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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4화/25화)

14. 그분

14. 그분      


 분명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 그땐 전혀 예상을 못 한 일이었어요. 공용도로도 누군가가 청소를 할 테고, 그 누군가는 출근시간 차량 통행이 많아지기 전, 도로를 청소하며 회사 앞을 지나간다는 사실을요. 


 공용도로를 청소하는 특수차량이 천천히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어요. 왜, 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소설 등의 창작된 세계 속에서 주인공이 난관에 처했을 때, 그걸 뚫고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존재가 종종 등장하곤 하잖아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신적인 존재 또는 특별한 물건인 경우가 많죠. 그날은 도로 청소차가 저에게 그런 존재였어요.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그분의 모습, 그 자체였어요. 눈앞에 보이는 형체가 점점 커져갈수록 꼭 모은 두 손엔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어요. 차량 옆면에 달린 강하게 회전하는 솔과 진공 흡입구가 시야에 들어왔을 땐 성공을 확신했고요.

     

 땅콩이의 잔해가 이미 화물차의 바퀴에 의해 많이 다져진 상태라, 힘차게 회전하는 솔이 한번 쓸기만 해도 라면 건더기 마냥 작은 알갱이들로 분해되면서, 청소차량 안으로 흡입될 테니까요. 세상에 남은 땅콩이의 흔적들을 말끔하게 치워 줄 도로 청소차는, 그 순간 저에겐 현신한 구세주나 마찬가지였어요. 


 옆면에 달려 있는 원형의 굵은 솔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건 보았지만, 어떻게 청소가 되는지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갑자기 이른 새벽부터 운전하시느라 피곤하실 기사님이 걱정되더군요. 기사님이 순간 집중력을 잃고 코스를 살짝 벗어나시기라도 한다면, 어처구니없게 실패할 수도 있었거든요. 차량이 천천히 땅콩이의 잔해에 다가가는 동안 운전하고 있을 기사님께 '기사님! 지금은 힘을 내셔야 할 때예요!'라고 하면서 마음속으로 응원까지 했어요. 기사님께 제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아주 부드럽게, 단 한 번의 지나감으로, 땅콩이의 남은 흔적들을 싹 쓸어 담아 가시더군요. 할 일을 마치고 유유히 떠나는 도로 청소차량의 뒷모습은 동화 속에서 마왕성의 괴물을 물리치고 떠나는 용사의 그것과도 같았어요.



 결국 성공이었어요. 밤새 왜 그 긴 시간 동안 혼자서 속을 끓였는지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결국 무언가 큰일을 해낸 기분이 들었어요. 경비실 문을 시원하게 열고 나오면서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어요. 바로 깨끗이 치워졌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지더군요. 빙그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땅콩이의 잔해가 있던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밤새 '긴장했다.', '흥분했다!', '좌절했다….'를 파도타기 마냥 반복한 탓인지 무언가 어색하고 제 발걸음이 아닌 듯한 낯선 감각이 느껴지더군요. 분명 제가 걷는데 제가 걷는 느낌은 아닌, 묘한 감각이었어요. 누가 보았다면 걸음걸이가 어색해 만취한 사람이 걷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몰라요. 


 겨우 근처에 다가가 몇 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선 다음, 목을 길게 빼내 남은 흔적이 있는지 확인했어요. 약간의 핏자국과 작은 뼛조각들만 보일 듯 말 듯 남아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치워진 상태였어요. 그런데 순간 "어후!" 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나올 정도로 악취가 콧속으로 밀려들어 오더라고요. 처음 맡아보는 고약한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 해질 지경이었어요. 


 분명 땅콩이가 죽어가며 남긴 냄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땅콩이는 이쁘고 귀여운 데다 애교도 많은 고양이였는데, 속에는 이런 악취를 감추고 있었다는 것에 뭔가 배신이나 사기를 당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악취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해봤어요. 


 땅콩이도 역시 먹이가 필요한 짐승의 본능뿐이었고 사람에게 호감을 살 만한 형상을 갖추고 행동을 하면서, 그동안 제 등골을 뽑아먹었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저 제가 익히 알던 '도둑고양이'였을 뿐이라고요. 제가 아둔한 탓에 세상 사람들에게 당하며 살아온 것도 모자라, 길에서 태어난 영악한 짐승에게 그동안 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헛웃음이 조금 나왔어요.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나니, 마치 저를 지켜보던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미지의 힘으로 저에게 도움을 준 것만 같았어요.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신의 존재였어요. 밤새 긴 짜증의 시간이 어쩌면 신께서 가련한 저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내린 시험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긴 세월을 무신론자로 지내다가 기적처럼 골치 아픈 상황이 해결되는 걸 보고 나선, '이번 참에 종교를 하나 가져볼까?' 하면서 종교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제 삶 속에 일어난 해피엔딩을 자축하며 경비실로 돌아갔어요. 그러면서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땅콩이와 관련된 모든 걱정거리가 끝났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일 뿐이었죠. 그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는, 정작 저를 위한 진짜 시험을 그때 막 신나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신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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