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은희 씀
-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을 읽고
예술가가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것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날 내버려 둬 달라는 외침뿐이다.
언제고 읽어야지 하고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소설을 단숨에, 그야말로 단박에 읽어 내려갔다. 박완서 전집을 읽고 있던 중간이어서였을까. 이 두 분이 좋은 친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디 이자크 디네센의 책이 더 없다 괜히 온라인 서점을 뒤적이기도 하고.
해마다 교사의 일 년 주기에서 가을이 오면 한 번씩 회한의 감정이랄까 그런 아쉽고 허전한 마음이 든다. 진도를 맞춰야 하고, 시험문제는 민원을 피해야 하고, 내용보다는 형식으로 숱한 지적을 당하고, 아, 물론 내용으로도 지적을 당하면서 마음이 너덜너덜 해 질 때. 잘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마음에 맞게 가르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이 너무 명료해서 마음이 쓸쓸하곤 하다.
교과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국어교과 동료들은 다들 열심이었고, 심지어 완벽주의자에 가까웠지만 그 완벽주의의 방향성이나 색깔이 나와 맞지 않아 늘 곤욕스러웠다. 어쩌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세상의 열정과 뜨거운 관심은 애초에 나와 색깔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
오늘 수업을 하면서 모처럼 논설문을 가르치면서 단락별로 핵심 단어 구절에 형광색 펜을 칠하고, 가장 짧게 요약하기를 시키면서 성적과 관계없이 삶의 기본 기술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느 직장엘 가도 기본적인 회사 업무 매뉴얼을 이해하고 그대로 따라야 하는데 그 조차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지금 이 활동은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한 사람씩 돌아다니면서 봐 주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똑같은 설명을 30명 정원에 6명 정도는 차근차근 다시 설명해 주고 직접 같이 해야 이해하는 정도의 학생이 있었다. 이 아이들이 평소에 그냥 묻혀서 지나가듯. 바람이 부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수업에 앉아 있는 아이들. 그렇게 멍하니 있다 잠드는 아이들. 고등학교 가면 3년을 고문받듯 수업시간을 견뎌야 할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짠하다.
중학생들이라 아직은 순수하니 선생님 말씀을 듣는 중이다. 그래서 학기말에 연극수업을 도전해도 충분히 따라올 정도의 열정과 교사와의 친밀감이 조금씩 쌓여있지 싶다. 그럼에도 내가 잘하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 아이들의 성장에 그리도 중요하다는 교사로서 내가 잘하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외적으로는 느낄 기회가 없다. 수업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고 게으름을 부리기도 하고, 학급 아이들 중에서 정서적 필요가 있는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펴서 공황장애를 잘 넘기게 도와주고 어찌 저찌 혼자만 아는 위기상황들을 넘겨도 그닥 자기 효능감을 외적으로 느낄 수가 없는 것이 교육의 현장이다.
바베트의 만찬에 그런 삶을 사는 여인 셋이 나온다. 멋진 남성의 구애를 뿌리치고, 오페라계의 디바가 될 기회를 뿌리치고,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식당의 요리사의 자긍심을 숨겨두고 노르웨이의 찬바람 가득 부는 절벽 옆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고 늙고 외로운 이웃들을 격려하면 살아가고 늙어가는 두 여자와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은둔하듯, 도피하듯 그 두 여자의 가정부가 되어 소박한 요리만을 하며 살아가는 바베트.
그러다 복권에 당첨이 된 바베트가 그녀의 당첨금 전부를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는 데 그야말로 탕진 및 소진해 버린다. 두 여자의 아버지인 신부님을 기념하는 날에 마을 사람들의 차가워진 관계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바베트의 만찬! 한창 도덕적인 가면이 우세할 때의 나라면 그녀들의 그 고결한 삶이 아름답다고 찬양했을 법한데... 정말. 멋진 청년의 구애에 나라면 홀라당 넘어가서 화려한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음악의 도시에 가서 무대 중앙에서 최고의 솜씨를 뽐내는 삶에 정말 망설임 없이 홀라당 넘어갔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이젠 더 크다. 아이고 아까워라. 하는 아쉬움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당신 참 멋져요 하고 아낌없이 엄지 척할 수 있는 이는 바로 바베트!
그녀들과 사는 세월 내내 그녀들이 하라는 소박한 요리만 하던 바베트는 얼마나 갑갑했을까? 복권 당첨금을 아낌없이 탕진하면서 자신의 최고의 요리를 내 보이고 그 요리를 즐기는 이웃을 보면서 그녀는 얼마나 만족스러웠을까?
여전히 지질하게도 나는 제도나 동료나 육아 탓을 하면서 소박하고, 맛없는 요리만 하는 바베트처럼 지내는 것 같아 사실은 이 가을에도 많이 씁쓸하고 서글프다.
언제고 기회가 오기만 하면 바베트처럼 나의 숨겨진 요리 솜씨를 다 발휘해서 최고의 요리로 우리 학생들을 가르칠 거야라고 칼을 갉고 싶지만 기실 그러하지도 않고.
대부분은 지루하고, 대부분은 고루하고, 대부분은 하품이 나오는 수업이지만 바베트의 숨겨둔 꿈처럼 나는 꿈을 꾸고 싶다. 지금도 이렇게 여러 가지로 얽매인 상태이면서 그 교사별 자율도 얽어 맨 자율로 만들고 싶어 하는 시도가 보이지만 그래도 나는 날 좀 내버려 둬라고 외치고 싶다.
전문가인지, 성직자인지는 모르겠고. 아주 가끔 드문 순간이긴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 마음이 파릇파릇 살아나고, 아이들이 쓴 글에서 영혼이 살아난 것을 느끼고, 바닥까지 내려갔던 절망감에서 이겨낸 희망을 볼 때 분명히 나는 예술가인 것은 확실하지 싶다.
예술가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교사를 내버려 두는 학교를, 우리나라 교육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