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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9화/25화)

19. 무속인

19. 무속인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무속인이었어요. 샤머니즘이 전통적으로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걸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최후의 방법으로 고려하고 있었죠. 역시 인기 있는 곳이라 예약을 한 뒤, 한 달의 기다림 끝에야 무속인을 만날 수 있었어요.


 무속인의 집은 멀리서 보면 큰 사찰에 딸린 작은 암자처럼 보이는 개량 한옥이었어요. 문 옆에 달린 인터폰을 누르고 예약하고 왔다고 말하자 바로 문을 열어주시더군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딸인지, 제자인지, 직원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성분이 절 무속인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셨어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곱게 단장한 채 앉아있는 무속인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속인이 먼저 뾰족한 입을 오물거리며 날카로운 한마디를 던지시더군요.  

     

"뭐가 단단히 씌었구먼!"

     

"네? 네!"

     

 전 내심 놀라면서도 '정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문제를 단번에 알아보셨으니까요. 제가 찾던 바로 그것이었어요. 무속인은 눈을 치켜뜬 상태로 절 계속 노려보며 말씀하셨어요.


"응. 거기 앉아."

     

 짧은 명령조에 위압감까지 느껴져서, 마치 육군 훈련소 교관이 눈앞에 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그래서 무속인이 방석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을 때, 양반다리로 편하게 앉으려다가 엉거주춤 자세를 바꿔 무릎을 꿇고 앉았죠.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요. 진한 화장 때문인지 스님이나 신부님, 목사님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도 강렬했어요. 제가 앉자마자 다시 톡 쏘는 듯한 한마디의 말이 날아왔어요.


"죄를 졌구먼!"

      

"네? 네!"

     

"뭘 계속 놀라긴 놀래. 가만있어 봐!"


 무속인은 갑자기 부채를 펴 들고 눈을 감은 뒤, 한참 무언가를 흥얼거리시더군요. 전 손이라도 모은 뒤 빌어야 하나 갈등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제 숨소리도 크게 날까 봐, 의식적으로 숨도 가늘게 내쉬고 있었고요. 알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거든요. 물론 방 안의 분위기와 기분 탓이었겠지만요. 무속인은 한참을 그러고 있다 부채를 '탁!' 하는 소리가 나게 접고는 이야기하셨어요.     


"웬 원귀가 아주 씌다 못해 깊게 박혀있네. 이거 굿 아니면 힘들 것 같은데…."


"구… 굿, 굿 말씀입니까! 굿이라면 비용이 얼마나…?"

 

 전 굿이란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굿은 무조건 비싸니까요. 그래서 원래 목적은 뒤로하고 비용에 대한 걱정을 먼저 하게 되더라고요. 이건 흡사 충치 치료 비용을 예상하고 치과에 갔다가,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당황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죠. 그래서 갑자기 대화의 주제가 가격 흥정이 되어버렸어요. '원귀'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듣지 못했고, 저 역시 땅콩이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 상태에서요. 나중에는 제가 여관에 살면서 경비원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하소연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무속인이 치솟는 물가와 굿에 필요한 상차림 비용, 그에 따른 인건비를 들먹이며 요지부동하시다가, 다른 제안을 한 가지 하시더군요.


"그럼 사정이 딱하니 부적으로라도 어떻게 해봐야겠네."


"부적은 얼마나… 그런데 부적이 굿하고 효과가 많이 다릅니까?"


"굿을 해야 확실히 뿌리를 뽑을 수 있지. 심사 뒤틀린 원귀는 살살 달래야 떨어지는 거야. 그런데 부적은 반반이야. 그래서 떨어질 수도 있고, 안 떨어질 수도 있어. 효험이 생기려면 시간도 더 걸리고, 아무래도 굿보다는 정성이 반도 안 들어가서…. 한번 할 때, 확실히 뿌리를 뽑아야 편할 텐데 사정이 딱하다니…. 그럼 결정해! 굿하고 부적, 어떤 거?"


"네! 그럼 부적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원귀는 어떤 종류입니까? 혹시 고양이 같은 짐승도 그런 게 될 수 있는 건지…."

     

"원귀이라면 그런 줄 알 것이지 뭘 그렇게 물어봐. 하여튼 그게 떨어져 나가야 길이 보이게 될 거야. 그러니 부적이나 몸에 잘 지니고 다니면 돼. 독한 원귀라 부적은 내가 치성을 드린 다음 써야 되니 삼일 뒤에 와서 찾아가."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적이라 해도 한 달 급여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죠. 그래도 삼일 뒤, 완성된 부적을 찾아 몸에 지니고 다니니 마음은 든든해지더라고요. 그만큼 큰돈을 썼으니까요. 하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제가 바보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효과는 전혀 없다 못해 더 심해졌거든요. 무리를 해서라도 굿을 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었어요. 어쨌든 절 보자마자 문제를 단번에 간파한 건, 무속인이 유일했으니까요. 하지만 굿에 드는 비용은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부담이어서 시간을 돌려도 선택하기 어려웠을 게 뻔했어요. 굿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커서 비상금을 깰까도 갈등했었죠. 하지만 그 돈은 제가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 쓸 돈이라 그렇게는 할 수는 없었어요.  


 더 이상 기댈 곳이나 해결책이 안 보이더군요. 안 사던 복권까지 사면서 '복권에 당첨되면 굿부터 해야지.'라고 또 다른 막연한 기적을 기대하기도 했고요. 현실적으로는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무기력한 투병 아닌 투병을 하는 동안 변화가 한 가지 생겼어요. 인근에 대규모 신규 서비스 센터가 건립되면서 일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그저 앉아만 있는 외로운 시간이 늘어난 것이었죠. 냄새 문제로도 지쳐가는 상태에서 일 없이 가만히 보내는 시간만 많아지니, 하루하루가 지겨워지더군요. 순찰도 귀찮아지고 근무 시간만 대충 때우려는 마음도 커져갔고요. 언제나 출근함과 동시에 벽시계를 자주 확인하며 퇴근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렇게 날짜만 보내던 어느 날, 출근을 해보니 용역회사에서 보낸 우편물 하나가 경비실에 도착해 있더군요. 봉투를 열어 안에 들어있던 문서를 꺼내 확인해 보았죠.

     

"근로계약 만료 통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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