적 연구 개발 속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빠르게 실패한 미국은 막대한 예산을 소모했지만, 어떤 방법은 되고, 어떤 방법은 되지 않는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  원심분리법은 실패로 판명났지만, 실패를 각오한 덕분에 미국은 플루토늄 생산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반면, 기체확산법을 정답이라 믿고 모든 것을 올인한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서야 플루토늄 생산법이 핵강국으로 가는 정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류 과학선도국가의 비결

미국인들은 실패의 힘을 이용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야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는 영원할 수 없는 법. 미국이 영국을 추월했듯 다른나라도 미국의 과학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었다.

“미래에도 일류 과학선도국가로 남을 순 없을까?” 고민하던 한 과학자는 실패에 도전하는 바보들을 도와주는 조직을 상상했다.

전쟁이 끝나자, 실패를 총 지휘한 버네바 부시 박사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실패에 돈을 쏟아붓는 조직을 만들자는 보고서를 올린다. 이 보고서의 제언에 따라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창설되었고, 국립과학재단은 지금까지 24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실패에 도전하는 젊은 과학도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도 대학원 시절 국립과학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고, 훗날 구글을 탄생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에도 미국은 세계를 이끄는 일류 과학선도국가로 남아있다.


미지의 영역에 도달한 우리

우리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보며 성장했고, 그들이 이뤄온 것들이 답이라 생각하며 따라왔다. 그 결과 2017년 우리는 세계인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선진국 국민이 되면 편해질 줄 알았건만, 위기가 한 둘이 아니다. 기후위기, 인구위기, 안보위기, 경제위기 등전문가들은 수많은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경고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의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여러 선진국들도 이런 복합적 위기의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드디어 기존의 선진국들처럼 미지의 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여 2차 대전의 위기를 극복하고 초강대국이 된 미국처럼, 우리도 실패의 힘을 이용해야 위기를 극복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대한민국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이기에 실패는 여전히 두렵다. 그렇다면 단순히 두려움을 참고, 무시하기 보다는 실패의 의미를 다르게 바라본다면 어떨까?


실패는 당신을 강자로 만든다.

실패란 당신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실패를 경험해 고통스럽더라도 당신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면, 실패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 당신은 실패로 무엇이 되고, 무엇이 되지 않는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실패를 각오한 당신은 한걸음씩 나아가 결국 인류 최초로 정답을 찾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 당신은 그곳에서 자신만의 판을 짤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짜놓은 판에서 당신은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실패가 강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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