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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호 Jun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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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쓴 지 128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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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14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아야 한다. 내가 생각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생각을 안 하고 있을 때는 내가 생각을 안 하고 있구나 나만은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게 용서 된다. 무지도 용서가 된다.


나는 대체로 무지하다. 나는 말이 많지 않고 그나마 내뱉는 말조차 뼈가 없다. 그래도 나는 그게 뼈 없는 말이란 걸 알고는 있다. 뼈 없이도 말은 살아 누군가에게 가닿는다. 부딪는 순간은 푹신하다. 맥아리가 없다. 그것이 내 말의 특징일까.


글을 쓰고 나면(특히 시) 엄청나게 지친다. 독서 후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꾸 무언가를 일으켜서 부축을 하려고 한다. 지독히 흐물흐물한 내 상상 속 개체들. 마치 새벽, 대학가 변두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걷는, 그 중에 꼭 한 명쯤은 인사불성이 돼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간다. 얼른 그를 택시 태워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시가 영영 끝나기를 바란다.


난 시에서 언제나 진심을 숨기고 싶다. 그러려면, 그러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아야 한다. 거짓말처럼 다음날이 되면 멀쩡해질 숙취의 왕을 배웅하고 싶다. 또 다시 기꺼워하며 반겨 주기 위해서. 그러니까 내 모든 언어는 본질적으로 메타 언어이다. 그래야 한다. 


*


나는 숨기고 싶은 게 많다. 무언가 숨기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철저한 변명이 필요해진다. 나는 자주 변명을 한다. 변명을 변명하기도 하며 무언가 숨기고는 한다. 빈틈없는 궤변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실은 내가 숨기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숨기는 게 없다. 숨길 게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무슨 이론 따위가 따르지 않는다. 없으니까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 이제 당신은 슬슬 의심하기 시작하겠지. 그래서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그리고 동시에는 놓치기도 하겠지. 더 중요한 사실을. 그래서 ‘뭐가’ 있고 없다는 건지를. 결국 이게 내 의도이며 그 의도조차 곧 당신의 당신에 의해서 간파된다. 간파될 것이다.


그래서 난 계속 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옛날 셰에라자드처럼 언제나 핵심만을 남겨두는 채로. 사실 나는 숨기는 게 많다. 숨기는 게 없다는 사실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 사실은,


*


시에 대해 쓰고 싶지 않은데 시에 대해서만 쓰게 되는 이 의식은 뭘까. 


*


창밖으로 이불을 털 때면

이불을 털어대는 나와

이불을 털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내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그때의 동시 존재는 불안으로 납득될 수 있다.

그러니까 감정으로써.


*


아파트 후문을 빠져나가면 자전거 도로가 있다. 도로는 원래 기찻길이었다. 기찻길이었던 적이 있다. 지금에서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온통 돌무지에 철로 한 줄이 다였던. 그 길을 걸어본 적 있는 사람이? 나는 있다. 아빠와 동생과 나는 충무김밥 몇 줄을 포장해서 그 길을 걸었었다. 중간에서 점심을 먹었다. 기차는 오래 전 끊겼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새로운 포장 도로가 생겼다. 자전거 도로라고 했다. 산책로라고 했다. 시에서 대대적으로 조성한. 

기차가 지나던 터널을 통과할 때 이제는 색색의 조명이 켜진다. 하모(수달 캐릭터)가 기차를 타고 있는 평면 조형물도 설치되었다. 지날 때마다 뿌뿌- 기차 소리가 난다.


난 이렇듯, 그 길에 대해 쓰려면 쓸 수가 있다. 기차가 지나다니는 길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면서 동시에 하모(수달 캐릭터 혹은 진짜인 수달)가 지나다니는 길이면서 소리만 남은 기차가 지나다니는 길이면서 조명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그런 길. 동시적인 길. 평면적인 길. 레이어가 없는 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사건인, 

탈선 또한.


*


잘생긴 사람은 개성이 없다.

그래서 좋고


못생긴 사람은 개성들이 있다.


못쓴 시도 그렇다.


*


합평. 합평에 대해서도 한번 써 보고 싶다. 합평의 쉽지 않음. 합평의 유익과 해악. 합평의 촌스러움. 합평에 대한 합평. 그것의 필요성. 합평의 다른 말들; 이를테면 피드백, 감상, 소회 등. 합평에서의 규칙, 합평 전과 합평 후. 합평과 싸움. 합평과 밑천. 합평과 들통남. 그러니까 합평은 재밌다는 것. 합평과 부끄러움. 합평의 말투. 합평의 시 잘 읽었습니다. 합평의 감사합니다. 합평이 주는 자기만족. 합평과 캠 안 켜는 사람. 온라인 합평과 오프라인 합평. 합평과 여과. 합평과 여가. 합평의 역할분담. 합평과 조별과제? 합평은 타인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합평은 언어순화가 필요하다. 합평을 그럼 뭐라고 부르지? 합평과 빌런. 합평과 아웃사이더. 합평과 말더듬. 합평과 박찬호. 합평과 말버릇. 합평과 음. 합평과 그러니까. 합평과 조금은. 합평은 역시 어려워. 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뭐가 감사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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