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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니 Aug 10. 2023

나는 P다. (2 현실부부)





2


패키지 여행사 직원인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획하는 자유여행이 쉽지 않았다. 핑계인 듯 하지만 결혼준비로 이것저것 신경 쓰니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행을 준비하다 결국 두 손 두발 다 들고 남편에게 스위스 라는 목적지를 밝혔다.



나  : 오빠 못 하겠다.. 사실 신혼여행 우리 스위스로 갈거야 4박6일!

오빠: 스위스 좋지~! 근데 일정이 너무 짧은데 좀 더 길게는 안되나?

나  : 리턴일 변경 해볼게



숙소 예약과 여행 동선을 꼼꼼하게 체크하며 대차게 리드하는 스타일이 나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얼굴을 볼때마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말하고 나니 속이 너무나 시원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플랜. 같이 플랜을 짜야 된다는 생각에 머리도 덜 아프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 졌다. 걱정과 고민을 나누는 우린 이제 부부니깐! 사실 귀찮아서 남편에게 넘기는 것 같지만^ ^ 그리고 남편이 4박6일 스위스 여행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을 하진 않았지만 약간의 아쉽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나  : 항공기 스케쥴 상 매일 운항이 아니라서 4박6일 아니면 7박8일이네 … 오빠 그건 내가 회사에 말하기 좀 부담스러워 ..

오빠: 어쩔 수 없지 뭐. 그래 4박으로 갔다오자.



남편은 유럽을 가는데 6일 일정 인게 가장 아쉬워했다. 하지만 리턴일 변경과 내 휴가일정이 길지 않아서 현실적인 문제로 이번엔 아쉽게 갔다가 다음 번을 기약하기로 했다. 여행사 직원은 참 휴가 빼기가 쉽지 않다. 내가 일하던 곳이 유독 그랬을 지도 모르겠지만…


무사히 부산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날 드디어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 우리는 신혼여행의 숙제인 직계가족 선물을 사느라 면세점을 분주하게 쏘다녔다. 지갑을, 가방을, 반지를, 화장품을 … 유독 그 시절 뾰족했던 나는 시댁과 친정의 선물 가격을 저울질 했다. 조금 덜 줄 수도, 조금 더 줄 수도 있는데 그땐 그게 참 안되었다. 나의 쪼잔함이 극을 달했다. 지혜 따위 센스따윈 1도 없이 대놓고 말하는 나, 그리고 남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린 게이트 앞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했다. 그 날의 분위기로 남편과 나의 온도는 분명 달랐다.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난 따뜻한 아메리카노.

결국 그 꽁함은 서울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터졌다. 말로 하기 치사하고 부끄러웠는데 그 좁은 비행기 안에서 할 일 이라곤 자고 먹고 보는 것 밖에 없으니 사람이 더 옹졸해졌다.



나  : (약간의 눈물을 흘리며) 솔직히 부산집에 더 많이 한 것 같아.

오빠: (한 숨을 푹 내쉬며) 뭐 선물? 그것 때문에 그러는거야? 조금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있는거지 야니야…그걸 어떻게 딱 맞추니… 제발..

나  : 아니야 아니라고!!

(그냥 알았어 하며 보듬어 주길 바랬는데 남편이 그렇게 나오니 더 서글퍼졌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이성적으로 나를 대한다. 계산기를 꺼내다니… 감정에 치우치는 나와 달리 남편은 극사실주의에 이성적이다. )

오빠: (결국 휴대폰 계산기를 꺼내 계산기를 두드린다. 툭닥툭닥!) 이 봐!



근데 이게 왠일… 시댁보다 더 비싼 금액으로 친정 선물을 샀던 것이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지만 안전벨트 꽉 채워진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 속 내가 피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내 얼굴만한 오른쪽 창문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부끄럽긴 했지만 요동치는 내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진 않았다. 그때 나의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그 상황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그렇게 남편은 눈을 감았고 억지로 자는 듯 했다. 비행기 안은 어두워졌고 모두가 잠들 듯 조용한 그 때,  난 승무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나 : 컵라면 하나 주세요.



스트레스 받으면 먹고 풀어야 하는 나로선 이대로 잠도 안오고 먹으며 풀어야 했다. 나름 나지막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 갑자기 옆에서 자던 남편이 눈을 뜬다. 그리고 어이없이 피식 웃는다. 속도 없는 아이 마냥 이렇게 자기를 화나고 진빠지게 해놓고 먹을게 입에 들어가냐는 식의 눈빛을 보낸다. 그렇든가 말던가 난 예의상 한마디 건냈다.



나 : (난 아무일 없었냐는 듯 해맑게) 오빠도 먹을래?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 하나 더 주세요!

승무원: 알겠습니다 두개 준비 해 드릴 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라면은 참을 수 없지. 이렇게 우리의 살얼음 같던 분위기는 그 날의 뜨거운 컵라면이 녹혀 줬다. 그날의 얼음은 녹았지만 아직 우리에게 시작도 하지 않은 어마어마한 빙산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 인생 참 호락호락하지 않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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