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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8화/25화)

18. 종교적 치유

18. 종교적 치유   

   

 종교활동은 군 시절에 경험해 본 게 전부였어요. 법명도 세례명도 훈련소에서 다 받았죠. 기억은 안 나지만 법명이든 세례명이든 하나로 통일하라면 전 "초코파이"라고 할 수 있어요. 훈련소 시절엔 초코파이를 한 개 더 준다면 일주일마다 개종도 가능했으니까요.      


 군 시절 종교활동의 목적이 초코파이였다면, 중년의 나이에 다시 시작해 본 종교활동의 목적은 '냄새의 치유'였어요. 특정한 종교단체 한곳만을 가본 것은 아니었어요. 또 중간에 개종을 했었거든요. 물론 군 시절처럼 매주 개종한 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면 발길을 끊고 다른 종교의 문을 두드렸어요. 나이도 든 데다, 긴 세월을 혼자 지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새로운 환경엔 쉽게 적응하기가 어렵더군요. 결국 교회의 예배, 성당의 미사, 절의 법회에 전부 참석해 보게 되었죠. 모두 진행과정도 낯설고 눈치껏 주변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게 힘든 건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종교적인 공간에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마음이 왠지 정화되면서 평화가 찾아오는 느낌은 조금 들더군요. 하지만 저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정화나 평화가 아니었어요. 오로지 냄새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이었죠.


 사실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저의 특별한 사연을 말할지 막막했어요. 할 이야기란 게 고작 "죽은 고양이 때문에 냄새나는데요?"란 말밖에 없기도 했고요. 애초에 제가 기대했던 건, 성직자분이 저를 자마자 제가 받고 있는 고통을 한눈에 알아봐 주시는 거였어요. 마귀든, 악령이든, 저주받은 영혼이든 바로 없애줄 수 있는 퇴마술 같은 것이 저에겐 필요했거든요. 맞아요. 전 냄새의 정체를 땅콩이의 영혼이 뿌려대는 '저주'로 보고 있었어요. 저에게 고양이 귀신에 씐 상태 즉, "귀신 들림"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판단한 것이었죠. 세 곳의 종교 단체 중 기대가 가장 컸던 건 교회였어요. 왜냐하면 엑소시즘을 다루는 영화 속에서 압도적으로 목사님들이 자주 등장했으니까요.      


 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였어요. 비치된 성경책을 가져다 보면서 일어났다, 앉았다, 노래 불렀다, 기도했다, 정신없더군요. 그러다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처음 온 사람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셨어요. 다행히 저 말고 서너 명 더 있었기 망정이지, 저 혼자였으면 남은 정신마저 우주 어딘가로 날려버릴 뻔했죠. 일종의 환영행사로 다른 신도분들이 그 상태에서 노래를 불러주시더군요. 전 그저 빨리 자리에 앉고만 싶었어요. 마치 온 세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기분이 들어서 호흡곤란이 올 정도였거든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저에겐 힘든 일이었어요. 


 예배가 다 끝나고 나선, 잠시 목사님과 상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신도 등록을 위해 이것저것 작성하시며 저에 대해 물어보시더군요. 직업과 사는 곳, 이곳에 오게 된 동기, 이곳을 알게 된 계기 같은 것들이었어요. 젊은 목사님의 질문에 전 경비원을 하고 있다는 것과 여관에 산다는 것, 그리고 세상살이가 힘들어 심적으로 기댈 곳을 찾아 다가 교회에 방문하게 되었다고 대답했어요. 또 주변의 소개를 통해 교회를 알게 된 건 아니고, 길을 가다가 물티슈랑 교회 예배시간이 적힌 팸플릿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걸 보고 찾아왔다고 했고요. 제 답변에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으시며 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아! 그러시군요. 잘 찾아오셨어요. 분명 성령의 인도가 이런 인연을 만들어주신 모양이네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저도 종교활동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고 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정말 잘 오셨어요. 저 그런데 평소에 '다나까'로 끝나는 말투를 사용하시나 봐요."


"네, 제가 사적인 대화를 잘 안 하는 데다, 직업이 경비원이다 보니 고객님 응대할 때 말투가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아! 그러실 수 있겠네요. 전 혹시 경비원 하시기 전에 직업군인을 하셨던 건 아닌가 했어요. 교회에 몇 분 계시거든요."


"네, 경비원 중엔 그런 분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이쪽 계통이 직업 군인이나 경찰, 소방 공무원 출신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전 그냥 일반 사병으로 전역했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제가 기회가 되면 경비원 하시는 신도분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대부분 연세는 많으시지만 서로 직업이 같으시니까 말도 잘 통하고 교회 생활에 도움도 되실 거예요. 그럼 궁금하신 점은 따로 없으신가요?"


 전 말을 꺼내볼까 말까 망설였어요. 악령이나, 저주나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꺼냈다간 순식간에 문제 있는 신도가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좀 에둘러서 물어보았어요.      


