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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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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Oct 05. 2022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김현규 씀

우치다 타츠루 저/이지수 역 | 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01월 15일


  보통 제목은 내용을 예측하게 하거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책을 읽고 싶도록 한다. 그런데 이 제목은 별로 그렇지가 않다. 글을 다 읽고 다시 봐도 작가가 말하기 힘들다고 한 대상과 이유를 금방 알아차리기 어렵다. 다만 젊은이들에게 어른의 진짜 의미를 말하려니 가르치는 것 같아 어려웠나? 아니면 막상 어른은 이렇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런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운 세태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인가? 하는 추측을 했을 뿐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긴 서문>으로 시작하는데 본문은 대체로 짧은 에세이를 모아놓은 형식이라서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서문과 후기에 정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른스럽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다양한 주제와 사례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어른들의 사고와 행동 양식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올바른 말을 하기보다 상대에게 가닿는 말을 해야 어떤 일이든지 일어난다는 문장이다. 누구나 동의하는 보편타당하게 올바른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든가 꼭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든가 하는 말은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당연한 얘기라서 어떤 구체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할수록 구체적인 반박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린이 보호 구역의 속도 제한과 운영 시간, 과태료 등을 조정해서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자고 누군가 말하면 찬반이 치열하게 대립할 것이다. 안전을 내세워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학생들이 많이 왕래하는 시간대에만 제한적으로 시행하자며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논란의 한복판에 서는 말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되도록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보편타당하게 말하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올바른 말은 많지만 구체적인 실천과 이를 통한 변화는 적은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 시민은 반대자를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이익까지도 대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타자>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모든 <타자>가 나에게 호의적일 리 없다. 어떤 타자들은 나를 불쾌하게 하고 내 자아가 실현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사인으로서는 불쾌할지언정 공적인 시민으로서는 이런 사람들과도 공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 공동체 안에 이런 불쾌한 이웃의 권리가 부당하게 짓밟힐 때, 시민이라면 마땅히 그 권리를 옹호하며 싸워야 한다. 이런 모순을 견디는 것이 공사를 구별하는 시민다운 태도다. 그런데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 우리 편이 하면 표현의 자유고 상대 편이 하면 선을 넘은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민으로서 공사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미숙한 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아마 이런 식으로 말하면 양쪽 모두에게 공격당할 것이다.


  작가는 올바른 의견을 말한다고 해서 타인이 들어주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듣는 사람에게 닿아서, 거기에서 무엇인가가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글은 아주 구체적으로 올바르긴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가닿을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에게는 와닿았다. 작가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건 아니고 어떤 내용은 한국 상황과 다르기도 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한 것인지는 확실히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 또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신선하다.


  그리고 어른의 사고의 핵심에 대한 한 가지 더 덧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비판과 책임은 정확히 비례한다는 것이다. “비판은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은 집단의 완전한 멤버가 취할 수 없는 태도다. 최종적으로 한 사회를 살기 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그 사회가 살기 불편하다고 언성을 높여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회가 ‘살기 불편하다’고 비판받을 때 ‘몹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공동체에 대한 무한 책임을 느끼는 것이 어른이며 그것 없이 진정한 어른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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