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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6화/25화)

16. 대화

16. 대화      


 직원들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항상 온화하고 친절했어요. 회사 자체가 자동차 서비스 센터라 그런지 고객들에게 보이던 친절과 미소가, 고객이 아닌 사람을 대할 때도 습관처럼 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런 점은 저도 마찬가지였죠. 경비실에 오신 최 과장님 역시 부담 없어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먼저 인사를 건네시더군요.      


"문 주임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 네,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용역 직원들은 통상 "주임"으로 불렸어요. 과장님은 저보다 젊은 사람이었지만, 회사의 중간 관리자급이니 당연히 저에겐 어려운 분이었죠. 게다가 지난 퇴근길의 사건도 있어서 그런지, 양반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는 노비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답하게 되었어요.


"주임님 담배 피우시죠? 지금 바쁘신 일 없으시면 잠깐 말씀 좀 나눌까 해서요."


"네! 네, 피웁니다. 지금은 바쁜 일 없습니다."


 최 과장님과 같이 흡연구역으로 가면서 전 뒤따라 걸으려 했는데, 나란히 걸으려 하시더군요.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지는 이미 알고는 있었어요. 지난 퇴근길에 저의 이상행동을 많은 직원들이 출근하면서 보았을 테고, 당연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게 뻔했죠. 흡연구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제 이 일도 끝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최 과장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시더군요.     


"밤새 너무 고생 많으세요. 일하시면서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네,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직원분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왠지 저의 속내를 알아보려는 것 같아, 전 형식적이고 무난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 대답을 들은 최 과장님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무언가를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요. 분명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최 과장님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순간이 참 길게 느껴졌어요. 잠시 뒤, 최 과장님이 물으시더군요.


"밤에 혼자 계실 때… 어려운 고객님도 종종 오시곤 하시죠?"


"아, 아닙니다. 대부분 매너 좋으십니다."


"다 알고 있어요. 낮에 저희들도 고객님께 시달리면 속으로 삭여야 되고 겉으로 티도 못 내고, 그런 일들이 많아요. 그래도 직원들끼리는 서로 위로도 해주고, 같이 밥도 먹고, 술자리도 갖고 하면서 풀기도 하지만 주임님은 혼자 감당하시느라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더라고요. 퇴근하실 때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있으셨다고 직원들한테 이야기를 들었어요."


 머릿속으로 적절히 임기응변할 말을 찾으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더군요. 제가 그날 근무 중 유별난 고객에게 무척 시달려서 그랬던 것이라 여기고 있는 듯했어요. 저한테는 구체적인 이유나 사정을 묻지도 않고요. 전 그저 마르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우물쭈물 서 있을 수밖에 없었죠. 최 과장님이 다시 걱정이 담긴 어조로 이야기하셨어요.     


"저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앞으로 고객님이 비상식적으로 모욕적인 말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시면, 그거 혼자 참지 마시고 저한테 꼭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평소에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이야기 듣고 저도 마음이 많이 안 좋았어요."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들도 다 주임님 친절하시고 열심히 일해주셔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예상과 다른 대화의 흐름에 어려워하는 몸짓과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속으로는 '안 그만둬도 되나 보다.'라는 계산도 서더군요. 최 과장님은 저보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정신적으로는 더 어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비록 저보다 짧은 세월을 살았더라도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생각이 깊다면 어른의 느낌이 나기도 하니까요. 전 재차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깊숙이 한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경비실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언제나 그래 왔듯이 제 삶의 문제가 상쾌하게 끝나는 법은 없었죠. 최 과장님이 저를 얼어붙게 만드는 마지막 질문을 하셨거든요.


"아! 저… 혹시 야간에 인근 회사에서 고양이가 자주 넘어오나요?"


"네! 네?"


 놀란 목소리로 대답함과 동시에 "고양이"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파고들어 메아리가 되더군요. 이미 알면서 물어보는 건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죠.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서 빠져나갈 아무런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고,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굴러다니기 시작했어요. 고양이가 자주 넘어와서 보는 데로 쫓아내고 있다고 해야 할지, 자주 넘어오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려던 순간 최 과장님이 이야기하시더군요. 


"야간에 고양이가 넘어오거나 그러면 이쪽에 피해 없게, 주임님이 적절히 조치해 주세요."


"네? 적절한 조치라면 어떻게…."


"그건 주임님 선택에 맡길게요. 야간 상황을 저보다 더 잘 아시니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잠시 최 과장님이 절 쳐다보셨어요. 무언가 말을 꺼내기 전의 머뭇거림이 최 과장님에게서 느껴지고 있었어요. 전 잠시 불안했지만 최 과장님이 절 안심시키는 말을 곧 건네시더군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 문제 될 것 없어요. 직원들한테도 제가 알아서 이야기해놓을게요."


"네… 네, 감사합니다."


"네, 그럼 다음에 뵐게요."


"네, 알겠습니다."


 최 과장님이 저와 땅콩이의 일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더군요. 어찌 되었든 해고를 피할 수 없겠구나 싶었는데, 계속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죠. 퇴근길에 있었던 저의 이상행동에 관한 일도, 유야무야 넘어갈 것 같았고요. 제 발목을 잡을 것 같았던 땅콩이도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여서, 그저 냄새 문제만 해결하면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 역시 제 생각일 뿐이었죠. 냄새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거든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도록 냄새는 불규칙적으로 그리고 기습적으로 끊임없이 절 찾아왔어요. 큰 병에 걸려도 일을 관둬야 했기 때문에 '일은 할 수 있으니, 심각한 건 아니겠지….'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버텼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 문제로 인해 쌓여가는 스트레스가 점점 심각해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냄새가 나는지 수시로 코에 손을 갖다 대 확인하게 되고, 음식 냄새 같은 다른 냄새를 맡게 될 때도 문제의 그 냄새인지 분간하느라 신경을 계속 쓰게 되었고요. 결국 여러 번의 망설임 끝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이라도 받아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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