"특별히 궁금한 사항은 없습니다. 그런데 전 교회와 그동안 인연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교회에서 막 엑소시즘 같은…. 그러니까 퇴마의식도 하고 그러면서 사람에게 씐 악령 퇴치, 이런 것도 해주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예배에 참석해 보니까 그런 분위기는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제가 말을 마치자마자 젊은 목사님은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몇 초간 보시더군요. 그러더니 크게 "하하하"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정말 유쾌하신 분이세요. 앞으로 교회도 꾸준히 다니시고, 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헌금에도 마음을 많이 담으시면 저절로 악한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겁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민망해서 저도 목사님을 따라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죠. 덕분에 전 유쾌한 사람이 되었고요. 젊은 목사님은 성경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주면서, 자신이 저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란 걸 드러내려고 하는 듯해 보였어요. 아마 제가 자신보다 나이가 든 사람이라 스스로 위엄을 세워보려고 했던 건진 몰라도, 시종일관 말투도 그렇고 말하면서 하는 손짓까지 무언가 넘치는 느낌을 받았어요. 할아버지 경비원분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앞에 앉은 젊은 목사님의 자리에 할아버지 경비원분을 앉혀 놓았다면 더 어울렸을 것 같았거든요. 넘치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도 이뤄졌을 것이고, 퇴마술에 대한 이야기도 부담 없이 꺼낼 수 있었을 테고요. 할아버지 경비원분이 비록 멋도, 감동도, 유머도 없으시긴 하지만 넘치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는 풍기셨으니까요.


 사람이 난치병으로 현대의학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종종 정체불명의 민간요법에도 희망을 걸어보듯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상상했던 종교적인 치유는, 큰스님이 법문 중 저를 보시고 창을 던지듯 주장자(큰스님이 법문 중 들고 있는 지팡이)를 저에게 날리시며 "이 마귀가 어딜 법당에 발을 들여놓느냐!"라고 일괄하시면 냄새의 저주가 풀리거나, 신부님이 강론 중 저를 보시고 하늘로 붕 떠서 성호를 그으시며 "저주받은 영혼은 연옥으로 가 그 죄를 씻거라!"라고 말씀하시면 냄새의 저주에서 해방되거나, 설교 중이시던 목사님이 저를 보시고 그 자리에서 360도 회전과 동시에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를 표창처럼 던지시며 "사탄은 어서 지옥으로 물러가라!"라고 외치시면 냄새의 저주가 사라지는 것들이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혼자 지내면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 거였죠. 유일한 취미가 영화를 보는 것이었는데, 역시 영화도 허구의 세계라 현실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엑소시즘과 관련해서는 과장이 많았던 거였죠. 


 교회에 몇 번 더 나가보다, 아무런 도움이 안 돼서 결국 발길을 끊었어요. 그 뒤에 차례로 성당과 절에 방문해 봤지만 결과는 교회와 마찬가지였고요. 그래도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은 건 있었어요.


 성당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고해실이었어요. 제가 일하는 경비실 정도 크기의 고해실이란 작은 공간에서, 고해성사의 절차에 따라 자신의 죄에 대해 고백하는 장소라고 하더군요. 물론 제가 원하는 주술적인 상담을 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아 보였어요. 만약 가능했어도 보나 마나 신경 정신과 상담처럼 소극적이자 방어적인 제 모습이 나왔을 것이고요. 전 그저 제가 딱 원하는 것만 주고, 받기를 원했거든요. 그래도 고해실의 존재는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필요하게 되면, 그 안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절의 법회 시간 중 기억에 남았던 건, 굉장히 법문이 지루하다고 느끼던 중에 큰스님이 갑자기 돈 들여 절에 오지 않는 게 가장 좋다고 말씀하셨던 거였어요. 전 순간 집중하게 되더군요. 차비 들이고 시간 버리면서 오지 말고 자신이 '참된 나'를 찾으면 되는 거라고 하셨어요. 참된 자신을 찾으면 그 크기는 상관없다고요. 작은 부처든 큰 부처든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그 말을 듣고 전 속으로 약간의 반기를 들었어요. '아니 그럼, 자신의 참된 나가 악당이면 악당으로 살아가라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큰 스님이 텔레파시로 제 생각을 읽으셨던 건지, 그 뒤에 '참된 나'를 찾으면 자신도 깨달음으로 인해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주변에 공덕을 쌓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조금 어려운 말이었지만, 큰 스님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냄새가 정말 땅콩이의 영혼과 관련이 있는지 종교활동을 통해서 확인은 못했지만, 여전히 다른 원인을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억울한 땅콩이의 영혼이 뿌리는 냄새의 저주, 그게 제가 유추한 냄새의 근원이었죠. 땅콩이도 많이 속상하고 배고픈 상태로 죽었을 걸 생각하니, 분명 그 영혼에 한이 맺혀있을 게 뻔했어요. 대중적인 종교에서 주술적인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는 결론만 얻어서 실망을 조금 했지만, 이 영혼의 저주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딱 한 가지의 길이 남아있었어요. 바로 가장 오래된 종교적 치유의 노하우를 가진 "샤머니즘"이 그것이었죠. 제가 사는 지역엔 유명한 무속인의 집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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