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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Apr 03. 2022

작가를 짓고, 사람을 짓고, 나를 지어가는 나날들.

함은희 씀

작가를 짓다(문호와 명작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손) / 최동민 / 민음사 / 2018.05.

문학이었죠. 제가 돌본 이들의 이름과 삶, 그것이 진짜 문학이었습니다.

-안톤 체호프


  지난겨울 어떤 경로를 거쳐서 만나게 된 책인지 모르겠지만, 담백한 표지와 다르게 불꽃같은 열정이 타오르는 이 책을 읽고 아주 찰나의 순간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문학을 하겠다거나 국어교사를 하겠다는 불타는 열정보다는 2순위 3순위의 결정이었고, 늘 하던 대로 결정 이후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언제 그런 고민이 있었냐는 듯이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이라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찌 되었거나 문학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것은 나 같은 민감한 사람에게는 큰 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가를 지은(영어로 build라고도 make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전자의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상황과 배경, 그리고 그 작가의 곁에 있는, 그 작가를 지어 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짧은 문장과 압축적인 단편소설로 유명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뒤에는 그의 소설의 문장을 가차 없이 쳐내고 잘라버린 편집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며,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뿐 아니라 미국에서 조차 불온서적으로 금지당하고 영국에서야 그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작가의 삶을 이어갔다는 이야기며, 조지 오웰이 버마에서 식민지를 점령한 군인으로서 사형수를 감시하던 이로서 그의 민감한 영혼이 어떻게 아팠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문학작품으로 만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개인과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해준 벗들의 이야기가 있다.


  교사로 살아가면서 가끔 문학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전업작가를 꿈꾸는 아이들도 정말 드물게 있고, 다른 직업을 꿈꾸지만 그 직업을 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예술분야와 달리 소위 예체능 분야가 학원가의 수업과 엄청난 사교육비로 길을 준비하는 것과 달리, 문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소수이고 그나마도 그걸로 어떻게 먹고살아라는 시선에 묻혀 거의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 진로이다. 그럼에도 그 아이들과 문학수업을 하고 그들이 써낸 작품에 대한 비평을 읽을 때면 나야말로 꿈꾸는 것처럼 행복하곤 하다.


  그리고 문학적 재능까지는 아니어도 시의 마음, 소설의 마음과 제대로 만난 아이들이 남기는 글을 읽을 때면 나는 정말 하늘을 날 것 같다는 표현에 딱 맞는 기쁨을 누린다. 이번 주도 그러했다. 교과서 순서대로 가르친 소설과 시를 가지고 아이들과 대화하고 문학 읽기의 과정을 가르치고 나서 각자의 비평글을 쓰게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으로 가지고 있던 마음, 자기 안의 날것의 마음. 솔직하고 숨김없는 마음들을 표현했고, 한 편, 한 편 읽어가는 데 마음이 찡했다.


  작가를 짓다(최동민)를 읽으면서 작가들 중 누구라도 한 사람은 고생을 좀 덜 하든지, 아니면 보통 사람 정도로만 고생하고 작가가 되었기를 하고 바라며 읽었다. 아쉽게도 그런 이는 끝까지 없었다. 아마 작가를 짓는 대부분의 재료는 고통과 가난, 눈물인 것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작가의 삶이 그러했다. 전업작가의 삶을 여유롭게 누리기보다는 참혹한 현실에 발을 디딘 이들의 삶 가운데 서서 고군분투하며 작품을 남긴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책 뒷면에 보면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을 지닌, 가끔씩 길 잃고 용기를 놓친 작가와 한 붓으로 걸작을 써 내려간 위대한 조력자들이라는 책에 대한 소개 문구가 나온다. 작가들의 삶의 절망 앞에서 그렇게 곁에서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주는 이가 없었다면 그들을 정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고통 속에 고군분투하는 작가보다는 곁에 있는 이 조력자의 역할이 좋다.


  교사로 살아가는 것도 그러한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사는 일. 학생들을, 사람으로, 지금보다 아주 조금은 더 나은 사람으로 지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일은 사람을 알아보는 일과 그들이 가진 민감하고 아픈 부분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그들이 길 잃고 용기 잃은 순간에 다시 일어나도록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사람을 지어가는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해마다 놀라운 3월. 국어시간의 3월이 늘 시로 시작하는 것은 나에게는 큰 다행이다. 일 년 내내 음악과 미술을 가르치듯 문학이라는 예술을 가르치고 싶은 꿈이 있지만 일단 그 꿈은 살짝 접어두었고, 사람을 돌보고 지어가는 일 자체가 문학이었다는 안톤 체호프의 말대로 나는 문학을 하듯 사람을 지어가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나 자신이 길 잃고, 용기를 잃을 때마다 누군가는 나의 이 민감함 마음을 보듬어 주는 조력자가 되어 주시는 것도 기억하겠다.


  3월. 내가 만난 그 민감한 아이들. 섬세한 영혼의 아이들을 멋진 집으로, 잘 지어가리라 마음먹어본다. 나 또한 아이들이 한 해 동안 머물며 ‘음~ 마음에 드는데’라고 나직하게 속삭일 수 있는 그런 빈집이 되고 싶다. 수업 첫 시간에 아이들과 읽으며 음~ 마음에 드는데라고 함께 되뇌었던 시. 올해의 문학시간을 예고했던 다음 시처럼 깔끔하고 단정한 빈집으로 준비되어 아이들을 잘 돌보는 올 한 해가 되고 싶다. 3월이 다 끝나가지만 늘 다짐과 성찰은 끝이 없다.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 지어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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